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게 뭔데 - 잡학다식 에디터의 편식 없는 취향 털이
김정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다운게뭔데 #답장이없는삶이라도 #에세이 #김정현 #취향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북리뷰 #서평 #도서제공 #알에이치코리아 #세미콜론

한 줄 평 : 사랑하긴 쉬운데 설명하긴 어려운 것을 설명해냈다. 본인의 타자성을 깨고 스스로 질문하고 답해서 유일무이한 존재로 거듭나는 이야기.

나는 지난 주말 내내 깊은 절망과 아픔 속에서 헤맸다. 내가 너무 작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였다. 존경하는 선배님 부부와의 약속조차 없었다면, 늘 나를 응원해주는 존재의 근거있는 위로와 응원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 주말, 심연의 깊은 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헤맸을 것이다. 어쨌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아픈 주말의 나는 누워서 생각했다. 나는 뭘까.

지난 십 년을 꽤 열심히 살았음에 불구하고 내 손에 남은 게 없었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현타가 왔다. 그나마 저년차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업과 분리되어있었던 거 같은데, 너무 신나게 본업에 매진하다보니까 취미가 애들 상담이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 제일 친한 친구가 아이들이 되어버리는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싫었다. 나는 내 삶도 취향도 뭣도 없는 무색무취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본업에서 대단한 성취를 거두었느냐? 면 그렇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쏟은 마음에 비해서 건져올린 게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으면 뭐 하나는 건져올렸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방향의 문제였을지 몰라도 열심히 한다는 게, 원칙을 지킨다는 게 도리어 나를 위협할 때가 많았다. 나는 이제 인생의 한 변곡점을 앞두고 미래의 내가 어떻게 될지를 고민해야할 시점에 와버린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은 뭐고, 나는 뭘까. 나다운 것은 뭘까.

그런 아픔 속에서 헤어나와 생업에 출근한 날 첫 교시, 그간 묘연한 미래 때문에 잠시 미뤄뒀던 이 책을 잡자마자 단숨에 읽어버렸고, 묘한 동질감과 위로를 얻었다.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는 책을 쓰는 것이다.몇 권 쓴 학습서 말고 내 이야기를 담은 책. 근데 이게 얼마나 허황되냐면 '책'을 쓰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뭘써야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누군지를 알아야 그 다음 단계를 거칠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아직도 나는 내가 누군지를 모르겠다.

사실 김정현 작가는 나와 꽤 닮은 점이 많다. 현실에서 개성이 꽤 강한 사람일 거 같은데, 어쩜 이렇게 광역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쓴 건지 신기하기도 한데, "많은 것을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가진 모든 시간과 체력을 바칠 정도로 깊지 않다. 사실 그럴 돈도 없다. 사랑은 하는데 열렬하지 않은, 취향으로까지 좁혀지지 않는, 그 한끗의 간극이 늘 나를 괴롭혀왔다.'라는 프롤로그부터 헉 하고 찔리게 공감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비교적 색깔이 뚜렷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 호불호가 강하다는 것 또한 그렇다. 그런 그가 호불호가 강하다는 것을 취향으로 돌릴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주었고 '취향이 소나무 같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나에게 '취향은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해주었다. 한 우물을 파야한다에서, 물이 안 나오면 다른 우물도 파봐야한다는 생각으로, 그게 나다울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이 트이게 해준 것이다.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그의 커피론을 읽으며 커피숍은 카페모카지!에서 시작했던 나의 커피 원정기를 생각했고, 그의 버거론을 보면서는 아 버거 쿨타임왔네?를 생각했다. 홍대에서 옷을 산 그의 이야기는 이대와 동대문에서 옷을 샀던 기억과 오버랩됐다. 책을 쓴 대단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의 기억과 닮았다는 것, 내가 겪었거나 알지만 글로 풀어내지 못한 것을 글로 풀어낸 결과물을 읽는다는 것은 묘한 공감과 쾌감을 불러왔다. 맞아, 이거지. 취향이 꼭 무언가에 미쳐야만 하는 건 아니었지. 많은 것을 사랑하면, 취향이 많은 거지. 꼭 내 취향이 우뚝 솟아야할 필요도, 변함없을 필요도 없지. 그런 위로.

