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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꽃 - 무작정 꽃집에 들어선 남자의 좌충우돌 플로리스트 도전기
이윤철 지음 / 문학수첩 / 2024년 9월
평점 :
어쩌다 보니 꽃 - 이윤철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나도 집에서 식물 기르는 것을 즐기는 식집사다. 그렇지만 솔직히 잘 키우지는 못하고 올해 관심을 가졌던 아프리카 식물들을 대단한 관심(즉, 과습)으로 많이 초록별로 보냈다. 선망하는 플로리스트 이미지는 작가가 말한 대로 청초하게 앞치마를 두르고 꽃을 정리하는 <꽃집 아가씨>이미지가 아닐까 한다. 나는 물론 식연을 위해서 이런 젊은 사장님이 계시는 곳 보다는 분화를 주로 사니까 화원에 다닌다. 전에 회사 아래층에 여리 여리한 꽃집 사장님과 친하게 지내서 아는데, 보기에는 여려 보이셨지만 선물로 들어가는 대형 화분들에 흙을 채우고 식재하고 하느라 엄청나게 육체노동을 거뜬히 하시는 것 보고 놀랐다. 그래서 보기보다 꽃집 일이라는게 노가다라는 것을 알고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여러 플로리스트의 종류 중에서도 <웨딩>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신부가 가장 빛나게 꽃장식을 하고 공간을 디스플레이 하는 분야다. 원래는 남자라면 공대라는 휩쓸림처럼 전기전자공학과에 들어갔다고 한다. 전형적으로 수능 시험에 맞춰서 진학한 케이스라고. 학과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도피성 군입대 후 제대 1시간 전 운명적으로 꽃집에서 일하고자 하고 기회를 얻게 된다. 그야말로 제목대로 어쩌다 보니 꽃의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우연히 연이 닿아서 제대 한 달 전에 정한 진로였지만 그 사장님께 배운 것이 많았다고 복받았다고 회상하고 있다. 어떤 경우 첫 단추를 잘못 꿰게 되면 고생길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나름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결국 학교는 자퇴하고 꽃을 위해 영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영국 플라워 학교로의 연수를 결심한 것이다. 이후 영국에서 취업까지 해서 좋은 사람들과 일해보는 행운도 얻게 된다. 책을 통해서 영국이나 우리나라나 플로리스트라는 직업군은 여초이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플로리스트로 일하는 영국 남자 플로리스트는 으레 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그런 편견속에서 소수자로 잘 지냈었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다수이지만 어떤 부분에서 소수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체험하면서 내가 누렸던 당연함을 역지사지 해보는 기회가 된다. 웨딩을 위해서 상담을 하는 고충에 대한 일도 재미있었다. 특히 문학수첩에서 나온 <일하는 사람>시리즈를 여러 권 읽었다. 독특한 직업의 세계와 근로하는 사람만 알 수 있는 고충을 미사여구 없이 풀어내 주어서 좋아하는 시리즈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절화 종류가 그다지 많지 않은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되었다. 인도산 장미는 20개 한묶음으로 오고, 생각보다 항공으로 전세계 농부들이 고이 기른 수입산 꽃들을 내가 보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 양재동 꽃시장은 월, 수, 금 열리고 그중에 수입은 수요일이 피터지는 전쟁날이라는 것도. 언젠가 새벽에 잠이 안오면 양재동 꽃시장에 수요일 파장 무렵 방문해봐야 겠다는 정보도 습득했다.
다시 웨딩 이야기로 돌아가서 소제목이 <플랜 B>는 언제나 필수라는 이야기였다. 늘 웹디자이너들 극혐하는 말이라는 심플하지만 화려하게 해주세요라는 말이 플로리스트도 공감하는 말이었다니 웃음이 지어졌다. 내가 본 꽃들이 어떤 것인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꽃 취향이라는 게 특별히 있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팍팍한 세상에서 꽃을 잘 사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내 결혼식이 어떤 무드였을지 좋겠다는 맞춤은 시장과 날씨와 여러 가지 변수들이 도움을 줘야하므로 꼭 어떤 것을 고집하기 보다는 플랜A보다 더 완벽한 플랜 B를 가지고 있어야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노가다인 덕에 골프도 테니스도 안치지만 골프 엘보와 테니스 엘보를 다 가지고 있다는 작가. 노동으로 다져진 아름다운 훈장이 아닐까. 본인이 불의 냄새를 아버지의 냄새로 기억하듯 본인의 아들이 유칼립투스 냄새를 케샤(회사) 냄새로 기억하길 바란다는 이야기에서 무척이나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작가는 수많은 꽃들에 둘러쌓여서 알레르기와 고생을 하고 있다지만 말이다. 나는 나의 아버지를 어떤 향기로 기억하게 될까.
어쩌다 보니 꽃과 함께 일하고 있다지만, 너무 행복해보이는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