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빛처럼 비지처럼 ㅣ 달달북다 5
이선진 지음 / 북다 / 2024년 10월
평점 :

빛처럼 비지처럼 – 이선진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때로는 책을 통해서 내가 듣고 싶었던 답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이 그랬는데, 전혀 두부와 콩이 그려진 책에서 그런 답을 얻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반전이었다. 일단 주인공은 옹순모와 옹모란 남매다. 성적 소수자인 남매는 특히 오빠는 어머니께 커밍아웃을 했다가 두부로 싸대기를 맞은 전력이 있다. 남매의 어머니는 시방 콩이라면 응당 콩의 길을 가야할지도 모른다고 말할 것 같았다는 것에서 그냥 보통을 원했는지 모르겠다. 일단 소수자에게 휘두른 몽글몽글한 아픔은 휘두른 사람이 더할지 맞은 사람이 더 할지 모르겠다. 누구의 마음이 더 뭉그러질까.
아무튼 그래서 모란은 오빠의 선례를 보고 그냥 가만히 중간만 있기 전략을 택한다. 겨울 아라뱃길을 오빠와 자전거를 탄다. 순모가 타고 모란은 얹혀간다. 옥수수 술빵과 옥수수를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순모는 영화제에서 가능성을 보았지만, 아직 입봉 못한 감독이다. 입봉작마저 주연배우가 사고를 치고, 재촬영해도 답이 없다는 제작사의 요구로 엎어졌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애인은 있어서 어플로 만나 아직 실제 얼굴을 못본 애인과의 접선에 모란 커플을 같이 데려간다. 거기서 나온 친구에게 어플 사기급의 뒤통수를 맞으며 모란이 하는 이야기가 내 마음에 와서 들어찼다.
좋아해도 될만한 걸 좋아하라고. 계속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을 표시했는데 나에게 돌아온 것은 너는 나 아니면 못사는 거 안다는 기고만장한 대답 뿐이었다. 좋아해도 될만한 걸 좋아해야 돈도 굳고 시간도 굳고 마음도 굳는다는 남들이 보면 다 알고 있는 답을 나도 알고 있는데 왜 끝내지 못하는지 궁상떠는지 가슴에 와서 박혔다. 내가 원하는 걸 절대 해줄 수 없는 인간에게 내 사랑과 시간과 돈을 쏟는 건 무가치한 일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그런데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떻게 해야하나.
일단 세중(어플남)과의 만남은 헤프닝으로 끝났다. 좋아할 만한 것을 좋아하기로 한 것에서 단호한 순모처럼 되고 싶다. 그동안 연락하면서 정도 많이 들었을 텐데, 일단 이상향 월드컵에서 탈락하고 나니 차가운 그. 세중을 달래주는 사람과 역정을 내는 사람 중에 나는 어느 쪽일까 생각했다. 그런데 아마 세중처럼 울고불고 하는 쪽일 거 같다. 나는 나인데 어떻게 하냐고 할 것 같다. 짧은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만난 달달북다 시리즈 중에서 좋아하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한사람만 퀴어인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각양의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이라 좋았다. 만나려고 하면서 혹은 만나면서도 서로 외로운 심리를 보여주는 것도 보편적이라 좋았다. 근데 정말 좋아할만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걸까. 그게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무 자르듯이 내 마음을 잘라내 버릴 수 있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다 수월한데 나만 지난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