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다 하다 앤솔러지 4
김엄지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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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하다 앤솔러지 4) - 김엄지 , 김혜진 , 백온유 , 서이제 , 최제훈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열린책들에서 <하다>라는 동사를 주제로 내는 앤솔로지 4번째 편이다. 처음 출간된 <걷다>도 재미있게 읽어서 역시 기대했다. 최근에는 듣는 것에 대한 피로도를 여실히 경험하고 있다. 또한 내가 말하는 것을 들어줄 의무를 누구도 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여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책에는 총 다섯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사송> 김엄지

<하루치의 말> 김혜진

<나의 살던 고향은> 백온유

<폭음이 들려오면> 서이제

<전래되지 않은 동화> 최제훈

 

제일 생각이 많이 들게 했던 작품은 김혜진 작가의 <하루치의 말>이다. 주인공 애실은 엄마의 부름을 받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다. 어찌저찌 어머니가 하시던 이불가게를 물려받는다. 그리고 그 가게 일과 어머니의 악화된 병세, 병수발, 고향의 짜침 등이 그녀를 굉장히 고립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생각해보면 40대 이후로 많은 자녀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상황이다. 먼저 겪느냐 나중에 겪느냐의 차이가 좀 더 있을 뿐. 이불을 사러 들어온 현서는 가게에서 수다를 떨며 죽치고 있는 무리들과 거리를 두라며 산뜻하게 애실과의 만남을 갖게 된다. 자주 찾아오고, 들여다 보고, 같이 밥을 먹어도 어머니 갖다드리라며 따뜻한 치킨을 한마리 더 포장해주는 등 애실에게 현서는 둘도 없이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된다. 짧은 소설이라 얼마나 그 관계가 기울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짐작할 수는 있다. 그리고 나에게 이유 없이 다가오는 사람들을 경계해야한다는(호의는 돼지고기 까지만이라고들 하지) 이야기는 틀린 적이 없다. 결국 현서는 애실의 등을 쳐먹는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 그런 와중에도 애실은 현서를 그리워한다는 것에 있다. 결국 수소문해서 찾아간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네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부탁이라고 한다. 이 소설을 다 읽고, 최근이라면 최근이고 멀다면 먼 마지막 통화녹음 파일을 들을 용기가 났다. 욕으로 점철된 파일이었지만 그래도 다시 듣는다는 일이 어떤 건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사람의 관계가 무너지는 데는 큰 균열도 필요하지 않다. 그 사람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하는 것, 그것을 되갚아 주는 것 그래서 끝내고자 하는 것이랄까. 그 와중에 내가 너를 이용하고자 하는데도 그 성심성의를 다하는 데도 네 이야기를 듣는 게 질역났다는 표현은 어쩌면 애실을 세상 밑바닥까지 끌어내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는 내가 마음을 터놓을 상대조차 나를 외면하다니. 나에게 상처를 줬고 그것조차 이해하려 했는데...

다음은 백온유 작가의 <나의 살던 고향은>에 대한 이야기다. 단편집 중에 제일 긴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주인공 영지는 서울에서 바쁜 회사에서 충원인력도 없이 일하고 있다. 또 아버지의 전화로 인해 어머니가 다치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고향인 한서로 내려가게 된다. 남동생인 진우도 있고, 아버지도 계신데 왜 꼭 딸래미가 내려가서 수발을 들어야 하는지는 모를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영지의 인생사가 구정은(산주의 딸)과 접점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이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그냥 다치신 정도가 아니라 발가락 일부가 절단되는 큰 사고를 겪게 된다. 이는 남의 산으로 송이버섯을 따러 다니다 산짐승을 잡으려고 놓는 덫에 걸린 것 때문이다. 병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찾아온 구정은과 어머니는 갑자기 없는 일처럼 잘 무마하자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끝낸다. 딸로서 영구장애로 보행이 어려울 수도 있는 어머니를 그냥두지 못해 영지는 구정은을 따라나가 이야기를 한다. 이제 판은 뒤집혀서 결국 어머니가 몇 년째 주인 있는 산에서 불법으로 송이를 따서 돈을 마련한 범죄자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를 빌미로 구정은이 영지에게 말 못한 자신의 갈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영지가 이뤄준다. 늘 고향을 떠나고 싶었던 사람과 고향에서 떠나 있었던 사람이 다시 고향에서 겪어야 할 소문들에 대한 간극을 잘 드러내줬다고 생각한다. 시골에선 역시 소문이 제일 무섭다. 사실이야 어떻든 실제로 그럴만한 일이었다고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진실을 들려주는게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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