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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게 뭔데 - 잡학다식 에디터의 편식 없는 취향 털이
김정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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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사랑하긴 쉬운데 설명하긴 어려운 것을 설명해냈다. 본인의 타자성을 깨고 스스로 질문하고 답해서 유일무이한 존재로 거듭나는 이야기.
나는 지난 주말 내내 깊은 절망과 아픔 속에서 헤맸다. 내가 너무 작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였다. 존경하는 선배님 부부와의 약속조차 없었다면, 늘 나를 응원해주는 존재의 근거있는 위로와 응원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 주말, 심연의 깊은 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헤맸을 것이다. 어쨌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아픈 주말의 나는 누워서 생각했다. 나는 뭘까.
지난 십 년을 꽤 열심히 살았음에 불구하고 내 손에 남은 게 없었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현타가 왔다. 그나마 저년차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업과 분리되어있었던 거 같은데, 너무 신나게 본업에 매진하다보니까 취미가 애들 상담이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 제일 친한 친구가 아이들이 되어버리는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싫었다. 나는 내 삶도 취향도 뭣도 없는 무색무취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본업에서 대단한 성취를 거두었느냐? 면 그렇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쏟은 마음에 비해서 건져올린 게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으면 뭐 하나는 건져올렸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방향의 문제였을지 몰라도 열심히 한다는 게, 원칙을 지킨다는 게 도리어 나를 위협할 때가 많았다. 나는 이제 인생의 한 변곡점을 앞두고 미래의 내가 어떻게 될지를 고민해야할 시점에 와버린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은 뭐고, 나는 뭘까. 나다운 것은 뭘까.
그런 아픔 속에서 헤어나와 생업에 출근한 날 첫 교시, 그간 묘연한 미래 때문에 잠시 미뤄뒀던 이 책을 잡자마자 단숨에 읽어버렸고, 묘한 동질감과 위로를 얻었다.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는 책을 쓰는 것이다.몇 권 쓴 학습서 말고 내 이야기를 담은 책. 근데 이게 얼마나 허황되냐면 '책'을 쓰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뭘써야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누군지를 알아야 그 다음 단계를 거칠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아직도 나는 내가 누군지를 모르겠다.
사실 김정현 작가는 나와 꽤 닮은 점이 많다. 현실에서 개성이 꽤 강한 사람일 거 같은데, 어쩜 이렇게 광역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쓴 건지 신기하기도 한데, "많은 것을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가진 모든 시간과 체력을 바칠 정도로 깊지 않다. 사실 그럴 돈도 없다. 사랑은 하는데 열렬하지 않은, 취향으로까지 좁혀지지 않는, 그 한끗의 간극이 늘 나를 괴롭혀왔다.'라는 프롤로그부터 헉 하고 찔리게 공감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비교적 색깔이 뚜렷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 호불호가 강하다는 것 또한 그렇다. 그런 그가 호불호가 강하다는 것을 취향으로 돌릴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주었고 '취향이 소나무 같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나에게 '취향은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해주었다. 한 우물을 파야한다에서, 물이 안 나오면 다른 우물도 파봐야한다는 생각으로, 그게 나다울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이 트이게 해준 것이다.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그의 커피론을 읽으며 커피숍은 카페모카지!에서 시작했던 나의 커피 원정기를 생각했고, 그의 버거론을 보면서는 아 버거 쿨타임왔네?를 생각했다. 홍대에서 옷을 산 그의 이야기는 이대와 동대문에서 옷을 샀던 기억과 오버랩됐다. 책을 쓴 대단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의 기억과 닮았다는 것, 내가 겪었거나 알지만 글로 풀어내지 못한 것을 글로 풀어낸 결과물을 읽는다는 것은 묘한 공감과 쾌감을 불러왔다. 맞아, 이거지. 취향이 꼭 무언가에 미쳐야만 하는 건 아니었지. 많은 것을 사랑하면, 취향이 많은 거지. 꼭 내 취향이 우뚝 솟아야할 필요도, 변함없을 필요도 없지. 그런 위로.
요즘 내가 동경하는 부류에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넘사벽의 사람들 중 닮고 싶은 사람들, 하나는 내 가까운 곳에서 사부작사부작, 너도 이만큼은 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내가 할 수 있지만 하지 못한 일들을 해내고 내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 김정현 작가는 후자의 의미로 내가 동경하게 될 사람 같다. 헤비 인스타그래머라는 그의 글을 구독하며,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다. 그럼 나와 닮은 듯 다른 그를 통해 점점 나다운 게 뭔지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일이 재미있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