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 - 정재율 김선오 성다영 김리윤 조해주 김연덕 김복희
박참새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맴도는, 시로 다가가는, 시가 이끄는, 시로 통과하는, 시를 애호(愛好)하는 마음이 오가는 자리. 시인은 시인을 만나 함께 물었고, 물으며 함께 들었고, 들으며 함께 답했다. “이 책을 만들다 시인이 됐다”고 자신을 소개한 박참새 시인이 만난 일곱 시인과의 대담집 『시인들』. 책꼴을 갖춘 대화를 펼치기 전. 정재율, 김선오, 성다영, 김리윤, 조해주, 김연덕, 김복희 시인을 가리키는 띠지의 문장에 시선을 오래 꽂아두었다. 그렇게 마음이 곧장 꽂혀버렸다. 그들의 문장으로 넘어가고 그들의 마음으로 뻗어 나갈, 그들의 ‘다음’에.

 



시는 무엇인지. 시를 쓰는 일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시를 읽는 행위란 무엇이길 바라는지. 시인에게 시인(詩人)이라는 “상태와 직업(p.167)”의 의미는 무엇인지. 시와 언제까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지.


정답 없는 물음마다 시인들은 ‘시인으로서’ 품고 있는 저마다의 믿음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어떤 시인의 말은 그의 시집을 읽었을 때 퍼져 온 파동을 선명히 기억하게 했다. 어떤 시인의 말은 그의 시집을 읽어 나갈 때 겪어 갈 요동을 선연히 상상하게 했다. 모든 시인의 말은 그들로 시를 쓰게 하고 시와 살게 하는 원동(原動)을 응연히 수긍하게 했다.




시인의 시간과 시차를 두고서 시인을 만나며, 시와 시인의 사이를 채우고 메우고 지키는 것이 무얼까 생각했다. 가늠했다. 가능한 알아차림은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시심(詩心)이라는 단어로 쉽게 가리키고 가리고 싶지 않다. 여덟 시인이 보여줄 다음의 시에서, 여덟 시인이 초대할 미래의 시집에서 ‘재확인reconfirming’하고 싶다.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시를 읽는 “사람으로서 가지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p.49)”이다.


 『시인들』에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시인들’의 신작시 일곱 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한 시인과 한 시인의 만남 이후, 한 페이지만 넘긴다고 바로 다 가실 리 없는 여운에 잠겨, 낯선 시를 읽었고 만났고 품었다. 가슴을 내려치기도 쓸어보기도 다독이기도 하면서. 


김복희 시인의 신작시 「미래의 시인에게」로 문을 닫는 대담은 “읽고 쓰며 살아가(p.9)”는 삶으로 담대히 나아갈 모든 당신을 응원한다. 시를 맴도는, 시로 다가가는, 시가 이끄는, 시로 통과하는, 시를 애호하는 마음을 함께 품은 모든 당신에게 ‘시인들’은 시로, 말한다. 


영원이라는 단어로

경계를 아름답게 놓아버리자.


고통만으로 사라지지 않기 위한

사랑의 문을 부르자,

열려 있어.


나만의 방식으로 허락받을

말을 안에서 만지고 끝으로 살펴보자.



** 세미콜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함께 걸을까? - 2022 볼로냐 The BRAW Amazing Bookshelf 선정작 문지아이들
엘렌느 에리 지음, 유키코 노리다케 그림, 이경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다운 꽃잎과 푸른 잎으로 이루어진 ‘수국 화원’. 그곳은 오르탕스 부인만의 작지만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수국’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꽃집의 주인은 자신의 아름다운 꽃들만을 제 친구로 삼고서 살아가는데요.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상보다 혼자만의 안전한 시공간 속에 속하길 바라는 그녀. 매일 같이 나서는 오후의 산책에서도, 그녀는 오로지 자신이 아는 길만을 걸을 뿐입니다. 계절 따라 변해가는 주변의 풍경은 그녀의 세계 안에 속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의 우연한 만남이 있기 전까지는요.


평소와 다를 바 없을 줄 알았던 그날의 산책길에서, 작은 개 한 마리가 오르탕스 부인의 뒤를 졸졸 따라갑니다. 등 뒤의 기척을 느끼면서도 애써 평소처럼 길을 걷던 오르탕스 부인은 길 건너의 노부인을 바라보고선 곧바로 걸음을 멈추는데요. 노부인이 들고 있는 바구니 속에는, ‘꽃다발과 파 한 다발’이 담겨 있었습니다.


