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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할 틈이 없는 무덤 관리인의 하루
한수정 지음 / 희유 / 2025년 2월
평점 :

지루할 틈이 없는 무덤 관리인의 하루 - 한수정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한수정 작가의 책은 두 번째 만났다. 처음 나온 책은 <죽을 자리는 역시 병원이 좋겠어>가 죽음을 시도하려는 의사와 황당하게도 자꾸 병원으로 찾아오는 살려야만 하는 환자들의 이야기였다. 잃어버린 약의 행방과 범인을 찾는 것까지 포함해서. 사람을 살리는 공간에서 죽고 싶어 하지만 사람을 살려야하는 막중한 의무를 가진 의사라는 아이러니도 잘 풀어냈다. 이번 책은 <지루할 틈이 없는 무덤 관리인의 하루>로 갑자기 아빠를 대신해서 키워주신 삼촌이 돌아가시면서 잔고에 달랑 3만원만 있던 터라 일을 해야만 했던 강수영이 죽은자들이 있는 곳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실제로 장례비가 700만원이 나와서 나머지 금액을 전부 신용카드로 메꿔야 했던 어마무시한 면접을 봐야만 했던 수영의 대전제가 훨씬 무서웠다. 사람이 죽고 나면 그를 영면에 머물도록 하는 것도 산 자의 몫이라니.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할 상황의 사람들은 얼마나 회한이 될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기이한 연유로 상복을 입은채로 삼촌을 묻으러 온 묘지에서 구인공고를 보고 지원하고, 희안하게 합격한다. 물론 이야기의 구성은 수영의 ojt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것은 무덤관리인들과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구성이다. 무덤관리인이라는 특이한 직업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안에서 사람과 상처받은 사람, 망자와의 관계, 망자 때문에 현재 인간관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람 등 여러 사람들을 다룬다. 일을 잘하는 특별 2조의 송선주씨와의 에피소드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정말 일을 잘한다고 평판이 자자하지만 그녀에게는 외모와 관련된 자신만의 말못할 사정이 있다. 산 사람들이 말로 업을 쌓는 다는 건 이런 일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을 잘 할 수 없게 되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근처에 놀러오는 무덤에서 데굴데굴 놀이를 하는 초등생들과 그걸 똑같이 따라하는 동윤과 수영의 모습에서는 피식 웃음이 났다. 30년 전 쯤이긴 하지만 지금은 지엄하게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그 무덤들 사이에서 나 역시 데굴데굴 놀이를 해봤기 때문이다. 요새 친구들에게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겠지. 하지 말라고 윽박만 지르는 직원이 아니다. 그 직원의 행동을 보고 나도 해봐야겠다고 실천하는 수영도 보통내기는 아니다. 경험하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이고, 생각보다 그 속사정에 발을 담궈라도 보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수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수영은 다 새로 만난 직원들과 마음을 열고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친구들을 불러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무엇일까 헤아리기 어렵지만 결국 오래된 갈등을 각자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측면에서 포옹과 사람의 온기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삼촌을 가까이 보기 위해서 어쩌면 수영은 그 일자리를 택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루할 틈이 없는 무덤관리인이 되어서 오늘도 순찰을 열심히 돌고있을 수영 곧 베테랑이 될 것이라 믿는다. 무덤이라는 공간에서 엉뚱한 스릴도 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와 온도를 더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