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세지옥 - 91년생 청년의 전세 사기 일지
최지수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10월
평점 :

전세지옥 - 최지수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처음부터 읽기 쉽지 않은 주제였다.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경험담을 내가 오롯이 읽어도 될까 그런 마음이었다. 책을 읽기 전 분명 전세사기를 당했다고 했는데, 왜 중간에 해외취업을 한걸까. 무슨 사정이 있어서 나가게 된 것일까 의아했다.
사기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이 당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방비해도 맘먹고 사기칠려는 놈들과 붙으면 멀쩡한 사람도 다 털리게 되어있다.
작가가 집을 구할려는 이유는 참으로 아련했다. 천안의 일본 대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인성 모질이들이 다니는 회사에 취업했다. 원래 꿈은 시력은 나쁘지만 비행기를 모는 파일럿이 되는 것이다. 천안으로 멀리 떨어지면서 기숙사로 주거비도 아끼고 높은 연봉에 성과급까지 받으면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시도때도 없이 시비를 거는 선임이나 4명이 해야할일을 주먹구구 식으로 신입에게 맡기는 건 많은 회사들의 공통점인 것 같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이렇게 막한다고?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 바로 회사. 이 즈음 이 회사를 벗어나고자 한 마음이 스물스물 들었고, 해외취업에 도전하기 위해 영어를 공부했다. 살고 있는 기숙사는 바퀴벌레가 들끓었기에 집을 얻고자 한 것이다. 몸을 타고넘거나 문을 열 때마다 파스스 하고 사라지는 바퀴벌레의 소름 끼치는 모습이 너무 잘 묘사되었다. 갖은 야근에 시달렸고, 내 몸 하나 뉘일 편한 공간을 찾아서 전셋집을 얻은 것이 작가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설명란에 큰아버지가 부동산 중개일을 하신다고 해서 그래도 한번 보여드리고 했겠지 했는데, 역시 사람이란 계속 부탁할 수는 없는 터. 부동산 시장의 열기와 함께 오늘 본 집은 내일 사라지고, 점점 더 열악한 집을 보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면서 문제의 그 리첸스 빌라 1004호와 만나게 된다. 전세금은 5,800만원. 부동산 실장과 중개사의 말빨과 조바심이 그런 사달을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혹독하다. 가혹하다. 실제로 중개사가 매도인 대리를 해서 계약하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해외취업 면접 합격에 겨운 그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집이 경매에 들어갔다는 경매통지서를 확인하게 된다. 책에서 수없이 많은 음식과 욕망과 슬픔이 결합되어 나온다. 갑자기 이말을 왜 하냐면, 사람이 먹고 사는 게 젤 크다고 하는데, 그 중에 두가지나 앗아가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는가가 너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동사무소에서 신라면을 한번들 더 얻었을 때 작가가 느낀 감정과, 닭 날개를 먹지 못했을 때, 신라면 대신 1+1하는 라면을 샀었어야 했을 때 몹시 슬펐다. 물리적으로 굶기만 한다고 측은하게 여길 게 아니다. 사람으로서 그렇지 못한 동정의 눈길을 받았을 때 그가 느꼈을 인격적 모멸감도 그에 못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경매가 시작되어도 나는 어느 정도 보전할 수 있는 대항력이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했지만 결국 경매가 종국되고 나서 돌려받은 돈은 없었다. 새로 경락이전 받은 집주인과의 새로운 틈바구니 속에서 내가 명도를 해줘야 할 날을 최대한 정중하게 그렇지만 간곡하게 부탁해야만 했다. 그리고 전세대란이 연쇄폭발처럼 일어나면서 여러 관공서를 다니며 생계 지원금을 신청한다. 중간에 대출금 상환을 위해 아침 밤 낮 할 것 없이 투 잡을 뛰면서 빚을 갚으려는 작가의 경험담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였다면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얼마 만에 생활전선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정말이지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을 했지만 책에서는 그래도 꿈을 잃지 않고 앞으로도 내앞의 불은 내가 끈다는 도 아니면 모의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가 대단해 보였다. 연애와 결혼은 포기했어도 파일럿이 되고자 하는 그의 희망이 그를 앞으로도 잘 이끌어주길 바란다. 나도 힘든 일을 겪고 나니 그래도 마음속의 한 가닥 희망이 있어야 살 수 있더라. 책의 말미에 전세사기를 안 당하는 방법은 역시 전세를 안 얻는 법이라는데 이게 웃프지만도 않은 것은 왜일까. 이렇게 여러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경제사범들에 대한 허점을 그대로 놔둬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까지 이어졌다. 집을 사는 건 힘들다. 월세도 힘들다. 그런데 이젠 전세까지 이 모양이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