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가 간절한 날에 읽는 철학 이야기
사토 마사루 지음, 최현주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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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직'과 '전직'에 대해서 최근에 굉장히 오랫동안 고민했다. 이럴 수가 없었다. 내가 열심히 살지 않은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평균으로 생각할 때 훨씬 열심히 산 것 같은데(?)이럴 수가 없다. 별로 이 직업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 직업에 안정적으로 잘 들어와서 살고 있는 것은 천직이라서일 텐데, 그렇다면 반대로 내가 이렇게 원해왔지만 갖지 못한 직업은 내 천직이 아니라서였을까? 10년이나. 러시안룰렛을 돌려도 한 번은 됐을 타이밍인데. 별 생각을 다했다. 내 사주가 신강해서인가. 혹은 내가 주님의 시그널을 계속 뭇하고 있어서일까...

최근에 학원으로 나가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다. 사실 최근이 아니라 아주 옛날부터 언니는 학원 재질이라는 말을 꽤 많이 들어썬 것 같다. 어제 들었던 타로점에서는 내가 아주 오래 전에 내 본성을 부정한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호기심에 반응하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자꾸만 안정에 반응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 책이 제목부터 끌렸다. 사실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나에게 퇴사란 가깝고도 먼 단어였다. 내가 선택하려면 선택할 수 있지만 쉽게 선택할 수 없는 것.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야 선택지에서 제거해야할 것이지만 지금 나에게는 선택하려면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지만 입에 담는 것으로만도 부정탈 것 같은 단어. 그렇지만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마음에 품음직한 단어 퇴사. 그래서 이 책은 퇴사하라고 할지, 아니면 퇴사를 말릴지가 너무 궁금했다.

결론은 지나치게 애쓸 필요는 없지만 적절한 노력은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애매하지만 맞는 말이다. 일에 대한 실망은 너무 큰 이상을 가지고 너무 많이 노력했을 때 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모든 손을 놔버리면 일을 시킨 사람에게 나에 대한 신뢰를 주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까 '적절함'이라는 선을 찾을 필요가 있는데 그게 참 쉽지 않은 것이다. 나는 특히 2장 '인간관계에 대한 철학'에서 많이 깨우치고, 3장 '일에 대한 철학'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계약직으로 다니다보면 일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거리를 유지해야할지에 대한 감을 얻기 힘들다. 어찌 생각하면 남는 건 사람 밖에 없지만, 어찌 생각하면 그들에게 나는 한낱 스쳐가는 사람일 뿐인 것이다. 그런 나에게
직장동료는 친구가 아니다, 이해 안 되는 사람이 조직 내에 존재하는 게 정상, 일을 할 때는 정이 아닌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부분이 확 와닿았다 10년을 일해도 명확히 정리하지 못했던 부분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직장동료로 시작해서 친구로 남은 사람이 있기도 하고, 일이라는 것이 반드시 일로만 남을 것인가, 내 삶의 과정이라면 그 과정에서 사람을 남길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볼 법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30대 후반에, 전직을 염두에 두고 있는 시기에 이런 글을 읽어서 더 많이 고민ㅏ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에 대한 철학에서는 요즘 굉장히 고민하고 있는 '천직'에 대한 부분을 무겁지 않게 다뤄줘서 좋았다.꿈을 이루는 방법은 다양하다는 것, 미래를 예견하려면 전제를 의심하라는 것, 천직을 얻는다는 것은 운이라는 것, 모든 일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전직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나의 생각을 조금 열어준 것 같다. 그간 왜 나는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만을 고민했는가 하는 것 말이다. 꽤 늦은 나이까지 내가 하고 있었던 일이 천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할 수 있는 계기기도 했다. 물론 좀 더 큰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잃은 직후에 읽은 이 책은, 직업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운명론자로서 천직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직업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까지. 결론적으로 '직장에서 어떻게 잘 버텨낼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었지만, 내게는 새로운 의미에서 어떻게 잘 버텨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줄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불안에 많이 흔들리는 시기에 이 책을 접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직장 생활이 인간관계 때문에, 적성 때문에, 부정적 감정과 고독 때문에 힘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일독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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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밤에 고하는 말 -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지는 연습
매트 헤이그 지음, 최재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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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불안의 밤을 함께 이겨내줄 따뜻한 위로와 용기

요즘 나는 불안하다. 30대를 내내 불안하게 보내면서도 오히려 좋다고 했던 나였는데, 요 2년 새는 견디기 힘들게 불안했었다.

그러나 조금씩은, 사실은 좀 오래 전부터 불안했는지도 모른다. 신경림의 '갈대'를 좋아했다. 특히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라는 부분이 아주 오래 전부터 충격적이었다. 그 불안이 현실화되고 시각화되며 어떤 사건과 부딪쳐 걷잡을 수 없어진 지가 2년여쯤 될 뿐.

