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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태양
김혜정 지음 / 델피노 / 2021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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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단편소설 : 한밤의 태양 - 김혜정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꿈을 위해 의대를 포기한 주인공도, 서번트 증후군인 친구와 그를 돕기 위해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힘듦을 겪지 않기 위해) 간호사가 된 친구. 봄철 포동포동한 쌀밥처럼 핀 이팝나무 아래서 만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전지적 작가시점의 이팝나무. 뷰티인사이드를 연상케하는 밤과 낮이 바뀌는 친구를 둔 나.
9가지의 다양한 단편들에서 내 주변에 있을법한 친구도 만나고, 갑자기 환타지 소설같은 배경도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제목에 실린 대표단편인 <한밤의 태양>은 어학당에서 일하고 있는 지연(존)과 만나게 된 한 여름밤의 광안리 불꽃축제를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처음 불꽃이 터지는 순간 다들 웅성웅성하는 거리의 한국사람들을 그려내 볼 수 있었다. 스웨덴의 백야는 역시 알지 못하지만, 예전부터 가을밤이면 수놓아졌던 63빌딩의 불꽃축제는 기억하기에. 글을 읽으면서도 이젠 더더욱 이렇게 다닥다닥 하는 축제는 할 수 있으려나 하는 소설의 배경도 그리워 졌다. 지연과 제임스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잘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두 번째로는 뷰티인사이드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중요한 이야기는 다음에> 이다.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가진 친구 기철을 게이나 트젠으로 생각한 퀴어소설로 가는건가? 하다가 밤과 낮의 내가 달라진다는 설정이라 신선하게 읽었다. 이젠 차라리 끼를 떠는 그루밍 족이 게이라나 트랜스젠더라는 것이 더 클리셰처럼 생각되기도 하는 시대다. 원치 않게 내가 분리되어 버렸지만 기철과 레일라를 둘 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주인공도 젠더리스하게 그려져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블루블랙>에서는 해부학 실습을 견디지 못했다는 표면적 이유와 더불어 선택지를 강요받아온 주인공이 본인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찾아 행복을 찾는 내용이었다. 그시절 나다움을 가질 수 있도록 해보고 싶었던 볕에서는 파랗고, 실내에서는 다시 검은 그런 머리카락도 하나의 위시리스트이다. 오늘 처음 본 미용사에게 본인의 인생얘기를 꺼내 놓을 만큼 자기가 하고싶은 일에 대한 의지가 확고해진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이시대의 꼰대라서 소설과 현실을 혼동하며, 그래도 법대 의대 중 골라갈 정도로 수재였다면, 의사가 되고 나서 (그 기간 물론 힘들겠지만) 요리를 배워보면 더 메리트가 있지 않았겠나 하는 휜소리를 덧붙이고 싶어졌다. 꼭 뭔가를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가야만하는 시대는 아니지 않는가. 요새는 n잡의 시대인데, 의사가 하는 요리라는 유튜브를 개설하는 정도였다면 얼마나 좋아! 하고 안타까움을 표시해 본다. 물론 주인공은 그만둘만한 사정이 있었지만, 요새 직업시장을 생각하면 소설보다 현실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