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김종해 지음 / 문학세계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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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 김종해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김종해 시인의 산문집 뒤 새로 나온 작가의 신작 시집을 읽었다. 60년동안 시를 써온 시인의 인생관과 사랑과 인생을 보는 눈이 드러나는 시집이었다. 젊은 시인이 쓰는 시는 젊고, 나이든 시인이 쓴 시는 늙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간의 지남에 따라 이러한 것은 아쉬웠고, 시간은 지나가네 라는 관조의 느낌에 스며들어 있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책은 총 5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타이틀이 실린 1장의 시들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특히 <오늘은 비>라는 시가 좋았다. 내용은 비가내리는 일상의 다짐 마음가짐 같이 들렸다. 어제 밤이 써놓은 기별을 놓쳤다. 사람사는 일은 다 그렇고, 단순하다는 것. 비가 오면 비가 오니까 우산을 챙겨 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비가 오니까 오늘 내린 빗방울에 조금은 옷자락이 젖을 것이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마저 요새는 쉽지 않은 세상이 된 것 같다. 언젠가 또 비를 만나게 되면 어제밤에 하늘이 나에게 전갈을 준 것을 이제 알아챘구나 하고 생각해야지. 일상의 바람에 부대낀다는 말도 좋았다. 우리는 늘 같은 시간의 총량인 하루를 살아가고, 비슷하게 일상을 살아내지만 거기에 스미는 바람은, 희망은, 고난은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다. 그렇지만 빗물이 스며들든, 폭풍우가 휘몰아치든 젖는 일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래야 하루가 가고 비오는 날도 가고, 맑은 날도 오기 때문이다.

두 번째 마음에 들었던 시는 <능소화, 이름을 묻다>이다. 이름을 잊은 과일 망고와, 너무 예쁘지만 자꾸 잊었던 예쁜 꽃 능소화. 예전이었으면 한 번 들어서 잊을 리 없는 단어들이었겠지만, 시간과 나의 컨디션과 추억들도 조금씩 잊혀저간다는 생각이 드는 시였다.

이후 장에서는 시인이 사직로 경희궁의 아침 16층에 사신다는 내용에 얼마전 봤던 수지 주연의 <안나>라는 드라마가 생각났다. 안나라는 주인공이 삶을 훔쳐다 살게 된 원주인이 그 경복궁이 한눈에 훤히 드러나보이는 집에 사는 씬이었다. 그리고, 그걸 마음에 담아뒀다가 기어코 처마 한자락이라도 보이는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오는 신이었다. 아마 한 자락이든 한 창이든 시인이 보는 창밖은 훔치고 싶을 만큼 이기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갑자기 그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집에서 볼 수 있는 거리가 일평생을 원하는 것 이었겠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 폭풍의 눈 같은 큰 거리에 살면서 지내면 촛불이 흔들리는 것도 수없이 볼 수 밖에 없겠구나 하고, 항해와 촛불에 대해 생각했다.

위치 하나로 시어의 뜻을 여러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손녀인 오른의 탄생을 축하하는 시에서는 사람의 생명이 탄생함을 축복함을 충만한게 느낄 수 있었다. 아내가 집을 비운 동안 에로영화를 몰래보는 시에서는 평범한 필부의 모습도 보여주어 친근했다. 항해일지와 연작처럼 느껴지는 지하철을 갈아타고 신논현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가며>도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채권자처럼 가을이 오고 있다는 표현으로 나를 사로잡은 시 <달력을 뜯어내며>를 생각한다. 채권자들처럼 득달같이 오는 짧아져버린 가을의 한가운데와 채무자처럼 남은 시간이라. 촉박하고, 나에게 남아있는 쓰지 않는 시간을 가늠해 보는 시인의 눈빛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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