하지만 사람은 늘 그렇듯 알지만 안다고 모든 것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불안하다는 것이 스스로가 온전하게 두 발로 서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신없이 몰아치는 풍파에 휩쓸리면 그 두 다리를 지지하고 서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 이 책은 꺼내먹을 약처럼, 혹은 애착인형처럼, 혹은 옆에서 위로와 응원을 건네줄 이야기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말을 꺼내줄 것만 같다. '미드나잇라이브러리'라는, 동화적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매트 헤이그라는 거장이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한 거 아냐?"하는 말로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자신의 경험과 마음을 담아서인지 매끄럽고 슥 읽히는 면이 있지만 책의 구성이 꽤 체계적이다.

-마음의 붕괴
-욕망의 중독
-결핍과 과잉
-연결의 감옥
-변화의 시작
-희망과 자존

이라는 여섯 개의 챕터를 읽어나가는 동안에 우리는 유난스럽지 않게,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우리의 고통을 그와 공유하고 미쳐날뛰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나가며 오롯한 나로서 두 다리로 땅을 짚고 설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세상이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려 한다면 다른 방향으로 수영하는 법을 배우고, 시련과 고난의 시간조차 헤엄쳐내서 드디어 현명한 연장자가 되고, 1만개의 길을 품은 지도가 되며, 불타는 강렬한 주홍이 됨으로써 용감할 정도로 진짜인 당신 자신이 되라는 메시지를 읽으며 이걸 이렇게 부담스럽지 않게 써내다니? 하는 생각을 했다.

불안할 때는 안정을 줄 애착인형이나, 혹은 멘토나, 혹은 부적 같은 무언가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를 통해 깔딱, 불안의 꼭데기를 넘으면 다시 내리막의 능선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불안해지기리를 반복하는 삶을 불안한 사람들은 숙명적으로 산다. 그때 그 꼭데기를 함께 넘을 것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층고를 낮출 수 있는 도구로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을 몇 번이고 읽어 삼키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쭈그리고 있는 나를 조금씩 조금씩 펼 수 있도록 한 걸음을 내디딜 용기와 힘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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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의 계절을 지나
아오야마 미나미 지음, 최윤영 옮김 / 모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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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스튜디오오드리 #오드림서포터즈3기 #모모출판사

한 줄 평 : 러브레터와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이을 맑은 감성의 일본 연애소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순수한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다. 미노리는 좋겠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유야, 다이치, 미노리, 아야카. 아마 가장 가까이 있던 아야카야말로 두 사람 모두의 사랑을 받는 미노리를 가장 부러워했겠지?

첵에는 머리를 퉁,하고 얻어맞는 반전이 숨어있다.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꽤나 익숙한 일본감성이면서도 작가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구나 싶은 그런 반전.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의 곁에 남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도 내 모든 것을 걸어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순수한 마음에 얼었던 가슴이 뛰고, 그런 대상이 있다는 것이 부러우며, 그런 대상에게 써낼 능력이 있다는 것이 부럽고 따뜻한 그런 소설었다.

막장드라마보다 더 막장 같은 세상에 지쳐 가슴이 얼어갈 때, 순도 깊은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고 시간을 되돌리는 일본의 로멘스 소설 속으로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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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안드레아 바츠 지음, 이나경 옮김 / 모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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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결핍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무한 순환의 고리

주인공인 에밀리와 크리스틴은 둘도 없는 친구다. 서로 멀리 살아도 일 년에 한 번은 꼭 여행을 함께 떠날 정도로. 그런 둘에게 두 번이나 비슷한 데이트폭력 사태가 벌어진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리고 둘은 서로만 아는 비밀을 가진 더욱 각별한 사이가 된다.

데이트폭력, 강간 등 여성에게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사건들로부터 서로를 구해내며 두 사람은 한 치의 의심도 할 수 없는 결속감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너무 당연해 의심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크리스틴의 광기어린 집착과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에밀리. 그것은 크리스틴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었다. 사실은 에밀리라는 대상을 소유하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도구로 쓸 수 있는 크리스틴의 철저한 계획이었음을, 어렸을 때부터 결핍되어온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 주변인들을 끊임없이 가스라이팅하고 소유하기 위해 집착해온 크리스틴의 새로운 타겟이 하필이면 결핍에 시달리고 있던 에밀리였을 뿐임을 에밀리는 알게 된다. 급기야 에밀리의 남자친구인 애런에게서 에밀리를 빼앗고자하는 크리스틴으로부터 도망친 에밀리와 애런은 크리스틴의 마지막 계획에 걸려들고 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알게되었음에 불구하고 크리스틴으로부터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에밀리는 애런과 함께 다시 그 혼돈의 구렁텅이로 스스로 발을 옮기게 된다.

가스라이팅과 집착은 늘 결핍을 노린다. 결핍된 사람을 숙주로 그의 마음을 조종해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집착하게 한다. 한 발 떨어져서야 비로소 그 모습을 알아채게 되지만 결국 그로부터 멀리 도망치지 못한다. 그래서 무서운 게 아닐까.

