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까스를 쫓는 모험
이건우 지음 / 푸른숲 / 202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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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글에서 고소한 기름 냄새가 바삭하게 난다. 돈까스 잘 아는 멋진 오빠에게 랜선 한 끼 소개 받기.

요즘 바야흐로 테스트 유행의 시대이다. 뭐만하면 MBTI기반 테스트를 그렇게 한다. 근데 나는 예전부터 '제일 좋은 거' '하나만'고르는 것을 정말 싫어하고 못했던 사람이다. 아니 어떻게 이 상황을 이렇게 단정지을 수 있어? 어떤 상황이 백 사람한테 일어난다면 백 가지 디테일이 있는데 어떻게 하나를 자신있게 콕 집을 수가 있어?

음식도 그렇다. 제일 좋아하는 게 뭐냐고?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서 상대가 제일 싫어할 법한 대답인 '다요'를 뱉고 나오는 리스트를 쳐내는 게 빠른 것이 나다. 이 자리를 빌려 나의 만행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근데 딱 한 가지만 고르는 게 어려운 걸 어떡해. 다 다를 텐데. 곱창vs양고기! 했을 때, 한쪽이 겁나맛집이면 밸런스가 안 맞아버리는걸...?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다. 여자는 떡볶이 남자는 돈까스 이런 편협한 말이 유행할 때도 나는 그 사이에서 망설이곤 했다. 평균적으로 남자분을 상대로 음식에 대한 호불호를 물었을 때 제육볶음이나 돈까스는 약간 논외의 존재, 공기 같은 존재였던 경험적 통계는 있다. 다만 나는 엽떡 같은 매운 떡볶이보다는 #오제제 나 #정돈 같은 돈까스가 더 좋다.

어쨌든 그래서 저자님의 돈까스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돈까스집이 백 곳이 있으면 백 장의 돈까스는 다 다르다. 설레는 마음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돈까스 가게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곧이어 나온 따뜻한 돈까스를 바삭!하고 씹는 첫 입의 감동들은 내 생에 꽤 많은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와 진짜 맛있다! 하면서 돈까스를 씹어넘겼던 순간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순간들은 기록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한끼들 속으로 사라진 것이 대부분이다.그런데 그 순간들을 이렇게 맛깔나게 써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니? 책을 읽으면서 조금 반성했다. 진짜 덕질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이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하고 깊어질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누구나 무엇인가를 좋아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간 많은 것들에 대한 나의 취향이 명확하지 못했던 것들은 그 순간의 감상을 그날의 기분과 함께 휘발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저자님은 처음부터 돈까스를 바라보고 태어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숱한 취향의 발견과 기록 속에서자신의 취향과 기준을 찾아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분명히 알고 당당히 이야기하며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 자신있게 소개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 가볍고 위트있지만 묵직하게 다가온 이 글의 포인트였다.

"이건우씨는 언제부터 이렇게 돈까스를 잘 알았나?"(feat,시크릿 가든) 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저자의 돈까스에 대한 덕력은 남다르다. 게다가 좋아하는 만큼 기준도 분명하여 추천해주는 돈까스집들은 메모해뒀다가 틈나는 대로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맛깔나게 묘사한다. 마치 와인 소믈리에에게 와인인을 추천 받듯이, 다양한 취향의 돈까스 러버들에게는 거를 타선 없이 다양한 돈까스를 추천받을 수 있는 책이며, 돈까스 취향에 대한 기준도 일부분 제공받을 수 있는 책이다.

늘 뭔가에 대한 조예가 깊은 사람들을 부러워해왔다. 와인, 위스키, 커피, 타로 등등 꽤 많은 지식과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하는 영역들에 깊은 조예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못내 부러워만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묘하게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더 먹어 보고 겪어봐야 알 것 같은 다른 것들보다 더 감각적으로 와닿는 그것, 돈까스의 식감.

고풍스러운 취향을 한껏 자랑하기보다는 지금부터 무한한 돈까스가 나의 취향이 될 수 있다고, 어서 와서 함께 돈까스를 썰며 이야기를 나누자고 나를 불러주는 이 책을 만나 다행이다. 당장 오늘부터 흔쾌히, 이 돈까스 여행에 나도 함께하며 취향의 발견을 기록해나가고 싶다.

아삭바삭한 글을 읽으며 당장 가볼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곳이 있는지를 자꾹만 확인하고 다시 읽기를 반복했는데, 오늘 점심이 마침 돈까스다. 이건 미루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닐까? 오늘 점심 돈까스는 어떤 맛일까?


ps. 그간 나의 편협한 세계관에서 최애 돈까스는 #오제제 돈까스였다. 자 이제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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