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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나의 집
한동일 지음 / 열림원 / 202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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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나의 집 – 한동일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6개의 단편이 실려있는 소설집이다. 다 각자 인물이 등장하지만 꽤나 고민을 가지고 있다. 아, 제목처럼 <불 꺼진 나의 집>은 본인의 문제가 뭔지 모르니까 빼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아내와 무미 건조하게 결혼했다. 아마 남들이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을 읽을 줄 모르는 소시오패스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얀 거짓말을 했던 승진을 했던 날 밤, 그 날도 평소처럼 굴었다면 아내가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었을까 아닐까 고민되었다. 그 날도 역시나 남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했다면 더 큰 비극이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애도를 받은 만남에서 불륜이 되어야만 했을 이유도 나는 딱히 찾지 못하겠다. 너무 건조한가.
처음 이야기인 <인간모독>은 교권과 학교폭력이 묘하게 비틀린 이야기였다. 학생일 땐 학생이라 맞았다. 이제 선생이 되었는데 아이와 학부모에게 조아리고 교육청 민원에 교장한테도 질타를 받고 있다. 내가 한 일은 교실 내에서 일어난 폭력을 막으려던 것인데, 왜 그녀는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제일 공감한 단편은 <냄새>이다. 박훈이라는 친구를 둔 나(영민)은 새출발하고 싶다는 훈과 같이 살게 된다. 내가 흔쾌히 그러자고 한 이유는 줄어드는 부담의 월세와 관리비 때문이었다. 친구와의 교류보다는 경제적인 이유로 선택한 편이다. 영민은 혼자지만, 훈은 부인과 아이(딸)까지 있다. 그렇지만 가족의 곁이 아닌 영민의 곁에서 사람 구실을 하고 싶다는 건 무슨 이유일까. 일용직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결국 술을 제어하지 못한 훈은 장마를 핑계삼아 술을 줄곧 마셔댄다. 이 대목에서 정말 비슷한 이유로 영민처럼 숙주가 되어본 적이 있다. 그나마 영민은 친구니까 깊게 관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영혼까지 기생할만큼 터를 내어줬다. 그런데 아마 실제로 그렇게 사람이 핑계와 거짓말을 섞어가며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처음에는 술이 문제인 것 같다가, 돈이 문제가 되고, 거기에 필연적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거짓말로 관계까지 산산조각난다. 아무리 좋은 말로 타일러도 내 인생도 내가 어쩌지 못하는데, 남까지 바꾼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원래 알았지만 몇 번 씩 속아줬지만 어쩔 수 없는 느낌이랄까.
영민은 결국 훈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거기에 그의 가족과는 연락까지 안 되어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친구의 장례비까지 떠안게 된다. 훈이 삶을 마감한 곳에서 나는 냄새를 통해 그 친구와의 악연을 되새김하는 느낌이었다. 전화에 있는 단 두 개의 연락처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결국 마련한 빈소에서 영민의 계산이 따끔하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영민은 돈 생각 뿐이다. 영민의 냄새는 돈 냄새처럼 쿰쿰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