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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황제 - 로마보다 강렬한 인도 이야기
이옥순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로마보다 강렬한 인도 이야기 [무굴 황제] 이옥순 저 - 틀을 깨는 생각
인도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인류의 힘찬 발걸음이며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인더스 문명, 수 억 명의 신을 모시고 있는 힌두교, 브라만 - 크샤트리아 - 바이샤 - 수드라 등의 카스트제도와 비폭력 운동, 인도 독립의 아버지 간디 정도? 역사 외에는 또 무엇이 떠오를까? 세 얼간이, 내 이름은 칸 등의 발리우드 영화와 최근 배낭여행의 각광 받고 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역사를 매우 좋아해서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사주신 역사책을 끼고 살았고 직장을 다니다 대학원에 파견을 가게 되면서 다시 역사를 접하게 되었다. 그 동안 많은 역사책을 접했지만 우리나라와 중국, 유렵의 역사에 비해서 인도 역사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러다 한권의 책이 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로마보다 강렬한 인도이야기’ 『무굴 황제』 이옥순 저
나에게 무굴 제국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타지마할 이었다. 아니 사실 그 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었다. 무굴이란 말은 많이 들어 봤지만 그동안 그 뜻도 모르고 살았다. 명(明), 청(淸) 등은 한자 풀이와 다른 책을 통해서 이미 그 뜻을 알고 있었지만 그 뜻은 이 책을 읽고 난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무굴이란 말은 페르시아어이며, ‘몽골’을 뜻하고 있다. 우리는 무굴 제국이라고 부르지만 무굴 제국의 창시자인 바부르는 무굴이란 말을 싫어했으며 티무르의 후손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동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무굴 제국. 그 역사를 국가의 흥망성쇠를 전쟁과 정책, 행정 등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아보자.
무굴 제국의 창시자인 바부르는 조선의 창업자인 이성계 같은 백전백승의 장군이 아니었다. 그는 무수히 많은 실패를 바탕으로 최후에는 승리를 거둔 인물이었다. 그는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패배해서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나 결국 최후에는 승리해서 350년간 이어지게 되는 대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거듭된 실패도 그의 열정을 식힐 수는 없었다. 그는 실패했지만 그 고통을 참을 수 있었으며, 종교적인 명분과 약탈을 통해서 부하들과 기쁨과 부를 나눌 수 있었다. 약탈로 부를 분배하고 부하들의 충섬심을 얻었지만 제국을 세우고 황제가 된 이후에는 그것을 금하고 나라의 기강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목숨과 바꾸어 제위에 오른 후미윤. 그도 아버지처럼 처음에는 전쟁에 패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페르시아로 도주했다. 아버지 대의 장군은 물론 이복동생들, 전 왕조의 후손들까지 그를 사방에서 포위했다. 그러나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바로 자신이었다. 그는 제국의 창업자였던 아버지와 같지 못했다. 우유부단했으며,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다. 그가 제국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페르시아 황제로부터 받은 1만 2000명의 병력과 패배와 도주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자신감이었다. 작가는 이른 인내라고 표현했다.
아소카왕과 더불어 인도에서 단 두 명만이 위대한 왕이라고 불린다. 나머지 한 사람은 바로 무굴 제국의 3대 황제 아크바르이다. 그는 13세의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올랐지만, 아버지와 달랐다. 인내의 시간을 거쳐 점차 정적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지위를 강화했다. 그는 제국의 지배자는 영화를 누리는 자가 아니라 제국에 영화를 가져와야 하는 자라고 믿었다. 무엇을 하고 어느 신을 믿든, 어떤 곳에 살고 있든지 공평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 무굴 제국을 세운 할아비지 바부르가 인도를 싫어했던 것과 달리 인도를 사랑했다. 이슬람교 외에 모두 내야 하는 인지세를 폐지했고, 힌두교 순례자들이 내야하는 순례세 마저 없애 버렸다. 그가 통치하는 제국은 수익은 줄었으나 그 손실은 민심을 얻어 만회하게 되었다.
쟈한가르는 무굴제국에서 첫 번째로 황제였던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 사람이었다. 그는 황제에게는 아들은 없고 그 자리를 노리는 상속자들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아들들도 자기와 다르지 않았다. 그의 10대의 맏아들이 자신이 할아버지(아크바르)의 후계자라며 반기를 듣 것이다. 10년 후에는 그의 막내아들도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반란을 일으킨 아들들을 죽이지는 못했다. 쟈한가르를 통해서 권력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샤자한 타지마할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무굴제국의 유명한 황제. 그도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의 제위를 빼앗으려 했으나 용서받고 다음 제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 달랐다. 제위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제위에 도전할 만한 피를 나눈 형제들과 남자들의 씨를 말려 버렸다. 자신은 반란을 일으키기도 살아남아 제위에 올랐으나,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은 친족들을 주살해 버린 것이다. 그는 이렇게 잔인하고 야심찬 인물이었다. 이처럼 그에겐 제위가 진리요. 모든 것이었다. 그의 잔인함에 비해서 제국은 안정되었고, 제국에는 재화가 넘쳐났다. 지상에 천국이 있다면 바로 여기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부는 그와 귀족만이 누렸고, 그의 풍요를 위해서 막대한 세금을 내던 백성들은 빈곤했다. 제국의 부를 백성들은 나누지 못한 것이었다. 그도 말년에는 자식들의 피비린내 나는 왕권 투쟁을 지켜봐야만 했다.
아우랑제브 그는 아버지를 가두고 제위에 올랐다. 그는 힌두교들에게 이슬람을 믿으라고 강요했고, 인두세 등을 다시 거두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실과 자신들의 인도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영국인들에 의해서 그는 역대 무굴 제국의 황제들은 물론 인도 역사상 가장 많은 미움을 받는 황제 중에 한 명이 되었다.
『무굴 황제』를 통해서 알게 된, 무굴 제국의 역사는 효를 근본으로 생각하고, 인간사의 으뜸으로 생각한 우리나라의 역사와는 많이 달랐다. 물론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태종 이방원과 같이 형제들을 죽이고 아버지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제위에 오른 왕들이 있었다. 그러나 무굴 제국의 역사는 그것의 반복이었고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이었다. 이런 역사의 흐름과 인물을 통해서 이야기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개해 간 작가의 노력으로 인해서 책을 읽는 내내 흥미를 잃지 않았으며, 책을 읽은 후에는 새로운 사실을 통해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역사를 연구하고 배우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과거의 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