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롱이 이야기 - 아직 그리고 있습니다, 그 병아리
김진솔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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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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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을 대표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노란 개나리, 노란 오리, 노란 카나리아, 노란 해바라기, 노란 유채꽃, 노란 바나나, 노란 레몬 등 많습니다.

그 중에 귀여움을 담당할 수 있는 노란 병아리도 있습니다. 병아리를 상상만 해도 너무 귀엽게 느껴지는 동물입니다.

그런 노란 병아리가 캐릭터 그림으로 나오는 에세이 《뾰롱이 이야기》는 노란 병아리 뾰롱이가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이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 뾰롱이에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10만 팔로워 계정이 해킹이 되기도 했고, 29번이나 이모티콘에 낙방합니다.

그럼에도 뾰롱이는 여전히 그려지고 있고 이렇게 책까지 나오게 됩니다. 뾰롱이의 작가는 병아리 하나만 그리고 13년이나 되었습니다.

이 에세이 《뾰롱이 이야기》에서는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미공개 이야기와 함께 작가의 작업 일기와 같습니다.

뾰롱이의 작가는 청소년시절 뾰롱이가 탄생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여러 학원을 다녔지만 공부에 큰 흥미는 없었습니다.

결국 부모님과 긴 실랑이 끝에 미련 없이 공부를 포기하고 미술 학원에 정착하는 진로를 선택합니다.

그림을 좋아하고 미술 학원에 다니고 있으면서도 또래 친구들과 조금 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일본 애니에 빠져 있을 때 조금은 독특하고 엉뚱한 곳을 향해 있었고, 맥락 없이 웃기고 가벼운 유머가 섞인 개그를 좋아했습니다.

사람의 형태를 그려내는 데 소질이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타협안을 찾게 됩니다.

사람보다 동물을 그리는 것이 더 쉬웠습니다. 털의 질감이나 까다로운 관절의 꺾임을 세밀하게 묘사할 필요 없는 동그란 선으로 형태를 완성합니다.

뾰롱이의 모델이 된 노란 병아리는 어렸을 때 500원을 주고 산 노란 병아리를 제법 커다란 닭이 될 때까지 키워본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남들이 화려하고 복잡한 피사체를 스케치북에 그릴 때 노랗고 동그란 병아리 하나에만 무섭도록 몰두합니다.

볼품없던 첫 스케치가 지금의 둥글고 사랑스러운 뾰롱이로 다듬어지기까지는 무려 14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뾰롱이 이야기》를 읽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귀여운 뾰롱이 캐릭터와 함께 작가의 이야기도 재밌었습니다.

열심히 그린 캐릭터 계정을 군입대 중 해킹을 당해 모든 것을 잃기도 했지만 다시 0에서 시작해 팔로워를 모았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시작해 성공의 산에 오른 경험이 있는 성공자만이 할 수 있는 성공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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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크 브레이커 - 보이지 않던 세상을 다시 읽는 사고법
양중훈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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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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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도라는 것은 화면이나 이미지에 사용하는 개념으로 영상이나 이미지가 얼마나 촘촘하고 세밀하게 표현되는지를 나타내는 정도입니다.

숫자가 클수록 보통 더 많은 픽셀로 이미지를 표현하고, 해상도가 높으면 글자가 더 선명하고 사진의 세부 묘사가 잘 보입니다.

이런 해상도는 영상이나 이미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보는 눈에도 해상도는 필요합니다.

이 책 《씽크 브레이커》는 세상을 보는 해상도 높은 사고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세상을 보는 것과 읽는 것은 다릅니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세상을 더 정확하게 보는 데 있고, 같은 사물, 같은 현상, 같은 사건을 보고도 누군가는 그냥 지나치고 누군가는 탐구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저해상도로 보고 있다고 해서 세상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형태는 보입니다. 대략의 용도로 파악합니다.

하지만 그 안의 디테일과 작동 방식, 구조와 맥락이 생략된 채 개념의 껍데기만 보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특정 사물이나 현상을 저해상도로 본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저해상도의 시선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정작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야 할 순간에도 세상을 뭉뚱그려본다는 데 있습니다. 해상도가 낮으면 일상의 불편도 단순한 불평으로 끝납니다.