요즘 내가 동경하는 부류에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넘사벽의 사람들 중 닮고 싶은 사람들, 하나는 내 가까운 곳에서 사부작사부작, 너도 이만큼은 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내가 할 수 있지만 하지 못한 일들을 해내고 내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 김정현 작가는 후자의 의미로 내가 동경하게 될 사람 같다. 헤비 인스타그래머라는 그의 글을 구독하며,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다. 그럼 나와 닮은 듯 다른 그를 통해 점점 나다운 게 뭔지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일이 재미있어질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 - 더 나은 ‘함께’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 이주민 24명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순심(이나경) 그림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미래를꿈꾸는이주민입니다 #하니포터 #하니포터5기 #하니포터5기_나는미래를꿈꾸는이주민입니다 #이주민 #이주노동자 #미등록이주아동 #난민 #결혼이주여성 #귀환이주민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한 줄 평 : 백 명이 있다면 백 가지 삶이 있다. '우리'와 '우리가 아닌 사람'을 나누어 차별할 일괄적인 기준이란 없지 않을까. 혐오할 자격은 더욱 더. 그러라고 있는 '우리'가 아니다.

세상은 느리게라도 진보하고 있다고 한다. 또 그 말을 믿고 싶다. 그런데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아도 그런 면이 있는가 하면 아닌 면도 있고 그렇지 못한 면도 있다. 삶이 개별화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 묶였던 모더니즘적 사고관이 해체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왔다. 사람들은 개별화 되어서 서로의 삶을 점차 침해하지 않게 되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인정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외로움을 느끼고 '우리'의 모습을 찾으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적당한 거리두기에 실패한 사람들은 가끔 '우리'의 이름으로 폭력을 저지르거나, '우리'의 가치관을 타인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억지로 조성하기 위해 애쓰면서 혐오를 자행한다. 우리이고 싶지만 나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좀 더 가치로운 삶을 잘 살고 싶은 마음. 그것은 어떤 사람이나 가지고 있는 로망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주민들은 그런 로망을 실천하기 위한 마음으로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이다. 책을 읽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들은 일단 나보다는 뛰어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진로에 대한 부침을 겪으면서도, 혹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도 직업이나 거주지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안주를 택해온 나와 달리 그들은 자기 삶의 개척자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타국에서, 존재를 인정받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우리'의 장벽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평소에 그렇게 '우리'에 대한 인식을 갖고 살지도 않으면서, 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타자를 배척하는 결속력을 다져야할 때 자꾸만 철옹성처럼 여기고 사용해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라는 말은 상보적일 때 아름답지만, 배타적일 때 끔찍한 말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였는가. 과연 우리다운 삶을 살아오기는 했는가.

'지구촌시대'라는 낯간지러운 말을 가지고 생각해봐도 그렇다. 벌써 몇 십년 전부터 국가간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고, 그러기 위한 국가간 협력체계를 구축해오고 있으며 우리도 재ㅇ 교포라는 이름으로 외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차별과 편견을 이기고 살아온 것에 대해 우리는 '우리'의 마음으로 눈물 흘린다. 그러나 그대로 '우리'의 마음으로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주민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선긋기를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것이 바로 외국에서 살아남았던, 우리가 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겪어왔던 아픔이 아닐까.

