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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려치는 안녕
전우진 지음 / 북다 / 202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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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려치는 안녕 - 전우진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참 가지고 있기에 신기한 능력인데 돈 되는 능력으로 써먹지 못하는 우리의 주인공 병삼. 그가 가진 능력은 있는 힘껏 상대의 뺨을 때리면 그가 잘못을 뉘우치거나 묻는 말에 사실대로 말하는 진실의 방 효과가 있는 능력이다. 그렇지만 가족도 꾸리지 못하고 특별히 좋아하는 일도 없어서 운전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장년이다. 지금은 우연히 만난 학교동창 정바울 목사의 교회에서 스타렉스 운전을 해주고 있다. 정바울 목사도 신기하게 절에서 자라났지만 교회 목사님이 된 특이케이스다. 이 절에서 자라났다는 것 때문에 나중에 전재일 목사에게서 이단 취급을 받는 캐릭터다. 책 소개에서는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지만 작가와 직업도 같고(?) 수상경력도 같은 전우진이 있다. 이 친구는 참 여기저기 쓸모가 많은 캐릭터인데, 촬영도 잘 할 줄 알고 여러 아저씨들을 대신해서 계획도 짜고, 굳은 일들도 맡아하고 암튼 멀티맨이다. 전목사는 잠깐 병삼을 자기 교회로 데려오기 위해 쓰는 미끼 정도로 여기지만 극의 후반부에서는 우진이 없으면 안 될 정도다. 초반의 콩쥐 설정은 후반을 위한 빌드 업 이었을지도 모른다.
교회를 안 다니지만, 교회의 일을 하는 사람이 병삼이다. 실제로 나도 약간 그런 포지션이라서 엄청나게 공감했다. 왜인지는 묻지 마시라 교인이 아니어도 교회 일을 하는 사람은 제법 많다. (심지어 나도 무보수임) 재일교회로 옮기고 나서 병삼이 받는 월급 3백 만원의 달콤함에 적힌 세부 내역서에서 같이 기함했다. 하나님께 내야하는 돈을 포함해서 월급을 받는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게 왜 물어봐야 할 정도로 당연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날강도같이 느껴지고 그런 게 이 소설에서는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특별한 게 페이지터너라고 할 만한 책이다. 다른 소설과 다르게 흡입력과 전개가 빠르기도 하지만 대사와 지문간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읽다가 한 번 만 놓쳐도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이었지? 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만 병삼은 느린 충청도 사투리를 써서 확실히 구분이 되고 보라는 불안하거나 초조해 하는 말투를 쓴다. 전목사는 특별한 느낌은 아니지만 서울말일거 같고. 숨가쁘게 넘어가는 책장 속에서 충청도 사투리 느림의 미학과 이들이 선정하는 메뉴의 기세를 보면 재미있다. 그리고 프루스트 효과처럼 병삼이 느끼는 집에 대한 향을 묘사하는 것이 이 책의 다른 축이라고 느껴졌다. 물론 방향제로 조말론의 라임 바질 앤 만다린을 쓴다는 건 일반 사람들은 쉽지 않다. 일단 비싸니까. 그렇지만 그 디퓨저가 햇살과 어우러져 내는 포근함은 적확하게 상상이 갔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과 그 관리비도 1/n 내가 전기세를 내고 있는 편안함이라는 것도. 그리고 데보라가 사용하는 바이레도의 노맨즈랜드 장미향수는 이름 직역 그대로인 것인지, 보라의 역할의 비유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래도 땀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나름 향덕인 내가 추천한다면 바이레도는 향이 연하니 좀 더 진한 향을 픽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엑스트레가 나오는 향수라인이거나 하는 정도. 앞서 말했듯이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기 때문에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렇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읽기에는 이 내용이 편치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해두고 싶다. 교회에서 말하는 이단과 진실과 믿음이 보기에 따라 변형될 수 있는 것이라고 등장한다. 작가가 말하는 것은 꼭 교회라는 집단 안에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고, 그만큼 사람들이 믿고 당연하게 여기는 게 변질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생각보다 병삼의 능력은 만능이 아니다. 손이 망가지면 쓸 수 없고, 대단한 인맥과 정보를 가진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그가 토해내는 사실이 금싸라기 정보가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대단히 진실되게 산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청렴함만 보장해주는 꼴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노비 부리는 마님(우권사)이 제일 고결해서 그것도 작가가 비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이 능력이 있다고 해도 결국 사람을 때려야만 얻어지는 보상이라 이렇게 CCTV가 많은 세상에서는 역고소 당하기 쉬운 위험한 능력이라는 생각이다. 그래도 이런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써보고 싶지 않을까. 나만 알고 있기엔 아까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