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칸트를 만나 행복해졌다
이라야 지음 / 알토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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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칸트를 만나 행복해졌다 - 이라야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칸트는 많은 시간에 대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매일 정확한 시간에 산책하는 칸트덕분에 사람들이 시간을 가늠할 정도라는 이야기에서이다. 책에서 알려준 임마누엘 칸트는 대학교수 자리를 얻지 못해 과외로(요새라면 시간강사) 학생들을 가르치며,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쓰는데 보냈다고 한다. 수입이 넉넉치 못해서 사서일도 같이 했다고. 결국 46살에 대학교수로 임용되지만 말이다. 칸트의 저서로 <순수이성비판>이 있다. 저자가 칸트를 만나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며 칸트가 주창한 이론들을 풀어서 설명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칸트는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도덕법칙이나 의무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도덕은 행하는 행위자(자신)가 결과와는 별개로 자신의 내면의 발로에서 행했는가를 제일 중요하게 여긴다. 도덕은 그 자체로 가치있다고 여겼다. 도덕을 실천하는 것은 다른 무엇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혹시라도 착한 일을 했다고 남들의 칭찬을 받거나, 이익이 생기거나 하는 생각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가언명령>이라고 한다.오직 옳다는 이유만으로 도덕적으로 행동해야하며 그 자체로 선한 것이고, 선을 실천하려는 의지 <선의지>로 보았다. 나의 경우에는 이러한 <정언명령>이 인간 내부에서 거의 타락된다고 보는 입장이라 이렇게 이타적인 사람이 한 둘은 있겠지 하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나 같은 생각만 하는 인류가 있다면 숭고한 인류애로 사람들을 구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리 없겠지. 확실히 도덕적 의지만으로 실천하는 이타적인 사람들이 분명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선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것도 본능적 욕구나 욕망과 저울질 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이러한 저항을 줄이는 노력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면 어느 쪽 저울 추에 무게가 더 실릴지 알고있다. 그렇기에 선의지 쪽으로 좀 더 가중해서 생각해야 겨우 중립을 이룰 수 있을까 말까 할 것이다.

칸트는 도덕적 의무를 행함으로써만 인간은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너무 이상적이라 좀 무섭기까지 하다. 내면에 그런 선의지가 없거나 모든 사람들을 자기 이익으로 휘두를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지만 이렇게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도 도덕법칙을 수행하는 개개인이 많아진다면 서로에게 신뢰를 얻고 다 같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말한다. 나만해도 내면의 악의로 많은 도덕적 잣대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을 때가 있다. 약속시간에 늦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 등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한다면 보상과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착한일>을 하면 무언의 인정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도움을 주었는데도 <고맙습니다>라는 표현조차 듣지 못하고 나면 다음번에는 도와주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스민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의무를 다해보자고 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칸트를 만나서 행복해졌다는 것은 이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더 많아져서 각자의 선의지를 행하고 사회가 행복해지기를 바란 제목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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