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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우는 말들 - 나를 나로 살 수 없게 하는 은밀하고 촘촘한 차별
연수 지음 / 이르비치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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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우는 말들 – 연수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오래간만에 회사를 옮겼다. 책에서도 등장하는 <용모 단정한 지원자>라는 타이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거기에 과년한 독신자로서 들어야만 했던 <요즘 여자들 너무 이기적이야>라는 편의 <취업>현실에 관해서도 이어지는 이야기다. 요새는 차별금지법이다 블라인드 채용이다 해서 입사지원자의 개인사를 묻지 않는 쪽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물론 느끼기만 한 것이지 돌려서 묻거나, 미안하지만 이라는 쿠션어를 달고 묻는 일은 흔하디 흔하다. 역시나 면접 중에 나온 질문은 기혼자이냐는 물음이었다. <아니요. 미혼입니다.> 대답하고 나니 <우리 회사는 기혼자를 선호합니다.> 라는 대답이 이어졌다. 대표와의 일대일 면접이었기 때문에 계속 대표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가정을 이루고, 가족의 구성원을 생산하고, 가정이 평안한 곳인 사람들이 일도 잘한다는 개인적을 생각을 가지고 있으시단다. 책에서는 또 금방 결혼해서 퇴사하거나 출산휴가를 쓰거나 하는 제도의 단물을 빨아 먹을 거라고 짐작하는 기업인들에 대해 다뤘지만, 또 이런 반대급부의 물음은 처음이었다. 나는 애써 내가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해야 했다. 그것도 매우 죄송해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취업이 결정되었고 2차로 용모단정의 늪에 빠졌다. 집에서도 안 듣는 결혼이야기로 혼을 빼놓으신 그 분은 내가 진짜 1년 이상은 결혼 이야기를 들먹거릴 수 없을 정도의 사연을 이야기 해주었는데, 거기에도 결국 편견에 차마 담지 못할 말까지 섞어버린 통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맨 마지막 꼭지처럼 분노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의식주를 연명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이제 막 취직했고, 그는 돈을 주는 고용주였기 때문이다. 물론 모멸감을 느꼈지만, 웃어넘겼다. 단 둘이 있을 때 한 이야기여서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될 게 뻔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이 사람이 그런 말을 했었다는 것에 대한 사과를 꼭 받아내게 할 것이다. 이제는 용모 단정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다. 최근 체중이 많이 빠져서 이제 BMI로 정상 체중이 되었다. 역시나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시는 분은 뚱뚱한 사람에 대한 혐오가 있으시단다. 아마 내가 작년과 같은 체중이 90kg이었으면 보자마자 나가라고 했을 것이란다. 이렇게 용모단정이라는 말에 차별이 심하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전에 회사에서는 살이 계속 빠지니까 먹는 걸 신경 써주었다. 진심으로 잘 챙겨먹으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이 사람과 같이 밥을 먹으면 뚱뚱한 여자, 살찐 여자, 자기관리 못하는 사람 말이 한 번씩은 꼭 나와서 밥알이 입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점점 밥을 남기고 먹게 된다. 이런 것도 용모단정 가스라이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나, 무슨 사람들이 다 마른 체형이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말끝마다 여자가, 여자가 날씬해야지 하는 말을 달고 사는지. 앞서 말한 결혼이야기처럼 이 두 가지 모두 결국은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라는 친절을 달고 있어서 검열받는 게 아니라는 뉘앙스를 힘주어 말하고 있다. 책에선 나온 서비스직에 국한되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용모가 중요하니 꾸미세요. 라는 것도 문제지만, 비만인을 사람의 스타트라인에도 세우지 않는 경우는 오랜만에 당해봤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없던 체중강박이 생겼다. 거기에 먼저 있는 사람도 자연스레 물든건지 살찔까봐 이런 건 못 먹겠어. 라는 말을 하는 회사다. 개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이런 외부의 통제에 계속 당하게 되면 나조차도 이런 말을 꺼내게 될 것 같다.
어딜 가서도 밥을 먹어도 잘 먹고 여자라도 1인분을 남기지 않는 나였는데. 책에서 음식의 양에 대한 성차별도 나온다. 도대체가 나도 이렇게 임의대로 많이 먹을 사람(=남자)을 정해주는 것에 무척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그렇게 남겨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아까우면 정량, 소량, 이렇게 나눠서 판매하거나 선택의 가능성을 주고 판매하는 게 맞지, 판매자 임의로 소비자를 재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진짜 남자랑 둘이서 밥 먹으러 가면 밥 많이 담은 쪽을 당연스레 남자 쪽으로 놔주는 것 이런 것도 불편함이다. 눈에 보이는 차별이다.
아, 최근에 운동을 마치고, 술 취한 남성이 쫓아온 일이 있었다. 그냥 집이 같은 방향이라서 쫓아온 게 아니다. 실제로 길에는 나와 그 취객 빼고는 아무도 없었고, 나를 지칭하며 따라왔다. 최근 묻지마 폭행, 살인사건 등이 일어나서 매우 무서웠다고 남자인 혈육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결국 돌아온 대답이 이렇게 또 성차별적 문제가 남자 쪽으로 화살이 기우는구만 하는 것이었다.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물론 그 취객이 흉기를 든 것도 아니었고, 무슨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야간에 혈육을 붙잡으려고 했다는데 돌아온 답이라니. 나는 그 뒤로 그 길을 일몰 후에 가지도 않을뿐더러, 운동센터에 다녀오던 길이라 차를 가지고 간다. 나에게는 생명의 위협이 될 일이 성인남성에게는 남자들을 다 싸잡아 오해하는 해프닝 정도의 감정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서글펐다. 아직도 그 길을 차로 지날 때면 긴장되고 불안한데 말이다. 따끔하게, 그건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앞서 말한 돈 주는 고용주에게는 못했지만, 혈육에게는 조금이나마 의견을 피력했다. 이정도로 그쳐서는 안 되겠지만, 은밀하고 촘촘한 차별에 대항해서 억울할 때 말해야 하는 매뉴얼을 생각해야 한다는 게 슬프지만, 좀 더 말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