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동화 여주 잔혹사
조이스 박 지음 / 제이포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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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박주영(조이스박)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동화 여주 잔혹사라고 해서 확실히 더 흥미롭게 읽었다. 내가 이 책에서 딱 한가지만 얻어 간다라고 말한다면 바로 4장 용은 왜 공주만 잡아갈까? 이다. 어릴 적 자주 하던 게임 중에서 (고전 오브 고전) 슈퍼마리오라는 게임이 있었다. 콧수염난 아저씨가 용에게 끌려간 공주님을 구하기 위해 숲을 헤치고 버섯을 먹고, 힘이 세지고, 덩치가 커지고 아무튼 그렇게 피치공주를 구한다. 어릴적부터 작가처럼 왜 게임을 할 때마다 왜 여자만 혹은 미모의 공주만을 납치하는건가. 나는 왜 꼭 남자가 되어서 그녀를 구하러 가야하는 모험에 뛰어들어야 하나 생각했었다. 동화나 게임이나 어린이에게 비슷하게 클리셰를 주입시키면 이런 부작용이 있다. 작가는 이것을 <곤경에 처한 아가씨 모티브>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여성성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 중에서 가부장적 사회가 허락하는 여리고 공주 같은 이미지만 남겨지게 기록된 것이다. 용이 공주를 잡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주자체가 용이라서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강한 힘을 가진 여자가 남성이 지배권을 가진 가부장제에서 배척당하는 것은 계속 있어왔다. 기가 쎈년, 광녀 거기에 마녀라는 꼬리표까지 붙으면서. 책에 실려있는 삽화 중 제일 충격적이었던 마녀사냥과 뒷돈 거래는 돈이 많은 미망인조차 거슬려 마녀로 둔갑시키고 죽여서 자체적으로 부를 재분배한 기득권층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백설공주 관련해서는 백설공주를 그 비싼 유리관에 죽음을 전시할정도의 트로피화 하는 것에 대해서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전시되고 양도되는 대상이 되는 것이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봐야한다. 죽음마저 전시된다는 것은 사람의 안온함마저 빼앗는 일이다. 그런데 그 죽은 사람마저도 왕자가 보고 반하는 대상이 되다니, 생각해보면 참 기괴한 일이다. 죽어서도 욕망이 되는 삶이 바람직한 것일까. 이제 어린이들에게 백설공주를 읽어주는 경우에 이런 생각이 날 것 같아서 두렵다. 동화 이면에 새겨진 너무나도 극명한 힘의 차이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책에서 소개한 도널드 바셀미의 <백설공주>를 읽고 싶어졌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재해석한 옆집사는 자기가 왕자지만 왕자인지 모르는 왕자와 그런 멍청이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백설공주의 이야기라고 한다. 엄청난 가사노동에 시달리며 현재의 자신을 애처로워 하는 것은 덤이라고.

책에서는 많은 동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어떻게 그려지게 되었는지와 기존에 그 뒤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대신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어른들이 지금까지 즐겁게 읽었던 동화를 다시 톱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잔혹한 권력과 해체를 이야기로 전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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