지금껏 상상하지도, 만나지도 못했던 “기묘한 조합”을 목격한 이 순간은 그녀의 작고 아름다운 세계에 “시적이면서도 독특한” 꽃다발을 만들어 더하는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동시에 그녀가 습관처럼 나서는 산책길에서 “시적이면서도 독특한” 인연들을 만나고 더하는 기회가 되어주었습니다.


🔖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산책길 동무가 하나에서 둘로 늘어난 사연은 이렇답니다.


오전엔 꽃을 다루고, 오후에는 산책을 나서고.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한 오르탕스 부인의 일상. 그러나 그녀 주변의 풍경은 이전과 몹시 달라졌습니다. 홀로였던 산책길 위에 용기 내어 초대한 동네 곳곳의 강아지들 덕분인데요. 여러 길동무와 함께 걸으며 비로소 그녀의 세계에 속하게 된 도시의 풍경. 쫙 펼쳐진 양면 가득 담긴 그 풍경 안에, 이제 그녀 또한 속해 있습니다.


고립(孤立)이 아닌 연립(聯立)의 방향으로, 마음의 뿌리를 내려가고 관계의 가지를 뻗어나간 과정이 담긴 그림책 우리, 함께 걸을까?. 향을 맡을 수 없는 그림책에 얼굴을 파묻고서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꽃들이 펼치는 상상의 세계”속에서만 머물고 거닐었던 오르탕스 부인. 제 세계의 폭을 넓혀주고 색을 더해 주었던 동무들과 함께 길을 나서고 걷고 있는 오르탕스 부인. 지금의 내 모습은 그녀의 어떤 모습과 겹치는지. 지금껏 내 세계의 배경을 넓혀주었던 ‘길동무’들에게 나는 어떤 항기의 ‘꽃 한 다발’을 선물하고 싶은지. 작품 안에 담긴 그녀의 모든 시간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는 어떤 형태의 ‘파 한 다발’을 그려보고 있는지. 이 모든 물음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킁킁 대며 묻고 묻을 삶의 질문이기도 하겠지요.


책에서 가장시적이면서도 독특한장면을 꼽아보자면, 바로 오르탕스 부인이 자신의 작고 아름다운 세계에 길동무들을 초대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현실이라는 위에서 마주친 꿈만 같았던 어느 기억을 불러오는 계기로, 서로의 아름다운 춤이 되어 주었던 어느 동무를 떠올리는 기회로 장면을 - 펼쳐 만나보시길! 💃🌹🐩🎵




**문지아이들(문학과지성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나요? 작은 곰자리 76
시드니 스미스 지음,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억나니?”

“기억나요?”


아직 빛보다는 어둠 쪽으로 기울어 있는 새벽. 아이와 엄마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습니다. 잠들지 않은 두 사람은 함께 지나온 시간의 기억을 되돌아봅니다. 싱그러운 풀빛 내음 가득한 들판에서 세 식구가 함께 즐겼던 나들이, 자전거 타는 법을 익히다 건초 더미 위에 꽈당 넘어졌었던 생일날, 한밤에 휘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도 환히 웃을 수 있었던 한밤의 냄새, 그리고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기까지의 과정까지… 추억들을 하나씩 번갈아 꺼내어 함께 나누는 동안, 새벽의 어둠은 아침의 빛으로 조금씩 나아갑니다. 머리를 맞대고 누운 아이와 엄마의 얼굴도 조금씩 선명하게 보입니다.


오늘의 여명은 어제의 그것과 다를 바 없지만, 두 사람이 맞이할 오늘의 일상은 어제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집안 가득 들어찬 아침의 빛을 마주할 때, 이야기 밖에 선 독자는 바로 발견하게 됩니다. 가족의 구성과 배경 모두가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졌음을요. 그러나 지나간 시간의 기억으로 뒤돌아서고만 싶은 마음은 이야기 안에서 쉽게 발견하지 못합니다. 


과거의기억 현재의회상 반복되는 구조의 그림책, 기억나요? 시드니 스미스 작가의 개인적인 서사가 담긴 작품입니다. 여전하게 남아 있는 기억들로부터 파생된 어떤 믿음은 여전하게 떠오를 아침 해처럼 아이를 비추고 지키고 있는데요. 마치 아이는, 다가올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모든 바뀌어버린 지금의 전부이지 않음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장씩 책장을 넘기며 독자가 하나씩 알아차려 크고 작은 변화는, 작가가 직접 경험하며 확신한 믿음의 증거처럼 보입니다.


