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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뷰티 (완역판)
애나 슈얼 지음, 이미영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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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시점의 1887년 작품 : 블랙 뷰티 - 애나 슈얼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블랙 뷰티> 라고 불렸던 말의 시점으로 본인의 일생을 추억하는 회고록이다.
말의 시점에서 씌여서 엄마와 초원에서 뛰놀던 때부터 시작한다. 동물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이야기로 유명한 작품으로는 나츠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있다. 모든 부분이 만족스러웠던 고든저택에서부터 시작해 여러 주인고, 마부들을 만나고, 이집 저집으로 팔려 다닌다. 그러다 마차 끌기, 중노동 당하기 등을 거쳐 마침내 조금 복지에 신경써주는 집에서 마지막 여정이 끝난다. 어릴적 고든부인의 병 때문에 의사를 부르러 다녀온 날, 과로한 블랙뷰티에게 찬물과 덮개 없이 무신경하게 말을 돌본 조이 때문에 폐를 다치게 된다. 여기에서 세상에 사악함 다음으로 나쁜 게 무지한 거라며, 사람들끼리는 언성이 오간다. 몰랐다, 해를 입힐 의도는 없었다는 말이 면죄부가 되지 않으며 자신의 행동에 인과관계가 있다면 응당 주의해야 한다는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런 사람들의 대화가 소설의 여러 부분에 등장한다.
특히,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첨예한 부분인 동물의 외모변형에 대한 이야기도 그때나 지금이나 몇 백년이 흐른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자기 자식들의 귀는 날렵해 보이도록 뾰족하게 자르지 않는 걸까?
우리에게 하는 행동이 합리적이라면 자신들도 그렇게 해야 마땅하잖아.
사람들은 무슨 권리로 하느님의 창조물을 괴롭히고 망가뜨리는 거지?"
p. 60
과수원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올리버경이 전해준 이야기다. 자기 친구인 테리어종의 스카이의 자식들을 데려가 용맹하게 보이려고 귀를 잘랐다는 이야기에 분개한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어떤 종의 꼬리 자르기, 혹은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기 위한 과도한 교배는 계속되고 있다. 유행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분노의 성토는 지금 올리버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후 블랙 뷰티는 일을 방만하게 하는 마굿간 지기를 만나서 다리에 염증이 생기기도 하고, 사료인 귀리를 빼돌리는 사람 때문에 수척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술에 쩔은 마부를 만나서 사고도 일으키고, 무릎 상하게 된다. 무릎이 상하며 상처까지 입은 블랙뷰티는 이후 헐값에 런던 마차를 모는 말이 되기도 한다. 주 6일 착실히 일도 하지만, 추위에 회차를 예약한 도박꾼(신사)들 때문에 주인이 폐렴으로 앓아누워 그 집을 떠나게 된 이후는 거의 노예에 가까운 노동량에 시달리게 된다. 뭔가 말의 일생으로 보는 부분도 있었지만, 사람도 점점 더 격무에 시달리고, 노동이 힘든 3D직종으로 이직하게 되는 느낌도 오버랩 되었다. 특히 승합마차꾼인 제리와 함께 지낼 때 그런 이야기들이 자주 나온다. 종교적인 신념과 더불어 일과 가정을 양립하고 싶은 제리가 주 6일근무를 원해서 더 노동하기를 거부하는 이야기가 그렇다. 그리고, 제리의 동료가
마차를 빌리는 자본가의 임차료를 내고나면 하루에 말과 자기가 얼마나 더 과한 노동을 해야 수익이 발생하는지 (사납금을 채우기가 어려운지) 어필하는 부분도 그렇다. 당대에는 더욱이 신분계급과 노동과 소득분배에 대한 불평등이 두드러진 시기여서 이부분도 잘 녹여낸 것 같다. 고전이라 지금과는 다른 부분들이 많이 보이면서도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부분을 찾아 읽어내는 것이 고전의 매력인 것 같다. 문체도 짧은 호흡이라 편하게 읽기 좋았던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