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인의 수명
루하서 지음 / 델피노 / 2024년 12월
평점 :

타인의 수명 – 루하서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루하서 작가의 전작인 <밤이슬 수집사, 묘연>에 이어 두 번째다. <타인의 수명>은 갑자기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수명을 측정해주는 수명측정기가 나온 세상의 일이다. 이 수명측정기가 단순히 남아있는 내 생명의 시간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양도가 가능한 수명연장 시대를 가져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전작에서도 계약서에 대해 꼼꼼히 읽으라는 가르침을 주었던 작가기에 수명측정기의 설명방법과 수명을 나눠주는 법에 대한 부분을 꼼꼼히 읽었다. 입양 받은 사람은 나눔은 받을 수 있지만, 입양자가 수양부모에게 줄 수는 없다. 입양을 핑계로 사람의 수명을 갈취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생명을 받는 사람은 평생 3번까지 가능하지만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은 평생에 딱 한 번 뿐이다. 아마 이 대전제가 도훈과 세희의 삶을 이렇게 힘들게 만들지 않았을까 한다.
책을 읽으며 오래전 봤던 <올드보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물론 오대수는 본인이 한 예전의 구업으로 고통받는 것으로 나오지만 도훈은 왜 이런 소용돌이에 빠져야만 했을까. 각자의 사랑이 사람들을 파멸로 이끈걸까.
사람과의 오해는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것 보다도 결국 물어봐야 알 수 있는게 아닌가 한다. 물론 거기에도 하얀 거짓말이라는 게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만 자신의 남은 날이 얼마 없다고 해서 내가 가지지 못하는 것을 깨부숴야만 속이 시원한 사람은 무슨 심보란 말인가....
일단 여러 주인공 중에서 제일 이해가 안가는 것은 차세희다. 일단 오해를 풀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떠난 캐릭터지만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또 한 명의 자식을 낳고 버리는 것은 무슨 경우지? 이걸 도저히 내 기준에서는 이해해보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이해가 되지 않는 주인공은 메인 캐릭터인 백도훈이다. 의지할 곳이 없어서 친구와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한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또 가연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은유의 곁에 두고 싶어서 부인으로 삼는 것은 또 무엇인가. 내가 제일 아끼게 된 캐릭터는 의아하게도 가연이었다. 나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의 곁에 있고자 거짓말까지 해야했던 사람. 벗어나고 싶었던 아버지에게서 벗어났는데 생각보다 새로 이룬 가정에서 나의 쓸모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사람. 그녀 나름대로 고군분투 하다가 결국은 본인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챈 모습이 가여웠다. 너무 나를 투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증오하던 사람이 생의 마지막에 한 일이 나를 위해서였다는 오해가 특히 그랬다.
결국 이야기의 오랜 오해는 풀린다. 은유의 안타까운 사연도 복수극의 수명이 돌고 돌아 은유에게로 갈 예정이다.
이야기의 시대처럼 진짜 수명을 측정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다들 오래 살기 위해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게 될까. 아니면 체념하고 될대로 되라의 삶을 사는 사람이 많을까 생각해보게 되더라. 일단 건강관리는 어느 정도의 노년이 보장된 사람들일테고, 아몰랑 시전하는 사람들은 시한부를 판정받은 사람이겠지. 상상이지만 지금 측정하면 나는 얼만큼의 생이 남은걸지, 혹시라도 내가 수명을 나눠줘야 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나눔수술에 동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혹시 돈 때문에 팔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