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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 북다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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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안보윤 외 6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매년 챙겨서 수집하는 작가들 모음집으로는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이 있다. 신예 작가들이 나중에 중견작가로 크거나 대박을 터트리는 장편작가가 될법한 사람을 찍어보는 재미가 있다. 이번에 읽게 된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이 문학상이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제대로 읽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다른 작가들의 이력에 워낙 <이효석문학상>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이효석 문학상 상금은 3천만원이며 <메밀꽃 필 무렵>으로 다 알고 있는 소설가 이효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2000년에 제정된 상이다. 올해로 제24회를 맞았다. 등단 15년 이내의 작가들 작품 중 전년 5년부터 올해 4월 사이에 발표된 중,단편소설이 참여작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주로 보았던 젊은작가상과 달리 자신의 문체와 작가정신이 뚜렷하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24회 대상작이 대상이 될 만하구나 하고 느꼈다. 작품명은 안보윤 작가의 <애도의 방식>이다. 처음에 묘사되는 동규의 차분함을 보면서 갑자기 뺨을 맞는 씬으로 전환될 때 너무 놀랐다. 화자가 커피숍에서 일한다는 것을 보고 그 전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기에 여자겠거니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 폭력에 남녀가 따로 있진 않다. 여성적인 문체의 흐름이라 여성서사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 것. 이후 이름이 나오고 그 미도파라는 터미널 찻집에서 일하는 <동주>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이어진다. 자기를 동전의 앞뒤를 묻고 동전던지기를 할 때마다 줘패던 승규가 돈까스집 아들이라 돈까스를 팔지 않는 미도파가 마음에 들었다는 동주. 같이 있던 승규가 사망하게 되면서 그동안 학폭 피해를 받았던 것을 말하지 않아야만 가해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묘한 입장에 놓여버린다. 그래서 늘 동주가 가는 곳은 소란이 일고 수근수근 댈 수 밖에. 그렇지만 나를 위해서도, 엄마와 내 변호사를 위해서도, 승규 엄마를 위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승규가 가지고 다니던 기념주화가 호돌이가 그려졌다는 것을 잘 알겠는데, 아마 젊은 독자층은 알 수 없기에 <호랑이>라고 썼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호돌이 그림을 보면 이 소설이 생각나고 동전을 주우러 가는 동주가 생각나서 슬퍼질 것만 같다. 내가 아는 호돌이는 그런 이미지가 아닌데, 어느덧 그 귀여운 캐릭터에 슬픔이 입혀졌다. 그렇지만, 앞이나 뒤가 아닌 내 의견을 말한 첫 대상이 그 호랑이였다는 것에서 동주에게는 큰 변화였지 않을까. 동주가 처음으로 취한 행동이, 언제나처럼 승규가 취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둘 도 몰랐을 테니까 말이다.
확실히 지금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글이고, 각자의 입장을 너무나 잘 알겠어서 슬픈 글이었다.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니 동주와 승규와의 관계가 나오는 연작소설이라는 말이 있더라. 2021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완전한 사과>도 읽어보려고 한다. 동주 만큼이나 끈질기게 아들의 마지막을 알고 싶어했던 승규 어머니의 마음도 너무 이해가 된다. 미도파에서 동주를 바라보며 굳이 함박스테이크를 시켜서 짓이겨버리는 그 마음도 너무 이해가 되었다. 늘 괴롭힌 가해자의 엄마지만 지금은 피해자가 되어버렸기에, 그 마음은 또 어떠하겠는가.
그 밖에 마음에 든 작품은 가고 싶었던, 그것도 정말 요가클래스를 위해 가고싶었던 나와 같은 열망을 가진 화자가 등장하는 작품이다. 제목은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이며, 강보라 작가의 작품이다. 유행하거나 잘나가는 문화계 인사들을 씹어 제끼는 취미는 나는 물론 없지만, 주인공 김재아는 조금 이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다. 젊을 적의 발리여행을 생각하고, 이젠 나이 들었지만 8년만에 새로 산 리모와를 들고, 한정판 반클리프를 차고 우붓의 게스트하우스로 향한다. 물론 싱글룸으로. 새로 산 리모와가 뭔지 알겠고, 거기에 요가 매트를 정성껏 챙겨간 것도 알겠다. 물론 매트에 대한 내용은 생략되었지만, 재아의 허영을 봤을 때 만두카 프로나 룰루레몬 이상이겠지 하는 마음. 책에서는 짧게 묘사된 보라색 반클리프 5모티브도 실제로 나왔으면 좋겠다. 얼마나 예쁠 것인가. 젊은 사람들에게 더 잘 어울린다며 알함브라를 풀러 줄 때의 재아의 마음도 참 이해가 간다. 근데, 그렇게 풀러줄 것 까지야 있나...과시욕이 심한 캐릭터. 내 마음은 언제나 젊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던 인싸력을 가진 왕년의 난데, 지금은 뒷방에서 돈 많은 부르조아 아줌마(혹은 언니) 정도로 불리는 나의 괴리감을 계속 드러내는 장면이 이 소설의 재미랄까. 급이 맞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은데, 호구가 자꾸 되는 묘한 불편함과 으스댐 그 사이의 사람 심리를 잘 표현한 글이었다. 그래도 내가 재아가 바라보는 반장님 급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니 조금 서글펐음.
마지막으로 23회 대상 수상작인 김멜라 작가의 <이응이응>도 이응이라는 기계의 쓰임과 그 소재가 신선해서 기억에 남는다.
중견 작가들의 밀도있는 글을 만나서 좋았고, 앞으로 더 챙겨볼 문학상 작품집이 생겼다는 것이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