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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상 식탁
설재인 지음 / 북다 / 202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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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상 식탁 – 설재인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소설 <뱅상 식탁>과는 물론 엄연히 다르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소통을 위해서 어둠 속에서 전자기기 없이 식사하는 식당을 들은 적이 있다. 외국에서도 다녀온 지인을 통해 들었고, 유명한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얼굴도 모른채 밥만 먹다가 사랑에 빠지기도 했던 그런 곳. 그러나 뱅상식탁은 이런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다. 서로의 진심을 숨긴 4쌍이 식사를 하러 찾아온다. 소설가를 꿈꾸는 만학도 대학원 동기 남녀(수창과 애진) 1번 테이블. 부모라는 이름으로는 가혹함을 보여주는 서로만 의지하고 살아온 모녀(정란과 연주) 2번 테이블. 잘나가는 일진 무리에 공부 잘하는 애가 붙었던 학창시절의 옛친구(유진과 상아) 3번 테이블. 워크샵에 갔다가 밥 먹기로 하고 들른 4번 테이블의 동갑내기 회사 사수와 후배(성미와 민경).
일단 뱅상식탁을 차린 사람은 빈승이다. 그는 미미의 지령을 받아 뱅상식탁을 차렸다. 이 식당은 인간들의 본성을 여기에 식사하러 오는 사람들의 대화를 수집한다. 물론 미미도 다른 누군가의 명령으로 이런 일을 만든다고 했다. 일단 미미를 통해 로또 1등에 당첨되는데, 완전 너무 부럽잖아!
그렇게 빈승 자체도 사회 부적응이었지만 이렇게 공간을 마련하고 사람들을 대접하며 실험을 계속 해나가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뱅상 식탁의 마지막 실험체로 모인 4팀에서 대화만을 수집한 게 아니다. 테이블당 한 명을 죽여야 한다는 가히 오징어게임 식의 룰이 추가된 끝판왕이 된 것이다. 생각해보라, 토요일 점심 먹으러 희안한 식당에 온 것도 그런데, 갑자기 총성이고, 같이 온 너희 둘 중 한 명만 살려 내보내줄테니 10분간 상의 하라고 한다면 누군들 인간의 본성이 나오지 않겠는가. 앞서 예를 든 오징어게임 1에서도 난 역시 지금까지의 라포를 쌓아올렸던 구슬치기 게임이 제일 슬펐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다만 이 소설에서 각자 살아가야 할 이유를 댔던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를 댔던 사람들도 있었다는 게 조금 슬펐다. 당장 살아나가기 위해서 와이프라고 거짓말을 했던 교장. 하도 교장의 이야기만 나와서 많은 부분이 생략 되었지만 뒷심을 발휘해준 애진.
엄마와 딸이 이 식탁에서 이런 위기를 맞이한다면 다들 어떨까? 딸을 위해서 대신 죽겠다는 엄마가 등장하는 것이 당연할까? 그런데 딸의 생각이 너무나 파렴치하다면 또 어떨까? 그런데 그 생각의 원인이 바로 엄마의 가스라이팅 때문이라면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특히 오늘의 만남이 뭔가의 결과를 이끌어 내야했던 상아와 유진이 흥미로웠다. 극 초반은 상아가 하드 캐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옛날 네 덕으로 꿀 빨았던 내가 아니라고. 지금은 너처럼 못살지도 않는다고. 상아의 머리 굴러가는 소리를 소설 내내 듣고 있으면 최고 악인은 상아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닌가. 일을 저지르지도 않고 세치 혀로 방관만 하고있는 수창이 제일 나쁠지도 모르겠다. 일단 밖에서 따로 만나자고 한 것을 연애로 받아들인 것부터 무척이나 불쾌함. 너는 내타입은 아니지만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면 버젓이 살아있는 아내도 죽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뻔뻔함. 기회만 있다면 거짓말이 술술 나오는 구렁이 같은 놈.
마지막으로 나온 사수와 후배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열등감과 발작 버튼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면을 볼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최근에 왜 이렇게 나에 대해 집착하는 옛 사수들의 전화가 연달아 오는지 읽는 대목 여러 부분에서 PTSD올 것 같았다. 한 명은 완전 차단했는데도 꾸준히 연락오는 거 하며. 한명은 카톡만 차단했는데 직접 전화오는 이 정성! 내가 제일 비슷한 성격의 캐릭터를 꼽자면 민경이 아닐까. 물론 회사에서는 성미와 가까운 역할을 맡고 있다. 물론 인서울의 석사까지 나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서울도 아니고 경기도의 변두리의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은 맞다. 그렇게 지랄 같은 상사들도 많이 모셔봤고, 버티면 승진을 시켜주긴 한다는 것도 안다. 물론 정규직 보장이라는 환상에 쌓여있는 민경을 보면 안타깝기도 했다.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좆소에서 정규직이 무슨 의미인데!! 원래 회사란 돈 버는 의미로 욕도 먹고 싫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란 걸 왜몰라. 학교에 돈 내고 다닐 때처럼 자신감이 있었던 것은 거기가 학교이기 때문이라고. 자신이 사회에 나가서 대단한 인재가 될 것 같은 생각은 계속 구르다 보면 없어지게 될 텐데. 자신이 속으로 무시하는 사람에게서까지 사람 취급을 못 받는 게 어지간히 힘들긴 했나보다.
각 테이블의 어떤 사람이 승자가 될지, 이 잠깐의 섞임으로도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어떻게 비춰지게 될지 궁금했던 사람은 열심히 결말을 위해 달려보자. 죽을만한 사람이 죽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