사실 우리는 모두 개개인의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는 주변인이다. 주변인들의 느슨한 연대가 마을을 만들고, 마을의 느슨한 연대는 다시 국가를 만들고 국가의 연대는 지구를 하나로 잇는다. 그 안에서 더 나은 개인도, 더 못한 개인도 없다. 우리도 언제건 주변인이 될 수 있고, 우리에 속하지 못할 수 있다. 사실 나도 그렇다. 나는 직업 특성상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 속한다. 그래서 겨울마다 옮길 직장을 찾는 여정을 거쳐왔다. 그래서 '우리'에 속하지 못하는 기분이 무엇인지를 종종 느껴왔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근무하는 10년동안에도 동일 노동 동일 대우를 받지 못하는 처우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개선을 촉구하는 움직임과, 이에 공감하는 많은 '우리'들의 지지로 인해 많은 처우가 개선되었고 좀 더 '우리'에 가까워졌다. 반드시 이주노동자가 아니라도 '우리'는 우리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주노동자라고 해서 '우리'가 아니어야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옐로에화이트에약간블루 처럼, 우리도 사실 아주 자연스럽게 섞여들어 살고 있으므로 '우리'는 우리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미국 주식을 영주권자들만 할 수 있다는 공표가 갑자기 나온다면? 우리 나라의 많은 투자자들은 갈 곳을 잃을 것이다. 사실 미국 장에서는 우리 나라 사람들도 '외국인' 개미에 불과하니까.

'우리'가 배타적인 용어이기보다 상보적인 말, 연대의 말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차별과 혐오를 위한 구분짓기가 아니라, 따뜻한 손과 품으로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말이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춘기를 위한 문해력 수업 사춘기 수업 시리즈
권희린 지음 / 생각학교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춘기를위한문해력수업 #생각학교 #문해력 #독해 #독서 #글쓰기 #사춘기 #중고생 #중학생 #고등학생 #국어 #국어공부 #국어성적올리기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도서제공

한 줄 평 :
1. 문해력이 부족한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는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훌륭한 가이드북
2. 초중고등학생의 문해력을 길러주는 수업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는 교강사, 학부모님들을 위한 좋은 지침서

나는 10년째 고등학생들의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요즘 문해력 저하현상에 대한 말이 많은데, 현장에서는 그걸 더 절실하게 느낀다. 이제라도 그런 논의가 계속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게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해력 부족 현상의 심각성을 말하고는 있지만, 교육과정은 안타깝게도 정 반대로 가고 있는 느낌이 있다. 예로부터 '국영수'는 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주범으로 지목당해왔다. 또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면서 실질적인 교과의 학습 시간을 뺏거나 아이들의 진로 탐색을 방해하는 방해꾼 정도의 취급을 꾸준히 받아왔다. 그 결과 학교 현장에서는 '국영수'의 자리를 실질적 진로 교과로 대체해야한다는 식의 개정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내가 국어교사라서 국어 교과의 중요성을 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명백하게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는 소신을 밝히고 싶다. 학습의 방향성이 수정될 필요가 있을지언정, 국영수는 역적이 아니다. 교육학에서도 '전이' 가능성이 높은 교과목은 주요 교과목으로 취급한다. 사실상 나는 국어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구석기 시대에는'사냥'을 배우고 사냥도구를 만드는 법, 생존하는 법을 배워야했다면, 지금은 원초적으로 다른 생명체를 죽이거나 이겨야하는 대신에 말과 생각으로 생존의 전장에 나가있는 셈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팍팍한 느낌이 들지만, 자기의 생각을 적절한 표현과 바른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 타인이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시 한 편'을 배우는 게 밥 벌어먹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문학작품들을 읽은 경험들이 모여서 집단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텐데.라는 생각을 늘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꽤 쉽고 재밌게 잘 만들어진 책이다.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학생들이나 열심히 공부해보고 싶은데 무엇부터 어떻게 공부해야할지 몰라서 변죽을 두드리는 학생들이 읽어보고 하나씩 따라해보면 참 좋을 거 같은 책이다. 또한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동기가 필요할 때도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그러한 동기를 제공해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시리즈 명인 '사춘기를 위한'이 대상자들에게는 오히려 진입장벽이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은 생각보다 자기들이 사춘기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ㅋㅋ) 그런 진입장벽을 뚫고서라도 아이들에게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그러면 아이들이 국어 공부의 동기를 부여받고 방향성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책이다.

