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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ㅣ 하다 앤솔러지 1
김유담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9월
평점 :

걷다 - 김유담 , 성해나 , 이주혜 , 임선우 , 임현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열린책들에서 새로 시작한 앤솔로지의 첫 번째다. 동사 하다를 주제로 <걷다, 묻다, 보다, 듣다, 안다> 시리즈로 출간될 예정이다. 앞으로 나올 시리즈도 꼭 읽어볼 생각이다. 일단 라인업이 미쳤다. 이런 핫한 작가들의 단편이라니 이름만으로도 아름답지 않은가.
마음에 든 작품은 제일 처음 만난 김유담 작가의 <없는 셈 치고> 였다. 고모의 항암치료의 손과 발이 다 된 나지만 역시 친딸이 될 수는 없다. 민아는 그렇게 울 부모님이 좋으면 너 가지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신발가게에서 부츠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모에게 엄마라고 불렀던 아이가 처연해 미칠 것 같았다. 그렇게 키워주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부재중인 딸의 자리까지 채웠건만 천륜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인가. 굳이 추석을 앞두고 불러서 갔더니 민아가 곧 올 것이라며, 돈이 필요하대서 줬다는 속터지는 이야기. 어차피 민아한테 줄 돈이었으니 없어도 그만이고, 없는 셈 치고 줬다는 그런 말이라니. 고모와 고모부에게 결국 사랑하는 것은 딸 하나뿐이었다는 그 감정을 옆에서 고스란히 느끼는 주인공이 가여우면서도 덤덤하게 느껴졌다.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인 줄 알았잖니 하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고모와 함께 황톳길 어싱을 하지만, 자신은 황토 위에 있는 고운 모래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다음은 많은 사람들이 작품 중 제일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임선우 작가의 <유령 개 산책하기>다. 언니가 던져놓고 간 강아지 하지가 죽고나서 유령 개로 돌아왔다. 나에게 뭘 원하는 걸까. 같이 놀았던 쿠키도 찾아가 보고, 카페도 가보고, 살아있던 것처럼 온기도 느껴지는 하지. 언젠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일상조차 흔들린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많은 만큼 몽글몽글한 감정이 드러나는 글이었다.
제일 공감되었던 글은 마지막에 실린 임현 작가의<느리게 흩어지기>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삶처럼 느리게 살아가는 주인공 명길이 꼭 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도 처음 가는 곳에서 그냥 미혼임을 밝히면 서로 껄끄로워 질 것 같은 곳에서는 그냥 둘러대기도 한다. 남자친구가 남편이 되기도 하고 뭐 그렇게.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겠지만 그냥 일상적인 거짓말 뒤에 숨고싶을 때가 있어서 공감하며 읽었다. 왜 명길은 자기를 챙겨주는 성희도 자기와 같은 처지라고 지레 짐작했겠는가. 정자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탁비로 받은 돈과 자신에게 중요한 메모를 겹쳐놓고 떠나보내는 것이 뭔가 하나의 액땜하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번져버린 자신의 마음과 사람들의 시선을 다 떠나보내기를 희망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