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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지 않은데 왜 백인인가? - 인종차별, 헛소리에 지지 않고 말대답하기
박중현 지음 / 드루 / 2025년 4월
평점 :

하얗지 않은데 왜 백인인가? - 박중현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인종 차별에 관해 호주에 오래 살고 있는 저자가 조목조목 짚어주는 책이다. 책에서 말하건데 기록에 따르면 백인(White people)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쓰인 것은 1613년이라고 한다. 극작가 토머스 미들턴이 그의 희곡 <진실의 승리>에서 유럽인을 집단적으로 <백인>이라고 지칭한 것이 시작이란다. 1600년이라 생각보다 오래되었다면 오래되었고, 아니라면 아닌 시간이다. 문제는 그 이후 인종을 구분하는 색깔론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저자는 한소희나 태연처럼 백인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과 찍은 사진을 보면 백인들보다 더 하얀 한국 사람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누가 봐도 얼굴뿐만 아니라 몸까지 더 흰색이다. 실제로 백인들은 좀 붉다는 느낌이거나, 인위적으로 태닝해서 갈색피부를 가지게 된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흰색 피부를 갈망하게 된 것은 원래 타고난 피부색에서 먹고 살기 위해 야외에서 노동하지 않는 삶의 계층을 부러워하는 의식이 투영된 것이라고도 한다. 그것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색깔론처럼 흰색은 미적 우월성을 의미하고 어두운 색일 수록 이국적인 느낌에서 점차 변질되기 시작한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와 맞물려 유럽인들이 자기 땅을 넘어서 침략의 역사를 쓸 때 자신들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타 인종을 계몽 혹은 선진화 시킨다는 명분 하에 두기를 원해 포장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우매한 인종을 피부색이 어두울수록 그렇다는 우매한 세계관이 오랜 기간 사람들의 머리에 박히기 시작한다.
이제는 전처럼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지는 않는 추세다. 물론 혐오에 이를 정도로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은 여전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교묘함으로 위장했다. 내가 유럽에서 살 때도 역시나 미묘하게 기분 나쁘게 느꼈던 <마이크로어그레션>으로 진화했다. 책에서 예를 든 식당에 갔는데 자리가 많이 비어 있지만 굳이 가장 구석진 자리로 안내하던가 하는 일이다. 해가 잘 드는 창가자리가 있지만, 화장실 바로 옆에 앉게 하는 인종차별을 당해본 적 있는가. 이에 대해 항의해도 예약석이라느니 미묘한 입가의 웃음을 띄면서 자리를 바꿔주지 않는다. 그 뿐 만인가 항의한 순간부터 마이크로어그레션은 더 교활해져서 아무리 눈을 맞추고 주문을 하려고 해도 내 테이블에 웨이터는 오지 않는다. 그 뒤에 간신히 주문했다 하더라도 나보다 늦게 주문한 사람들의 음식만 먼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 당당하게 만만하지 않고 얕보이지 않도록 언급하라고 말한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동양인은 소심하고 할 말도 못한다는 편견을 가진 그들에게 일침을 가해줘야 한다. 책에서 등장하는 증조할머니가 한국사람이라는 이야기에 미러링 해주는 에피소드에서는 깔깔 웃음이 터졌다. 사람들은 역시 자기가 똑같이 당해보지 않고서는 그것이 얼마나 차별적인 행동인지 자각하지 못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사람들이 자신과 다르다는 생각으로 자주 보지 못하거나(노출 빈도)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함이 바탕이 되어 사람들을 차별한다는 내용도 등장했다.
내가 해외에 나가서 당하는 인종차별 만큼이나 국내에서 나도 모르게 행하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해 꼬집어 준 점도 좋았다. 싱가포르는 외국인들이 직장을 잡아서 살기를 희망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은 편이라는 점. 백인들에게는 우호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피부색을 가진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인 또한 인종차별을 가한다는 점은 악의가 없더라도 무지에 의해 다른 사람들을 상처입히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