또한 국어를 가르치는 입장, 국어 교과 교육론을 공부한 입장에서 보면 쉬운 표현으로 국어 교과교육론을 꽤 충실히 반영하여 잘 풀어놓은 책이라서 국어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예비 국어교사, 혹은 초임 교사나 강사가 요즘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어떻게 수업을 구성해야할지에 대한 영감을 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를 가르치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막연하게 국어를 못하는 대상들에 대한 미지의 공포(?)를 가질 수밖에 없다. 내가 못했다가 잘하게 된 것에 대한 썰을 풀기는 쉬워도 원래 잘했던 것을 못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해해서 가르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그런 때에 이 책이 가이드라인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한 제안으로 읽게 된 책인데, 정말 귀한 수업 참고자료를 얻은 기분이다. '생각학교'출판사의 인문학 시리즈물 '사춘기를 위한 ~수업'이 모두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돈까스를 쫓는 모험
이건우 지음 / 푸른숲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돈까스를쫓는모험 #푸른숲 #이건우 #식도락 #미식 #돈까스 #돈까스지도 #맛집 #돈까스맛집 #맛집에세이

한 줄 평 : 글에서 고소한 기름 냄새가 바삭하게 난다. 돈까스 잘 아는 멋진 오빠에게 랜선 한 끼 소개 받기.

요즘 바야흐로 테스트 유행의 시대이다. 뭐만하면 MBTI기반 테스트를 그렇게 한다. 근데 나는 예전부터 '제일 좋은 거' '하나만'고르는 것을 정말 싫어하고 못했던 사람이다. 아니 어떻게 이 상황을 이렇게 단정지을 수 있어? 어떤 상황이 백 사람한테 일어난다면 백 가지 디테일이 있는데 어떻게 하나를 자신있게 콕 집을 수가 있어?

음식도 그렇다. 제일 좋아하는 게 뭐냐고?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서 상대가 제일 싫어할 법한 대답인 '다요'를 뱉고 나오는 리스트를 쳐내는 게 빠른 것이 나다. 이 자리를 빌려 나의 만행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근데 딱 한 가지만 고르는 게 어려운 걸 어떡해. 다 다를 텐데. 곱창vs양고기! 했을 때, 한쪽이 겁나맛집이면 밸런스가 안 맞아버리는걸...?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다. 여자는 떡볶이 남자는 돈까스 이런 편협한 말이 유행할 때도 나는 그 사이에서 망설이곤 했다. 평균적으로 남자분을 상대로 음식에 대한 호불호를 물었을 때 제육볶음이나 돈까스는 약간 논외의 존재, 공기 같은 존재였던 경험적 통계는 있다. 다만 나는 엽떡 같은 매운 떡볶이보다는 #오제제 나 #정돈 같은 돈까스가 더 좋다.

어쨌든 그래서 저자님의 돈까스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돈까스집이 백 곳이 있으면 백 장의 돈까스는 다 다르다. 설레는 마음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돈까스 가게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곧이어 나온 따뜻한 돈까스를 바삭!하고 씹는 첫 입의 감동들은 내 생에 꽤 많은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와 진짜 맛있다! 하면서 돈까스를 씹어넘겼던 순간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순간들은 기록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한끼들 속으로 사라진 것이 대부분이다.그런데 그 순간들을 이렇게 맛깔나게 써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니? 책을 읽으면서 조금 반성했다. 진짜 덕질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이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하고 깊어질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누구나 무엇인가를 좋아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간 많은 것들에 대한 나의 취향이 명확하지 못했던 것들은 그 순간의 감상을 그날의 기분과 함께 휘발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저자님은 처음부터 돈까스를 바라보고 태어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숱한 취향의 발견과 기록 속에서자신의 취향과 기준을 찾아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분명히 알고 당당히 이야기하며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 자신있게 소개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 가볍고 위트있지만 묵직하게 다가온 이 글의 포인트였다.

