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걸리버 여행기 - 300주년 기념 무삭제 완역판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ALTARI LAB 옮김 / 다산글방 / 2026년 10월
평점 :

걸리버 여행기(300주년 기념 무삭제 완역판) - 조너선 스위프트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30대가 되기 전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 바로 <걸리버 여행기>였다. 물론 사람들이 내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마음속의 숨어 읽는 명작 일순위였다고 할까. 벌써 걸리버 여행기가 나온지 300년이나 되었다니 감회가 새롭다. 이번에 만나게 된 책은 굉장히 사실적인 삽화가 실려 있는 책이었다. 특히 두 번째 거인의 나라인 브롭딩낵에서 탈출하는 배의 삽화가 실려있었는데 그렇게 다리가 닿을 정도로 작은 배 일거라고 생각을 못해서 또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책의 삽화는 이렇게 고퀄인데, 표지는 좀 귀여운 일러스트라서 좀 더 많은 청소년 독자들까지 유입하기 위함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실제 실린 삽화 느낌이었으면 좀 중후한 맛이 났을 텐데 말이다.
여러 번 재독했던 책이라 내가 전에 좋아했던 구절들이 아직도 좋은걸까 하고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역시 제일 재미있는 파트는 동화책으로 따로 나오는 소인국인 릴리펏이 아닐까 한다. 늘 릴리퍼트라고 말하다가 이번 책에서는 릴리펏이었다. 여행을 떠난 걸리버씨가 릴리펏에 당도해서 온몸을 묶인채 깨어나는 것 부터가 기이한 네 번의 모험 중 시작인 것이다. 나보다 훨씬 작은 인간이 있는 동네. 자신이 먹고, 싸고, 기거할 곳을 찾아 왕국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릴리펏은 고위 관직이 될려면 줄타기를 잘 해야한다. 라인을 잘 타야한다는 말이 아니다 왕의 남자 이준기의 외줄타기처럼 줄을 잘 타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나라이자 계란을 좁은 곳으로 깨지 않는(계란을 넓은 곳으로 깬다:원래의 방식) 블레푸스쿠에서 탈출한다. 구두굽이 낮은 파를 등용하는가, 왜 계란을 깨는 문제 같은 것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가 하겠지만 이것이 바로 현실 정치를 비튼 조너선 스위프트의 매력이다. 이런 얼토당토 않은 쓸데없는 것들에 대한 블랙유머를 좋아한다면 라퓨타를 모험하는 3장을 더 좋아하게 될 것이다. 소인국을 탈출하면서 데려온 미니어처 동물들을 보여주고 돈을 벌었다는 것은 이제 거인국으로 가면 자신이 당하게 될 이야기의 복선이 되기도 한다.
이걸 보면서 또 얼마나 웃었던지. 사람은 얼마나 한치 앞도 모르는가 말이다. 자신도 브롭딩낵에서 인형의 집 처럼 꾸며진 공간 안에서 12번씩 공연을 하면서 혹사당한다. 다 죽어가기 일보직전에 왕비에게 팔려서 그나마 브롭딩낵에서 객사하지 않았달까. 자기가 커서 권력적이게 살아오다가 이제는 반대의 상황에 놓인다. 그 얼마나 상대적인가.
이제는 좀 집에 있었으면 하는 걸리버가 또 여행을 떠나고 선원들의 반란으로 후이넘의 나라에 도착한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파트가 바로 이 마지막 여행이다. 후이넘들의 고귀함과 우정과 신뢰와 별개로 야후들의 야만성과 탐욕이 인간이라는 종족 혐오가 극에 달하게 된다. 풀을 먹을 수 없어서 귀리로 겨우 연명하면서 계속해서 자신도 야후라는 생각에 몸서리치는 걸리버.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잘 보여주는 장이라 하겠다.
소장하고 있던 책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보충 원고 - 린달리노의 반란>이 실려 있어서 유익했다. 1735년 포크너판(기준판으로 여기지만 정본은 아님)에 실려있지 않았지만 별도로 실어두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오류가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각주와 책의 후반에 별도로 다시 설명해주어 의아했던 부분을 다시금 바로잡을 수 있었다.
아직도 여전히 나는 걸리버 여행기를 좋아하고 있구나라고 느꼈다. 다시 읽을수록 면면히 풍자와 비판의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완역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