⟪기억나요?⟫를 비롯한 시드니 스미스 작가의 최근작(⟪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할머니의 뜰에서⟫)은 이전의 작품들( ⟪괜찮을 거야⟫, ⟪어느 날 그림자가 탈출했다⟫등)과는 다르게 인물과 배경 등에 검정의 윤곽선이 또렷하게 그려져 있지 않음을 발견할 있습니다. 깜깜한어둠속에서는 어떤 존재가 선명히 분별 되지 않는다 해도, 존재를 알아주고 안아주는 같은 마음과 믿음 앞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날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는지작품들 속에 담아냈을 작가의 마음을 감히 가늠해 봅니다. 그러곤 다시, 천천히, ⟪기억나요?⟫를 손끝으로 감상해 봅니다. 함께 한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시간’을 향한 믿음으로 아이의 오늘과 내일을 환히 비추고 지켜줄 ‘빛’을 감각해 봅니다.


오로지 사람만 있는 새집. 아이와 엄마는 서로의 곁에 오롯이 누워 있습니다. 가족의 구성과 배경은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사람이 지키고 채워 가족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바깥의 창문 너머로, 낯선 도시 위로, 안으로 떠오르는 오늘의 안에서 아이는 내일의 빛을 확신합니다. 여명(黎明) 다른 뜻은희망의 입니다.


🔖 “걱정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어요. 우린 잘 지낼 줄 알았으니까요.”


+

기억나요? 에서 아이의 말은 연한 파랑, 엄마의 말은 연한 빨강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어떤 문장이 누구의 말인지 독자가 쉽게 알아차릴 있도록 설정한 작가의 의도적인 배려일 테지요. 그런데 저는 어쩐지 아이의마지막 이전과는 다른, 이전보다 짙어진파랑으로 표현된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각이 그저 근거 없는 느낌뿐이라 해도 (, 실제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의 모든 말이 똑같은 색으로 인쇄되었다 해도), 저는 아이의 마지막 말을 짙어진 파랑의 마음으로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 '책읽는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미 저택
김지안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계의 변화를 담은 그림책을 사랑합니다. 다양한 작가들의 특색 어린 그림체로 계절의 과정과 의미를 감상하며 감격하는 순간을 사랑합니다. 이 계절이 저 계절로 넘어가는 과정은 곧 저 계절이 이 계절로 인해 나아가는 과정임을 말하는 그림책. 어떤 계절도 마냥 환하거나 그저 어둡지만은 않음을 그려낸 그림책. 지나갔고 지나가고 있고 지나갈 모든 계절을 긍정하고 기대하며 살아가도록 사계의 온도를 고루 품어낸 그림책.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니, 바꿔 말해볼게요. 어찌 김지안 작가님의 그림책(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바라만 봐도 마음에 향기와 온기가 퍼져나가는 듯한 그림책, ⟪튤립 호텔⟫과 ⟪장미 저택⟫은 모두 계절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튤립 호텔⟫에서는 가을의 빈 땅에 튤립 알뿌리들을 심으며 다음 해 늦봄에 개장할 ‘튤립 호텔’을 준비하는 과정을, 신작 ⟪장미 저택⟫에서는 저택 관리자의 초대를 받아 황량해진 장미 정원에 향기와 온기를 더해가는 과정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다가올 봄날의 아름다움을 기대하며,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함께 향유할 많은 이들의 기쁨을 상상하며, 다섯 마리 멧밭쥐는 계절마다 계절의 최선을 다합니다.


차가운 북풍이 불어오는 계절에도, 멧밭쥐들은 “멧밭쥐답게” 겨울을 납니다. 해야하는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고 할 수 있는 다정을 찬찬히 베풀었던 멧밭쥐들 덕분에, 봄은 비로소 봄으로 움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의 흐름 위에 더해진 멧밭쥐들의 정성이 없었다면, 모두를 환대하는 ‘튤립 호텔’과 ‘장미 저택’은 모두의 봄날에 피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추운 겨울은 길고 길어요. 그래도 걱정마세요. 어떤 계절도 영원하지 않으니까요.” - ⟪튤립 호텔⟫ 中


⟪튤립 호텔⟫을 조성한 한 해의 시간만큼 성장했을 멧밭쥐들. ⟪장미 저택⟫의 황폐한 정원을 돌보는 동안, 멧밭쥐들은 계절 위에 ‘회복’의 서사를 쌓아 갑니다. 뒤엉킨 가시로 울고 있는 이를 알아보고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는 이를 돌보는 ‘관계’를 맺어가는 멧밭쥐들. 상처 입은 존재를 묵묵히 기다리고 찬찬히 보살피는 마음 곁에서, 누군가는 죽은 듯한 꽃잎을 다시 피우게 됩니다. 누군가는 잊고 있던 향기를 다시 맡게 됩니다. 바깥의 계절과는 상관 없이 길고 긴 겨울 안에 잠겨 있었던 누군가는 제 걸음으로 다음의 봄을 불러옵니다. 서로의 회복을 돕고 서로의 존재를 응원하는 마음’들’ 덕분에, 수많은 장미는 각자의 모습과 크기대로 흐드러지게 피어날 수 있었습니다.