"이건우씨는 언제부터 이렇게 돈까스를 잘 알았나?"(feat,시크릿 가든) 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저자의 돈까스에 대한 덕력은 남다르다. 게다가 좋아하는 만큼 기준도 분명하여 추천해주는 돈까스집들은 메모해뒀다가 틈나는 대로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맛깔나게 묘사한다. 마치 와인 소믈리에에게 와인인을 추천 받듯이, 다양한 취향의 돈까스 러버들에게는 거를 타선 없이 다양한 돈까스를 추천받을 수 있는 책이며, 돈까스 취향에 대한 기준도 일부분 제공받을 수 있는 책이다.

늘 뭔가에 대한 조예가 깊은 사람들을 부러워해왔다. 와인, 위스키, 커피, 타로 등등 꽤 많은 지식과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하는 영역들에 깊은 조예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못내 부러워만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묘하게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더 먹어 보고 겪어봐야 알 것 같은 다른 것들보다 더 감각적으로 와닿는 그것, 돈까스의 식감.

고풍스러운 취향을 한껏 자랑하기보다는 지금부터 무한한 돈까스가 나의 취향이 될 수 있다고, 어서 와서 함께 돈까스를 썰며 이야기를 나누자고 나를 불러주는 이 책을 만나 다행이다. 당장 오늘부터 흔쾌히, 이 돈까스 여행에 나도 함께하며 취향의 발견을 기록해나가고 싶다.

아삭바삭한 글을 읽으며 당장 가볼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곳이 있는지를 자꾹만 확인하고 다시 읽기를 반복했는데, 오늘 점심이 마침 돈까스다. 이건 미루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닐까? 오늘 점심 돈까스는 어떤 맛일까?


ps. 그간 나의 편협한 세계관에서 최애 돈까스는 #오제제 돈까스였다. 자 이제 시작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화 #원청 #푸른숲 #중국소설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도서제공

한 줄 평 : 위화적인 순간들 그 자체.

내게 위화는 <인생>이다. 대학교 교양수업시간에 중국영화 다섯 편과 그 원작들을 읽었었는데, #붉은수수밭 #국두 #인생 #패왕별희 #홍등 이렇게 다섯 편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작품은 #홍등 과 #인생 이었다. 당시에 소설 제목은 #살아간다는것 으로 번역되었었는데 지금은 #인생 으로 출판되고 있다고 한다. 당시 그 수업은 내게는 손에 꼽도록 인상 깊은 수업이었다. 이후에 교사생활을 하면서도 영감을 많이 받았던 수업을 생각하면 단연 1순위에 꼽힐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내게 당시 영화 "인생"과 소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충격의 연속이었다. 푸구이의 인생이 마치 신약한 #사주가 둥둥 떠다니듯이 역사에 이리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인생사 새옹지마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이야기. 그렇다고해서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닌 것이 더 반전인 소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짠내' 속에서 길어올리는 것. 그러면서도 끝내 희망 한 조각을 여운으로 남겨두는 것. 내게는 그것이 "위화스러움"이었다.

맛으로 치면 마라맛이라든지 하는 자극적인 맛이 아닌 슴슴한 배추전병맛과 같은 맛. 슴슴하고 예상할 수 있는 맛이지만 자꾸만 술술 넘어가는 맛. 그러면서도 와 맛있다를 반복해서 말하게 하는 맛. 그런 맛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위화스러움이라면 위에서 말했듯이 #그럼에도불구하고 #짠내 속에서 #희망 한 조각을 무심한 듯 건져올리는 것, 그럼으로 인해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삶은 지속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나지않음 은 위화 소설의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끝난 뒤에도 한참동안 뒤를 더듬게 된다. 그 뒤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 것만 같은 주인공과 그 후예들의 삶을 그려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우리의 인생 그 자체를 일부분 들어 옮긴 것 같다. 생의 어떤 에피소드에도 사실 명확한 종결이라는 것은 없으며 잊을만 할 때쯤 놀랍게도 다른 무언가와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엮여있기 때문이다.

