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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넷 딸, 여든둘 아빠와 엉망진창 이별을 시작하다
김희연 지음 / 디멘시아북스 / 2024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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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넷 딸, 여든둘 아빠와 엉망진창 이별을 시작하다 – 김희연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일단 제목부터가 슬펐다. 이 책을 읽으려고 다짐한 순간부터 절대로 울지 말아야지 하는 비장한 결심을 했다. 그리고 여러 번의 위기는 왔지만 결국은 울지 않았다. 아마 이 생각은 앞으로의 나와 이전의 나를 가엾게 보지 않기 위해 한 결심이다. 이른 나이부터 아빠의 돌봄을 하게 된 저자의 이야기가 슬프지만 내용은 의외로 씩씩하다. 힘든 상황에서도 아빠가 보내주셔서 만나게 된 것 같다는 영혼의 단짝 <썬>님과의 인연도 가히 소설급이다. 그렇지만 인생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다는 게 함정이다.
주변에서 강한 섬망과 치매로 부모님을 집에서 오랫동안 돌봐왔던 친구를 알기에 무척 이 이야기에 그 친구와 나의 지난날을 투영해가며 읽었다. 역시나 코로나 기간에 섬망 관련해서 집중치료실을 찾았었고, 응급실은 막혔던 기억이 난다. 섬망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하면서도 내 친구는 본인의 선택이 자가 돌봄이었다. 아주 마지막 3주 정도는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 친구가 힘들어했던 기억이 많이 떠올랐다. 책의 제목처럼 친구도 이별을 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려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책에서는 어떻게든 심부전이나 당뇨발 등 치료가 필요한 몸 때문에라도 요양병원으로의 선택이 불가피했다. 자식 된 입장으로 어떤 방향으로의 선택을 하든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주변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도움을 준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게 되었을 때 치매가 아닌 것 같다며 쉬운 돌봄에는 자식을 책망하는 말을 쉽게 뱉는 것을 보고 느꼈다. 그러더니 증세가 심각해지자 왜 요양병원으로 모시지 않냐며 바로 태세를 전환하는 것이다. 어제까지 나는 효녀였는데, 오늘의 나는 대역죄인이 되는 희안한 잣대다.
그리고 액팅아웃 관련해서도 보호자의 난감한 상황을 잘 표현해주어 공감이 많이 되었다. 이는 행동화라고 불리는 것으로, 환자들의 충동적인 행위가 방어기제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무의식적으로 환자 자신의 불안암과 분노 등이 격발된다. 책에서의 아버지는 간호사를 때린(?)것으로 여러 번 병원의 콜을 받았다. 그때마다 죄인이 된 기분이라 힘들었다 한다. 확실히 거대한 체구의 남성이 휘두르는 힘으로 간호사들이 처치하다가 얼마나 당황했을까도 싶고. 물론 환자도 원해서 그리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피해자는 발생한 상황. 보호자는 언제나 죄인모드다. 그래서 섬망이나 인지능력의 저하 고성방가, 외출 후 길 잃어버림 외에도 이런 상황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나중에 아버지의 옷가게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그렇게도 수익은 나지 않았지만 가게에 나가계셨던 아버지의 보물창고를 개방하면서 한차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나중에 돌아가시고 난 수 많은 병어들 가운데 사위의 이름은 병오 였을까 병우 였을까. 그 중에 왜 따님의 이름은 없냐고. 남이라고 생각했던 사위가 고마운 걸까. 사위 이름만 적으면 딸에게 더 잘 해줄걸 아신 아버님의 또 다른 큰그림인 걸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이 책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쩌는 운구 서비스를 몰랐을 텐데. 내 장례식에는 아마 이런 서비스를 해달라고 하면 이상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언제나 눈물만 가득한 것 보다는 가는 길 한번쯤은 폼 나게 가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책에 담겨있는 이야기는 수많은 울분과 괴로움과 회한이 겹쳐있다. 그렇지만 인생은 나고 죽는 것이기에 돌봄으로 지쳐있는 분들이 읽으면 위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