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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들의 행성 - 여섯 개의 다리로 이룩한 위대한 제국
주잔네 포이트지크.올라프 프리체 지음, 남기철 옮김 / 북스힐 / 2026년 2월
평점 :

개미들의 행성 - 주잔네 포이트지크 , 올라프 프리체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개미들의 행성>은 인간 중심의 시선을 벗어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직되고 살아가는 생명체의 세계를 낯설고도 경이롭게 보여준다. 그리고 개미를 연구하는 학자가 얼마나 힘들게 연구를 진행하는지에 대한 성토도 포함된다. 독일에 서식하는 100여종 이외의 개미를 탐색하기 위해서 백과사전 두께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고 한다. 물리적 거리보다 서류제출이 힘든건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존재인 개미는 사실 지구 생태계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주역이다. 그 누구도 지구상에 사는 개미들의 정확한 개체 수를 알지 못하지만, 학자들은 약 1경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이 수치가 맞다면 인간 한 명당 약 100만 마리의 개미가 존재하는 셈이다. 평균 크기를 1센티미터로 가정해 이들을 일렬로 세운다면 지구와 태양 사이를 334번이나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거대한 <개미들의 행성> 위에 살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인간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개미만큼은 아니라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점은 개미 사회의 독특한 질서와 역할 분담이다. 인간 사회와 유사한 듯하면서도 본질적으로 다른 개미의 세계는, 효율성과 생존이라는 측면에서 극단적으로 최적화되어 있다. 흔히 <인간은 젊은 남자를 전쟁터에 보내지만 개미는 늙은 암컷을 보낸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강인한 개체들이 위험한 임무를 맡는다. 이는 개미 사회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철저한 기능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개미의 <진사회성>은 이 책의 핵심 주제 중 하나다. 개미는 단순한 군집이 아니라, 개체 하나하나가 하나의 ‘세포’처럼 기능하는 초유기체에 가깝다. 여왕개미는 번식에만 전념하고, 일개미는 먹이 탐색과 육아, 병정개미는 방어를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이 철저히 분화되어 있다. 특히 결혼 비행 이후 여왕개미의 변화는 극적이다. 새로운 군체가 형성되고 나면 여왕은 알을 낳는 기능에만 집중하게 되며, 비행 능력은 물론 먹이 탐색이나 돌봄 능력까지 퇴화한다. 날개도 필요치 않아서 없애버린다. 이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게 되는 것>에 가깝다. 이러한 분업 체계는 개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대신, 집단 전체의 생존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결국 개미 사회는 개인이 아닌 집단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작동하는 완성도 높은 진사회성의 극치라 할 수 있다.
또한 개미들은 언어 대신 페로몬을 통해 정교하게 소통한다. 이 화학적 신호는 단순한 흔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먹이를 발견한 개미는 돌아오는 길에 페로몬을 남겨 동료들에게 길을 안내한다. 배 아래쪽에서 헨델과 그레텔처럼 조금씩 페로몬을 길에 묻히는 형태로 자매들에게 힌트를 주는 것이다. 위험 상황에서는 경고 신호를 퍼뜨려 집단 전체가 즉각 반응하도록 만든다. 심지어 페로몬의 농도와 종류에 따라 행동 방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인간의 언어처럼 문장 구조를 가지지는 않지만, 목적과 맥락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효율적인 의사소통 체계라 할 수 있다.
결국 <개미들의 행성>은 인간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효율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균형을 선택해야 하는가. 개미들은 극단적으로 집단을 택했지만, 그 선택 덕분에 지구에서 가장 성공적인 종 중 하나가 되었다. 정말 개미들의 행성에 인간이 입주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