🌹”마른 가지뿐인 장미라도 밑동은 살아있을 수 있거든요.” - ⟪장미 저택⟫ 中


튤립도, 장미도 모두 다 지고 난 후에 맞는 계절의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여름’은 이 앞의 모든 계절을, 그리고 이 다음의 모든 계절을 가능케 하는 시간입니다. 지나온 계절 동안 수고한 이들이 자신들을 위해 갖는 휴식과 회복의 시간. 멧밭쥐들은 “멧밭쥐답게” 모든 계절을 나기 위해, 이 여름을 보냅니다.


멧밭쥐들이 어디서, 어떻게, 그리고 ‘누구와’ 함께 각자와 서로를 위한 다정을 베풀고 누렸는지 궁금하시다면 그림책의 뒷면지까지 눈여겨 감상해 주세요. (두 권의 그림책에서 양쪽 페이지를 활짝 펼쳐 만나볼 수 있는 ‘절정’의 장면만큼이나) 저는 이 계절의 장면을, 이 여름의 멧밭쥐들을 너무도 사랑하는데요. 이 그림책들을 보고 나면 아마 당신도 이렇게 말하게 될 거예요. “어찌 이 그림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

창비 출판사로부터 ⟪장미 저택⟫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 빨래
남개미 지음 / 올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잖아요.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건넨 말과 행동이 내 마음에 강속구처럼 날아와 박히는 날. 평소와는 다르게 잘 풀리지 않은 일로 인해 나 자신을 몰아세우게 되는 날. 내 안의 상태를 외면하는 바깥의 하루가 도대체 언제 끝나나 싶은 날. 머피의 법칙이 마치 내 이름을 넣은 OO의 법칙처럼 느껴지는 날. 그러니까, 남들은 다 맑고 밝은 하늘 아래서 잘 지내는 것 같은 날. 거센 비바람을 몰고 오는 먹구름도, 용변의 의지를 다지는 새들도 다 내 머리 위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는 날.





이 모든 날의 처진 몸을 반기는 곳이 있습니다. 이 모든 날의 지친 마음을 맡기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잔뜩 묻은 마음의 얼룩을 씻어내는 곳. 잔뜩 더러워진 마음의 때를 닦아내는 곳. “옷을 세탁하듯 마음을 빨아내는” 이곳은 바로 마음 세탁기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돌아보고 돌보는 시간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꼭 필요하죠. 그 시간을 ‘세탁기’로 공간화하여 표현한 마음 빨래 그림책. 이 그림책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홀로인 내 감정을 닦아내는 ‘세제’ 같은 고마운 무엇을 떠올리게 됩니다. 홀로인듯한 내 마음을 조물조물 만질 수 있는 반가운 어딘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렇게 저렇게 얼룩진 나를 마주하는 시간은, 내 바깥에서 묻은 때를 내 안에서 떼어내고 털어내고 씻겨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얼룩진 나를 긍정하는 공간은, 내 바깥에서 묻은 때가 내 전부가 아님을 (그럴 수도 없음을) 인정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나의 감정과 마음을 돌보면서 나를 지켜내는 ‘빨래’의 시간. 누구에게나 다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빨래’의 공간. 당신에게는 그것이 무엇인가요. 그곳이 어디인가요. 그때가 언제인가요.


 



그림책을 만나는 분들과 함께 비교해서 보고 싶은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놀이터 그려진 장면인데요. 이야기 초반부의 놀이터에는 그곳에서 응당 놀고 있어야 친구들이 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중충한 하늘 아래 쓸쓸한 기운마저 감도는 놀이터의 곳곳에는 각양각색의 옷가지들만 놓여 있을 뿐이죠. 그러나 마음의 얼룩과 마주하고, 마음의 얼룩을 만져주고, 마음의 얼룩을 닦아낸 다시 찾은 놀이터에는 반가운 친구들이 가득합니다. 저마다의 마음을 저마다의 마음 세탁기 안에서 빨고 , 후련해진 마음으로 다시 놀이터를 찾아왔을 아이들. 꽃비가 내리는 놀이터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도 모두 해사한 얼굴로 서로를 반깁니다.



**  올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