결핍과 가스라이팅, 집착에 대해서 근본부터 찬찬히 생각해보게 해준 스릴러 '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스릴러인 만큼 손에 땀을 쥐며 읽게 되지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하는 근본적인 질문도 함께 던지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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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 - 인간은 왜 취하고 상처 내고 고립되는가
마쓰모토 도시히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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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인간의 근원적 결핍과 약물의 관계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고찰

한자 '사람 인'자를 두고 두 사람이 기대어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홀로 고립되면 '살아남기'위해 고군분투해야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랑하고 연대하며 그 과정에서 배신하고 배신당하며 배척당하기도 하며 살아간다. 100사람이 있다면 100사람의 외형이 조금씩이라도 다른 것처럼 타고난 본질의 모습도 경도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의 문제와 해결책, 결핍과 보완은 그 모양도 정도도 다 다르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은 시각적인 동물이라서 그런 건지, 외형적인 차이나 결핍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내면적인 차이나 결핍에 대해서는 둔감한 면이 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신체의 질병에는 민감하지만 정신의 질병에는 굉장히 야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같다.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과 그로인한 결핍은 극도의 외로움으로 다가온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약물, 자해 등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인간으로부터의 배신감과 같이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 지워지지 않는 상처, 불안감 같은 것들이 계속되지만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을 때 사람에게는 기댈 곳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럴 때 인간들이 조금만 노력한다면 약물따위를 세상에서 몰아낼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모두 결핍을 가지고 있고 약물로 규정되든 그렇지 않든 무언가에는 '취한다~중독된다'사이에 놓여 삶을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다. 그것이 약물이 아니며 취하는 정도라면 취미나 흥미로 가정할 수 있지만, 약물이며 중독되는 정도라면 위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적 영역에서의 구제책이 마련되지는 않으면서도 최근 100여년 사이에 기준도 모호하게 제각각 약물을 위험한 것으로 규정해버리는 새로운 질서로 인해 '약물'로 규정된 것으로부터 삶을 구원받던 사람들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의 문제와 육체의 문제를 분리한다. 아마 정신의 문제가 근원을 찾다보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기 어렵고, 어떤 방향으로 언제부터 어떻게 가기 시작했는지 명징하게 추적해내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 육체는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신의 문제는 육체로 터져나온다. 하지만 막연하게 억압당해온 정신의 고통을 버텨내기 위한 몸부림은 생각보다 많은 편견에 부딪쳐 더 큰 상처를 입곤 한다. 사람이 여타의 동물들과 월등하게 다른 점이 사회적 동물로서 육체적으로 약한 자를 해치지 않고 보듬는 것이라서 인간의 아기가 가장 신체적으로 무능력한 존재로 태어난다는 인간세계 희망편과 정 반대편에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기에 오롯하게 홀로 감내해야하는 정신적 고통과 그것이 육체나 행동으로 터져나올 때 감당해야하는 편견을 감당해내야하고 이로 인한 배제와 고립을 견뎌내야하는 삼중고를 겪게 되는 인간세계 절망편은 모순되면서도 당연하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육체적 고통은 알림으로 인해서 상대적으로 배려와 연대를 요구할 수 있으나, 정신적 고통은 그런 면에서 사람을 한층 외롭게 한다. 아직도 정신과 치료는 장벽이 꽤 높고, 보험처리 등에서 여전히 차별받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해답을 찾아 헤맨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것은 사주나 타로나 상담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종교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술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약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나 또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으로 사주나 타로도 기웃거리고, 술을 마셔본 적도 있다. 같은 상황에서 담배나 약물을 찾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작은 고통에서부터 장기적인 고통까지를 구원하는 이 존재들 중 어쩌면 정치적인 이유로 가까운 시기에 약물로 규정된 것에 빠져있는 사람들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학생과 직장인들이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 많이 마시는 몬스터나 우리가 취향으로 마시는 커피와 같은 각성 성분이, 사주나 타로나 상담이나 종교가 어느 날 불법이나 마약으로 규정된다면? 아프고 싶어 아프는 사람은 없고 태어나서부터 약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충분히 돌보아지지 못한 사람들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형태 중 하나가 약물로 드러날 수 있을 뿐이다.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 약을 바를 필요는 없더라도 아픈 사람에게는 적당량의
약을 발라주고, 그게 영 나쁘다면 대체재를 함께 찾아주고, 약이 없어도 되도록 돌봄의 연대로 그를 보호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듯 누구나 근원적 결핍을 안고 사는 우리는 어떤 약물의 좋고 나쁨보다 좋은 사용과 나쁜 사용을 규정하고, 약물의 악마화로 인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오히려 배척하고 고립시키기보다 그 약물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사정에 대한 귀 기울이며 더 나아가서는 근원적인 연대를 통한 궁극적인 결핍의 수용과 인정을 목표로하는 다양성 속에서 대체재를 제시하고 타인의 살아남기와 치유하기를 지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사실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이 고통들에 대해서는 결핍을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보아야 느리더라도 묵직한 한 걸음을 함께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정도와 시기가 다를 뿐, 우리 모두가 언제든 빠질 수 있는 위기에 대해 다양성과 포용을 기반으로 한 돌봄의 안전망을 마련해두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싶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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