그냥 그런 일로 지나가고 반복되는 문제도 한 번의 짜증으로 끝납니다. 눈앞에 문제가 있어도 그것을 문제로 읽어내지 못하면 해결은 어렵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것, 내가 집중하는 것,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외의 세상은 흐릿하게 남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고해상도로 볼 수는 없지만 누구에게나 유독 선명하게 보이는 분야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분야, 오해 부딪힌 일, 자주 고민한 영역에서는 누구나 해상도가 조금씩 올라갑니다. 구조가 보이던 것이 문제와 가능성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고해상도의 시선이란 많이 안다고 뽐내는 태도가 아니라 세상을 더 읽어내려고 하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정답을 많이 외우는 힘이 아니라 차이를 구별하는 힘이고 겉모습에 머무르지 않고 안쪽의 구조로 들어가려는 힘입니다.

누군가는 같은 장면에서 아무 정보로 읽지 못한 채 지나가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수많은 신호를 읽어냅니다.

그 차이는 처음부터 정해진 능력이라기보다 무엇을 오래 들여다보았는지,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 어떤 경험을 쌓아왔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고해상도의 시선은 세상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시선이 아니라 복잡했던 세상을 조금 더 정확하게 읽어내는 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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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쓰는 AI만 멍청해 보일까? - 같은 AI를 써도 결과가 달라지는 진짜 이유
이한빛 지음 / 생능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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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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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업무를 볼 때 AI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페이지는 열어놓고 있습니다. 언제 급하게 사용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업무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AI를 거부하기보다 제대로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이 책 《왜 내가 쓰는 AI만 멍청해 보일까?》는 AI 사용법을 다루는 책들과는 결이 다르게 왜 설명을 잘 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처음 AI를 사용할 때 AI의 정보다 모두 정확하다고 믿었고 또 그것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AI도 틀린 정보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AI에게 자료를 요청하면 AI는 곧바로 긴 문서를 내놓습니다. 문단은 잘 나뉘어져 있고 문장은 단정하고 제목이 있고 결론도 있는 완벽한 보고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읽을수록 어딘가 어긋나 있고 모두 알고 있는 배경 설명이 길고 중요한 데이터는 문단 속에 묻혀 보이지 않습니다.

틀린 답은 없었지만 내가 필요로 하는 답은 아닙니다. 보고서처럼이라고 말했지만 그 안에 아무 기준도 없었던 것입니다.

누구에게 보고하는지, 무엇을 결정하기 위한 문서인지, 지금 가장 중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등등 그 기준을 입력하지 않았습니다.

AI는 말하지 않은 기준을 대신 세워주지 않습니다. 기준이 비어 있으면 어디에나 무난한 구조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결과는 그럴듯하지만 상황에는 맞지 않고 내가 원하는 보고서가 아니라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나온 평균 출력물이 됩니다.

AI가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주지 않은 설명 즉, 머릿속 전제를 주어진 범이 안에서 그럴듯하게 완성했을 뿐입니다.

AI가 갑자기 멍청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설명을 입력하지 않은 채 정답만 요구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AI의 성능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설명하지 않았는지, 어떤 조건을 입력하지 않았는가에 있습니다.

우리는 AI에게 무엇을 해달라는 말은 잘하지만 왜 필요한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보는지와 같은 기준을 입력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가 허용 범위인지에 대한 조건은 충분히 입력하지 않고 판단 공간에 공백이 생깁니다. 우리는 공백을 AI가 채워주길 바랍니다.

말을 못해서가 아니라 말해야 할 것을 점검하지 않아서입니다. 우리는 설명을 많이 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설명은 종종 사건의 나열이고 판단의 기준은 빠져 있습니다. 문제는 AI의 이해력이 아니라 우리가 설명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설명을 잘 못하는 건 생각이 부족해서도, 머리가 나빠서도 아니라 우리는 대부분 설명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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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에스킹 - AI가 대체할 수 없는 리더의 결정적 능력
정소영.정우성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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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질문이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수 있고 질적인 차이도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질문하느냐는 그 사람의 능력이 되기도 합니다. 이 책 《리더의 에스킹》은 리더의 질문 능력을 알려줍니다.

