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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할머니 약국
히루마 에이코 지음, 이정미 옮김 / 윌마 / 2025년 7월
평점 :

100세 할머니 약국 - 히루마 에이코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역시 의사와 약사 같은 전문직에는 나이가 문제되지 않는 황금 자격이라는 생각을 했다면 너무 야박할까. 최근 7월에는 병원비로 기백만원을 쓰는 기염을 토했다. 생각보다 작은 만성질환부터 그에 상응하는 연계 질환까지. 나처럼 자주 아픈 사람들에게는 병원이나 약국이 낯선 곳이 아니다. 작가는 일본에서 1923년 태어나 도쿄에서 백세가 넘도록 히루마 약국을 경영한 약사다. 아버지께서 전쟁 이후 약국을 개업했고, 작가도 약사이며, 책에서 잠깐씩 등장하는 손자도 약사라서 같이 가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지금은 갑자기 택시를 타려다 고관절이 상해서 걷는데 지장이 있다고는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청춘같고 따뜻한 분이란 걸 느꼈다. 이를 잘 알수 있는 일화로 약국을 찾아준 손님들에게 어떤지, 힘들지는 않은지 살피고 먼저 말을 걸어준다는 것에 있다. 비용은 내지 않는 온기의 복약지도라고 할까. 병으로 병원에 다녀온 후 사람이 얼마나 지치는지, 위로받고 싶은지에 대한 타인에 대한 마음을 잘 알아주는 느낌이었다. 단 그녀의 비법은 말걸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잔소리 같아지지 않도록 그 다음 말은 덧붙이지 않도록 경계하고 환자의 말을 들어주는 것에 있다. 실려있던 에피소드의 약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언성을 높이고 가버린 환자의 집까지 찾아가서 사과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굉장한 아날로그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할머니 약사님이 그 힘든 몸을 이끌고 왔다고 하면, 나라도 무장해제 되어서 내 힘듦을 토로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그래서 미안하게 되었노라고.
가족이지만 같이 일하는 사이에서는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게 살아가시는 젊은 할머니였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한다면 하루를 넘기지 말고 빨리 사과하라는 말도 좋았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이에서 일하다 보면 왜 이 부분을 이해해주지 못할까 하고 쌓이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전에 장수하는 의사의 책도 읽었는데, 겹지는 부분이 전쟁을 겪어본 사람들이 아는 참혹함이었다. 어릴 때 겪은 전쟁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생각이다. 그렇지만 내가 겪은 전쟁이 최고로 힘들다고는 이야기하지 않는 유연성이 있었다. 지금은 지금 나름대로의 고통과 눈에 보이지 않는 고독과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그래도 태어난 이상 그렇게 힘들다면 삶의 의미를 생각하지 말고 오늘을 살아 내보자고 말하는 것도 이렇게 오래 사신 분의 이야기라면 믿고 그냥 따라봐도 되지 않을까 싶게 만들었다. 햇살같은 분의 히루마 약국에 찾아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