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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
전유성 지음 / 허클베리북스 / 202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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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 – 전유성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내가 전유성을 직접 본 것은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다니던 십여년 전 잘 가던 밥집이 공교롭게 같아서 자주 보았었다. 늘 사람들과 함께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전유성 하면 나같은 옛날 사람들은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라는 책이 라디오 광고를 무척 많이 했었다. 이번 책을 읽다가 언제 출간된 것인지 궁금했는데 무려 1995년 출간된 책이었다. 95년이면 거의 웹사이트의 조상님 수준인데 마케팅을 잘했던 책이라는 기억이 난다. 갑자기 고릿적 이야기와 저자의 약력을 들추어 내는 것은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이라는 잡담집 또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지금 MZ세대들에게 예전에 비행기에서도 담배를 피우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신기할 것 같다. 물론 비행기에 재떨이가 있는 구형 기종은 타본 적이 있으나 실제로 그 시기에 비행기를 타본 것은 아니다. 책에서 나오는 대한항공 여객 탑승 승객 제공용 화투가 화투장 뒷장이 흰색이라 하고, 포커도 제공했다는 이야기가 있길래 궁금해서 실제로 검색해 보았다. 띠용 실제로 제공했었구나! 유머집이다 보니 쉰소리인가 진짜인가 궁금했는데 팩트기반이었다니!
예전에는 대한항공 타면 귀여운 체크 무늬 담요도 제공했었는데, 그게 그렇게나 고스톱 치기 좋아서 사람들이 많이 훔쳐갔다는 이야기는 내가 전해주겠다. 고속버스를 타는 동안 기사님들의 담배냄새 때문에 멀미를 했던 것은 나도 직접 겪은 일이라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전유성보다 더 윗세대의 코미디언들은 나는 잘 모르기 때문에 그들과의 일화가 얼마나 유명하고 대단한 것인지에 대한 감흥은 잘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당대 탑 사회자의 코미디 대본을 본인이 써온다고 하고 약속을 지켜서 방송에 나온 것 까지 확인했다는 이야기는 그때 그 시절이 아니면 다시 만나기 힘들 이야기 같다. 가수 원슈타인도 그렇게 데모를 여기저기 돌리는 방식으로 결국 성공했다는데, 이젠 방송계에서도 소속사나 연계가 없으면 개인대 개인으로 만날 수 조차 없다는 것 아니겠나. 개인 경호원도 많아진 시대이니까.
읽으면서 단 하나. 힘없는 가장이 영양제를 먹고 힘내서 자녀들과 놀이공원 가는 광고가 거지같다는 것은 가장의 휴식시간을 보전해 주기 위한 마음일까나. 밭 매는 것보다 힘든 육아도 거뜬하게 해낼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은데, 이 부분은 개인의 해석차이니까.
그리고 정말 엉뚱하고 기발한 문화기획을 많이 했었고, 하고싶어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실제로 자도되는 클래식 공연이라 적극 환영이다. 남들의 이목 때문에 잘 차려입고 졸린데 눈치봐가며 악장사이가 아닌가 박수 칠때인가 고민하는 사람들 많지 않은가. 편안하게 봐도 되고 졸아도 되는 공연이라면 얼마나 자유스러운가. 개나 소나 와도 되는 반려동물 친화적 콘서트도 마음에 든다. 아이들이 함께 와도 되는 어린이 특화 클래식 공연도.
진짜 보고싶은 장면이라면 짧은 공상 답게, 우리 동네는 배가 제일 맛있습니다. 또는 사과가 제일 새콤달콤 합니다 이렇게 써진 잠바를 입고 동네 특산품을 선전하는 정치인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다. 번쩍번쩍한 금뱃지만 달지 말고 한 작물만 홍보하면 밀어주기라 할 수 있으니 그 해의 부진한 농산물 밀어주기를 과잠 등판에 새기듯이 하면 어떨까. 책을 읽다보니 나도 주어진 잡담에 브레인 스토밍으로 가지치기를 계속 하게된다. 책의 수많은 여백들은 그런 생각을 스스로 해보라는 것이 아닐까.
남원에서 살고 있는 그가 여전히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재미난 사건들을 기획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