리더는 빠르게 결정하고 명확하게 지시하고 정확한 답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리더의 능력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젠 모든 것을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습니다. 리더의 유능함이 이제는 AI가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젠 세계 기업의 대부분이 AI를 도입했고 AI를 쓰는 것과 AI로 성과를 내는 것 사이는 질문, 에스킹이라는 결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AI는 놀랍도록 빠릅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논리적인 구조를 만들며 보고서를 쓰고 전략 초안을 뽑아냅니다.

AI가 더 강력해질수록 리더십의 본질은 더 선명하게 한 곳으로 수렴합니다. 바로 빠른 답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이 필요합니다.

많은 분석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는 질문 정해진 방향이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는 질문입니다.

AI를 잘 활용하는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의 차이를 연구한 결과들이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기술 이해도나 도구 숙력도가 아니라 질문입니다.

같은 AI, 같은 데이터, 같은 상황이라면 질문에 따라 AI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됩니다. 이것이 질문 설계의 역량입니다.

AI 시대에 리더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통찰로 AI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AI는 단지 질문을 확장할 뿐이고 그 질문이 무엇인지를 설계하는 것이 리더의 일입니다.

리더가 AI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AI는 어떤 방향으로도 달릴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잘못된 방향으로 더 빠르게 달려 위험한 결과를 만듭니다.

AI는 이미 모든 리더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더 빠르게 분석하며 더 많은 선택지를 나열합니다. 가장 많이 아는 사람으로 AI와 경쟁하면 집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루틴한 관리 역할은 AI로 이동합니다. 반면 인간적인 판단이 필요한 역할은 더 중요해집니다.

질문 설계자로 리더가 매일 고민해야 할 사항은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이 방향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입니다.

이런 질문들을 설계하고 던지는 사람이 바로 AI 시대의 리더입니다. 가장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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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혁명 : 랄프 왈도 에머슨 - 인간은 내면의 목소리를 믿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ㅣ 내면혁명 1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 이너스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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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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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내면혁명: 인간은 내면의 목소리를 믿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의 저자 랄프 왈도 에머슨은 19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사상가입니다.

특히 초월주의를 이끈 인물로 유명합니다. 초월주의란 진리는 외부의 권위와 제도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내면과 자연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19세기 미국에서 등장한 철학, 문학 사상으로 랄프 왈도 에머슨은 자기 자신, 자연, 직관, 개인의 자유 등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인간에게는 스스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내면의 능력이 있고, 자연은 단순히 물질적인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연결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논리적 추론만이 아니라 직관과 내면의 경험도 진리를 인식하는 중요한 방법이라 주장합니다.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이런 랄프 왈도 에머슨의 영향을 받은 작가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월든이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있습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일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자기 자신과 맺는 가장 내밀한 관계이고 그 관계가 외부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침범당한다면 본래 형태를 잃을 것입니다.

절대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님이 정해준 기준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내면과 양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직관을 믿어야 하는 것은 자기 신뢰가 강하다는 의미이고 권위나 전통 제도에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에머슨은 다수의 의견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태도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대중의 흐름이 이미 한 방향으로 쏠려 있을 때 자기 내부 거부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거부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행위는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배신이기도 합니다. 물론 비판적으로 대응하기 쉽지 않습니다.

다수의 의견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 순간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공동체에서 배척당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자기 신뢰는 의지의 문제이기 전에 통증을 견대는 문제로 사회적 통증을 견디지 못하면 자기 본성을 끝까지 지킬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오해를 받아들이는 능력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직관을 따른 결과 누군가는 자신을 차갑다고 부를 것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을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고 누군가는 자신을 변해싸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신뢰는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본성을 끝까지 믿었다고 해서 그 길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약속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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