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의 공간들 - 소란하지만 행복했던, 다정한 그곳에 대한 단상
이주희 지음 / 청림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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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공간들 이주희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삶에는 늘 공간이 함께한다. 지금 앉아있는 곳은 카페이거나 회사의 내자리거나 늘 늘어져서 휴식을 취하는 쇼파일 수도 있다. 각각의 인생과 공간이 만난 이야기를 추려내 엮은 에세이를 만났다. 각 공간은 목욕탕에서부터 시작해서 미용실도 있고 중고마켓플랫폼(당근,번개)도 있다. 꼭 공간이라고 해서 물리적인 공간만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제일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수선집>이었다. 최근 낡아서 밑창이 좀 덜렁거리는 구두를 신고 다니고 있었다. 끈도 없지만 가죽이고 착화감이 좋아서 애정하는 신발 중 하나다. 그런데 회사 동료가 신발을 그런 걸 신고 다니냐고 해서 얼굴이 화끈거린 적이 있었다. 그렇게 다 떨어져 가는 신발을 신을 정도로 궁색하냐는 거였겠지. 그렇지만 <모든 순간의 공간들>에서는 수선집이 있는 동네 그것도 많은 동네가 좋은 곳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렇게 새로운 물건을 쉽게 사고 버릴 수 있는 시대에서 추억이 깃든 물건을 오래도록 돌보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자체가 따뜻하다고. 나도 저 신발이 애정하는 물건이 아니면 또 다시 수선을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의 터져버린 다운자켓 이야기에서도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동안 수선한 옷을 입고 있었다. 가볍고 따뜻하고 좀 기워낸 표시가 날 뿐 거의 10년째 잘 입고 있다.

그리고 나역시 <미용실>에서 진짜 문제는 머리()에 있는데 겉 머리(머리카락)을 얼마나 못살게 굴었던가에 대해 깊이 공감했다. 실연을 당해서 자르고, 기분전환을 위해서 자르고, 색깔을 바꿨었다. 이제는 주기적으로 색을 바꾸는 것이 머릿속의 문제보다는 늙어보임을 감추고자 함이라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이제는 염색을 하지 않으면 10살은 더 들어보인다. 슬프다는 말로도 모자란다.

마지막 <텃밭> 이야기에서는 작가가 아주 지적인 면만을 보여서 농사도 야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문외한이어서 놀랐고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사는 집에도 공공텃밭은 아니지만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서 작은 꽃밭과 텃밭의 주인을 1년간 모집한다. 생각보다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사실. 나는 관리사무소에 그렇게까지 줄이 늘어서 있는 것을 대선 이후에 본 적이 없다. 책과 이야기로 중무장한 사람에게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귀여움을 느끼게 하더라. 확실히 뭔가가 자라나는 곳에서 자랐는가 아닌가에 대한 차이는 있는 것 같다. 씨앗 한 줌이 엄청난 결과물로 돌아왔을 때의 그 뿌듯함은 작물과 자연 그리고 농부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알게 해준다.

이외에도 생각보다 최근에는 장례식장이 많이 생기고 있구나 이렇게 노령 인구가 많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혼식장이 장례식장이 된 사례도 많다니 사회에 필요한 시설이 느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복잡한 기분이 들 것 같다. 화장실 에피소드에서는 나 역시 재래식부터 수세식까지의 역사를 밟아왔기에 공감하며 읽었다.

<중고마켓 플랫폼>에피소드에서 하나를 바꾸면 그에 비해 다 바꿀려고 하는 노란 양말 이야기만 기억이 났었는데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이는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드니 디드로가 쓴 에세이의 제목에서 유래했다. "나의 오래된 가운을 버림으로 인한 후회"라는 제목인데 새 가운을 선물 받고 그에 어울리는 모든 걸 바꿨다는 연쇄소비에 관한 것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하나 사면 어울리는 모든 것으로 바꾸고 싶은 것을 <디드로 효과>라고 한다. 나 같은 충동적인 소비요정이 잘 휩쓸린다. 저자는 대신 중고마켓을 필요한 것을 담아놨다가 팔리거나 하면 그렇게 필요하지는 않았지 하는 누름돌로 쓴다는데, 나는 어째 비움보다 들임만을 해서 큰일이다. 대대적 나눔은 매년 해야지 하면서 자꾸 겨울철 나는 다람쥐처럼 모으고만 있다.

오늘은 특별히 눈이 와서 눈 쌓인 겨울 바다 여행이 생각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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