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 Andersen, Memory of sentences (양장) - 선과 악, 현실과 동화를 넘나드는 인간 본성 Memory of Sentences Series 2
박예진 엮음,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원작 / 센텐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Andersen, Memory of Sentences) - 박예진 편역 · 안데르센 저자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빨간 구두>,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등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를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현대인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읽었던 동화에 비해서 내가 안데르센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상당히 몰랐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안데르센의 사진을 거의 처음 봤다. 1805년 덴마크 오덴세에서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마르고 큰 키, 외모적 콤플렉스, 게다가 양성애적 애정문제 등이 있었다는 점은 전혀 몰랐다. 특히 그 유명한 <인어공주>는 후원자인 요나스 콜린의 아들인 에드워드 콜린을 향한 본인의 사랑 이야기가 소재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에드워드 콜린과 안데르센 모두 남자다. 본인의 절절한 사랑고백을 편지로 했지만, 콜린은 이성애자였기 때문에 안데르센의 마음을 거절했다. 게다가 청천벽력처럼 거절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고 한다. 이러한 저자의 경험을 대입시킨 후 다시 <인어공주>를 읽어보니 지금까지 아름답게 포장되었던 디즈니의 흥겨움은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왜 하필이면 인어공주의 많고 많은 가진 것 중에서 목소리였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말을 할 수도, 결국 왕자에게조차 자신이 물에서 구해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답답함을 잘 드러내주는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 모습은 나타낼 수 있다. 그림자처럼 드리워 질 수는 있지만 나만의 의견(목소리)은 낼 수 없다. 사람한테 또 이것만큼 힘든 포지션이 있을까. 물론 자신을 바라봐준다는 대전제가 있다면 모습을 드러내고, 손짓 발짓으로 뭔가 표현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동화에서나 현실에서나 왕자님은 다른 나라 공주와 결혼을 해버린다. 결국 언니들의 도움으로 왕자의 심장을 찔러서 그 피가 인어공주의 다리를 적시면 다시 인어가 될 수 있는 최후의 비기를 알려준다. 그렇지만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될 지언정 왕자를 찌르지 못한다. 결국 공기방울이 되어버린 인어공주는 공기방울의 정령들이 300년 동안 공덕을 쌓으면 다시 자신의 영혼을 가지고 승천할 수 있다고 해서 그 길을 택한다. 원래 <물거품이 되었다>라는 결말로 알고 있었는데 기억의 오류를 정정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으로 육체도 영혼도 다 잃어버린 자에게 300년이나 노력해서 영혼이나마 건질 수 있게 된다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아니면 자신의 영혼이 300년 동안은 그러모아야 할 만큼 분해되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지 않았는가 모르겠다.

내가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일러스트가 있는 동화책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것이 <빨간 구두>였다. 지금도 빨간 구두가 예뻐서 사고 싶을 때도 망설여지는 것을 보면 이 동화가 나에게 미친 영향력이 매우 큰 것 같다. 동화책에서 읽은 빨간 구두는 메리제인이었는데, 특히 빨간색 메리제인만 보면 귀신들린 듯이 춤추는 빨간 구두의 발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잔혹동화라고 하면 특히 이 허영심을 억누르게 하는 <빨간 구두>가 제일인 것 같다. 가난해서 팔려 오다시피한 카렌이 갖고 싶었던 단 한 가지가 반짝거리는 빨간 구두 이다. 양부모의 수발이라는 현실 문제를 회피하려는 사람에게 벌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분수에 안 맞게 갖고 싶은 것을 탐하면 결국은 어떻게 되는지 보았지? 하고 잔뜩 겁을 주는 느낌이다. 색깔 있는 구두 한 켤레가 검은색 구두와 착실하게 나오는 교회와 어떻게 대척점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 다리가 잘리고 나서도 목발을 짚고 나오는 곳이 결국 교회다. 다리 잃은 카렌이 회개 해야만 하는 곳으로 왔지만, 이미 잘려나간 욕망들이 계속 춤을 추고 있어서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자신이 다하지 않은 의무를 져버린 사람은 공동체에서도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도 잔혹한 묘사로 알려주고 있다.

책은 총 16편의 안데르센 동화 중에서 주요작품을 추려냈다. 간략한 줄거리와 영어로 번역된 기억할만하고, 필사해봄직한 문장들을 같이 실어놓았다. 더 유명한 동화들에 가려 유명하지 않은 작품들도 이번 기회에 읽어보게 되어 좋았다. 특히 <장미의 요정>의 경우에는 <데카메론>에서도 남친을 죽인 오빠들 몰래 연인의 머리를 화분에 심어둔 이자벨라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도 유럽 쪽에 구전되는 큰 모티브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신분의 차이를 넘지 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연인의 머리를 데려와 눈물로 가꾼다는 것도 좀 놀라운데, 결국 왜 가족들은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지지 못하게 많이 했을까.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정략결혼을 해야만 하는 그 시대의 낮은 인권 또한 보였다. 불쌍한 로렌조...

어릴 때 늘 잠들기 전에 읽었던 따뜻한 이야기들의 이면에 이렇게 차갑고 섬뜩한 잔인함이 녹아있다는 것을 알면 놀랍다. 이제는 인어공주 애니메이션이 보이면 인어공주가 인어왕자처럼 보일 것 같다. 그 시대에 소수였을 안데르센의 사랑의 깨짐도 잔혹하지 않았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