<인생>과 <원청>의 주인공인 푸구이와 린샹푸는 본성이 유들유들했던 부유했던 사내들이다. 그들이 몰락해가면서도 강하고 질기게 삶을 지탱해가는 것,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 위화 소설에서 느껴지는 슴슴하지마나 웅장한 맛의 정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인생>에서는 얇고 길게, 스스로가 그 희망을 이어가는 끝을 보았다면, <원청>에서는 린샹푸를 너무 일찍 보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소설의 이중 구조를 보니 아 역시 위화는 다 뜻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푸구이가 인생을 가늘고 길게 살면서 조금 사람이 되어간다(?)면 린샹푸는 그저 드센 팔자(?)로 인해 조실부모하고 몇 번의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지만 그 선택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끈질기게 지켜낸 멋진 남자라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또 하나, 지독한 사랑과 사람들의 따뜻한 연대감은 이 소설의 중요한 줄기다. 지독한 사랑은 여러 사람의 운명을 엇갈리게 했고, 어떤 것은 너무 지독한 나머지 끝끝내 전해지지 않았으며, 너무도 먼 길을 돌아서도 함께 있지만 알아채지 못하고 찰나의 순간을 스쳐가는 데 그치는 것이었다. 또한 비록 선택에서는 지독하게 팔자가 드센 사람이었지만, 인복은 후했던 남자 린샹푸를 생각하면 천융량과 린샹푸와 구이민의 인연은 난세에도 살아있는 인간미와 희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덧붙여 천융량이 결국 린샹푸와 구이민의 한을 풀어낸 것이라든지 린바이자가 오입쟁이 구퉁녠과 결혼하지 못하게 된 것, 린샹푸가 생을 걸고 지켜낸 린바이자가 아버지가 떠난 세상에서도 여전히 안전한 곳에 남은 희망인 것 또한 참으로 위화스럽게 남긴 희망의 불씨가 아닐까 생각했다. 세상에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일이 많고,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것이 많다는 것. 지극한 인생의 진리를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니.


작중에 557p. 원청은 린샹푸와 딸의 끝없는 유랑과 방황을 의미했다라는 말이 있다. 그제서야 서문에 있던 누구에게나 '원청'이 있다라는 말을 이해했다. 우리는 누구나, 삶에서 끊임없는 선택을 하고 끝없는 유랑과 방황을 한다. 가슴에 품은 열정과 목표와 사랑으로 갓난 아이를 안고 나선 린샹푸처럼. 그리고 끝끝내 그 목표를 만나지 못하기도 하고, 지키기 위해 평생을 다 바친 존재와 먼 곳에서 스러져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만난 삶은 원했던 길과 조금 다르더라도 그런 대로의 의미가 있는 삶이다. 어쩌면 원청이 그렇듯이, 우리에게 이상적인 목적지라는 것은 정체가 불분명한 것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애타게 갈망하고, 찾아 헤매며 그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일구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원청의 진정한 의미라면, 제각기의 원청을 찾아 방황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 소설은 인생의 진리와 같은 것이 아닐까.

자꾸 말이 길어지면 소설 이야기를 더 해버리게 될까봐 줄여야겠다. 자꾸만 여운을 더듬게 될 것만 같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작가가 위화다. 정말로 위화스러우면서도 꽤 두꺼운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는, 심지어 두 관점의 이야기가 함께 있어서 두 번 위화스러운 이야기다. 망설일 이유가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