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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의 여자 - 뮤리얼 스파크 중단편선
뮤리얼 스파크 지음, 이연지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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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의 여자 – 뮤리얼 스파크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뮤리얼 스파크의 11가지 중단편을 만나보았다. 뮤리얼 스파크는 <더 타임스>가 선정한 전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 중 한명이라고 한다. 작가 자신이 최고의 작품이 <운전석의 여자>라고 칭할 정도면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실려 있는 작품들 중 제일 길고, 제일 기괴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주인공 리제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이유가 설명되지 않은 채로 속된말로 남자에 미친 사람처럼 남자남자를 달고 살아서 이게 무슨 스토리라인인가 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출간된 지 50년이 지났는데, 처음 본 타인으로서의 여성을 대하는 시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 충격이었다. 단순히 나를 데려다 준다는 말로 포장되었지만, 피아제가 시트를 눕힐 수 있으니까 선택했다는 정비공에게는 너무 그 솔직함에 두려움과 함께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댁은 피아제를 넘겨준 덕에 살았으니 그런줄 아쇼. 진짜 웃긴 파트는 계속 나온다. 웃겨서 나는 웃음이 아니라 이렇게 밖에 보지 않는가 싶어서다. 나도 모르게 피해자에 대한 어떤 <그럴만한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물론 정말 리제처럼 어떤 밝힐 수 없는 이유로 죽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지난하게 해온 일이 무료해서일 수도. 뻔한 클리셰처럼 불치병일 수도 있다. 섬뜩하게도 본인의 마지막을 묘사하는 사람은 흔치 않겠지만. 그렇기에 여권이 발견되도록 쑤셔 박고, 만나는 사람들한테 마다 부캐를 내세워 거짓말을 일삼는다. 마지막 장이 나오기 훨씬 전에 작가는 리제의 죽음을 상세하게 묘사해 준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죽을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걸 실행하는 사람이 누구인가가 궁금했다. 과연 그녀의 욕망은 완성된 것일까.
그 다음으로 재미있었던 단편은 <포토벨로 로드>다.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발견한 4총사 중 나는 5년 전 살해된 귀신이다. 바늘을 발견하고 찔린 사진속의 나 그래서 별명이 바늘이다. 친구들을 오래간만에 발견하고 건초더미가 수북한 채로 조지를 부른다. 결국 바늘 때문에 미쳐버리는 조지. 사람들은 조지가 하는 말을 믿지 않으며, 조지를 안타깝게 본다. 그런데 독자들은 안다. 진짜 불쌍히 여겨야 할 사람은 바로 바늘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바늘의 외침때문에 사람들은 조지만 바라본다. 애저녁에 조지 녀석이 아프리카에서 결혼하지만 않았어도 좋았다. 그런데, 이 결혼마저도 나를 그렇게 뒀으면 안 되었다고 변명하는 것을 보면 인성 자체가 터진 놈 같다. 본인이 책임지고 싶지도 않으면서 한 여자와 자식들의 인생을 망친다는 건 생각 못하고, 입을 다무는 조건으로 돈을 받으니 된다고 생각하는 것 부터가 벌 받아도 싼놈이다. 다른 사람의 비밀을 듣게 되는 것 그리고 소신대로 행동하겠다고 하는 것도 불화를 일으킨다. 비밀을 나누는 것이 사피엔스의 본능이라지만, 비밀이라는 한배를 탄 사람은 역시나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되겠지. 그런게 비밀이고 소문이니까.
이외에도 초단편인 <운전기사 없는 111년>도 재미있었다. 결국은 소원성취한 대감집 마님이 된 나의 친척은 행복할까 생각해본다. 사실이 아닌 것을 알고있는 것은 오직 나 뿐이다.
책의 작품들은 다 조금씩 다른 의미로 서늘했다. 지금도 이 폭력적이거나, 발언권 없는 부분들은 사찰느낌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