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낙원 - 무루의 이로운 그림책 읽기
박서영(무루) 지음 / 오후의소묘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홀로』의 저자 다니엘 슈라이버는 심리 분석가 멜라니 클라인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동시에 그 사람에 의해 완벽하게 이해받음으로써 얻게 되는 완벽한 내적 상태에 대한 갈망이라고. 그러나 세상의 그 누구도 그럴 능력이 없으며 그럴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고. 슈라이버는 우리에게 “삶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근본적으로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통찰”하길 권한다. 각자의 고유한 외로움이 유발하는 고통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동시에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공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외로운 존재가 자신의 고독한 자리에서 고립의 구렁으로 빠지지 않기란 쉽지 않다.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나에게,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인에게 다정하고 싶다는 마음은 얼마 가지 못해 약해지고 만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과 사랑 앞에서. 일상의 크고 작은 실패와 상실 앞에서. 나를 에워싼 사방의 벽 앞에서. 익숙하고 편하기까지 한 허무감 앞에서. 


그러니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한계를 가늠하고 경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 줄 낯선 이야기(p.121)”가 언제나 필요하다. 내가 나라서 외로운 이 삶에 좁고 깊게 매몰되지 않기 위해. 다 다른 모양과 질감의 외로움을 이해받고 이해하는 찰나의 곁에 다다르기 위해. 


그러니 우리에게는 우리 너머의 이야기들을 발견하여 나눠주는 이들 또한 필요하다. 저마다의 지난한 하루들로부터 파생되는 “맹목으로부터 구원해 주기도(p.87)”하는 이야기. 숱한 오해와 옅은 이해의 자장 안에서도 느슨하게 이어질 수 있는 우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야기. 유토피아 없는 현실에서 기꺼이 살아가고 사랑하기 위해 각자와 서로의 고독을 해독하려 애쓰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를 각자의 고독 위에서 함께 만나자고 권하는 다정한 이들 ‘덕분’에, 어떤 날의 우리는 한 자리에서만 질척이는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낯선 방향으로 한 발을 뻗어 마음의 너비를 “한 칸 더 넓히는 기쁨(p.5)”을 누리기도 한다.


무루 작가님의 글을 오래 아끼고 기다려 온 이유를 이렇게나 길게 적었다. 저마다 다른 원인과 과정으로 형성된 고독의 자리들을 이어 ‘우리’가 되는 별자리를 긋는 무루 작가님. “그림책 속 이상하고 자유로운 세계”에서 홀로 걸으며 홀로가 아닌 풍경을 알아차렸을 작가님의 지나온 밤들에 나의 지나갈 밤들을 미리 겹쳐본다. 정답 없는 이 삶을 정답게 걸어갈 오늘의 힘을 얻었으니 이제 다시 페달을 밟을 시간. 외로운 두 손 위로 펼쳐진 길 위에서, 『우리가 모르는 낙원』을 이어 그려본다. “지금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는(p.26)” 세상의 모든 라일라들과 ‘함께’.


🔖 p.202-203 / 우리는 모두 같은 고독 속에 놓여 있다. 초월적인함께 기대어 매번 외로운 날들을 지난다. 서로에 대한 오해를 피할 길은 없지만, 모두가 오해받고 있다는 사실만은 이해하면서. 이해가 오해보다 힘으로 서로 지지해주기를 바라면서. 



* 오후의소묘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봄밤의 모든 것
백수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모든 사람들과 마지막 페이지(245-246p)를 ‘삶’으로 함께 발견하고 살아가며 사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편다. 몇번을 반복해 계속 읽고 싶은, 이 봄에 찾아온 기적(miracle/whistle)같은 소설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 채석장 시리즈
주디스 버틀러.프레데리크 보름스 지음, 조현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두의 일상에 단단히 엮이고 얽힌 사회 문제 속에서, 단순한 생존을 넘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조건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즉, 살 만한(Livable) 삶과 살 만하지 않은(Unlivable) 삶은 어떤 것들을 의미하고 어떤 곳들을 가리키며 어떤 이들을 가리고 있는가.


다양한 형태의 ‘살 만하지 않음’이 양산되어 일반화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에 대해 나눈 두 철학자의 대담집,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해 쌓아올린 사유와 성찰은 그 어떤 장벽도 세워두지 않은 곳에서 자유롭게 만나 교차된다. 그곳에서 두 철학자는 서로 동의하고 함께 지지한다. 살아 있는(viable) 모든 삶이 살 만한 삶이기 위해서 사회 구조 및 제도적으로 확보되야 할 ‘돌봄’의 필요성을.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타인을 향해 수행해야 하는 ‘윤리-정치적 의무’의 필연성을. 우리 모두의 “공통된 취약성”으로부터 살 만한 삶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치의 조건으로 지켜져야 하는 ‘민주주의’를.


2024년에 구입한 마지막 책이 바로 이 책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책장 안의 대화에, 그리고 책장 밖의 현실에 가득하다.



__


p.26-27 /

주디스 버틀러와 프레데리크 보름스의 사회적, 정치적 성찰은 살아 있는 삶이 그 위태로움과 취약성 속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라는 생각에 토대를 두고 있다. 두 사람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관계성과 상호의존성을 인정하는 것이 살아 있는 인간들의 급진적 평등을 정식으로 요구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삶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취할 것인지를 미리 선언하지 않으면서 각자에게 살 만한 조건을 보장해주려는 민주적 노력으로 해석된다. 


p.60 /

버틀러: 우리가 의존하는 구조가 실패하면 우리 또한 실패하고 쓰러집니다. 


p.130-131 /

보름스: 삶은 이야기입니다이건 나의 이라고 말할 , 그것 어떤 이야기에 대한 비판적 회고 가깝게 여겨집니다. “이건 나의 삶이라고. 어리석음, 실수, 연약함, 기쁨이 어우러진 나의 .” 선생님은이건 나의 삶이라고. 삶으로 나는 원하는 뭐든지 있어라고 말하기보다 이건 나의 삶이라고. 나는 삶에 책임을 져야 라고 말씀하시겠지요. 나는 삶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타이피스트 시인선 7
김이듬 지음 / 타이피스트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시집과『투명한 것과 없는 것』시집을 반복해 읽고 있는 연말… 시인님 덕분에 언제까지라도 익숙하지 않을 홀로의 마음을 조금씩 다독이고 있어요. 언제까지라도 모자랄 홀로의 걸음을 조금씩 옮겨가고 있어요. 삶 쪽으로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딕테
차학경 지음, 김경년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어 감사할 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