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위로는 중국과 아래로는 일본에게 역사적으로 수없이 침략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기도 합니다.
이번 역사책 《고려거란전쟁》은 고려시대에 26년간 벌어졌던 고려와 거란의 전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입니다.
고려 성종 12년부터 현종 10년에 이르기까지 3차례나 거란은 고려를 침략했습니다. 당시 거란을 요라고 부르기도 해 고려-요 전쟁이라고도 합니다.
수많은 침략전쟁이지만 고려는 절대로 호락한 민족이 아니었고 거란의 3차례의 침략에도 고려의 대승으로 끝나게 되고 거란은 중국과 몽골에 흡수됩니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 서희의 담판이나 강동 6주와 같은 것은 거란의 침입에 있던 일들입니다.
고려는 왕건이 세운 나라이다. 국호를 고려라고 한 것은 고구려 계승의식을 뚜렷하게 나타내는 부분입니다.
왕건은 북진정책을 실시했으며 즉위하자마자 먼저 평양을 점렴하고 개척합니다. 왕건이 북방을 개척하는 동안 거란의 야율라보기가 발해를 멸망시킵니다.
발해가 멸망하기 전까지 고려와 거란은 간철적으로 서신을 교환했습니다. 왕건이 사망하고 고려가 내외부적으로 점차 발전하는 사이 국제 정세도 변합니다.
거란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첩보가 계속 들어옵니다. 소손녕이 이끄는 거란군이 침공하자 서희는 중군사로 임명되어 군대를 이끌고 안북부에 주둔합니다.
서희가 소손녕과 회담을 마무리했지만 고려 성종은 강한 성격의 소유자로 거란에 보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종은 소손녕의 딸과 혼인을 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성종은 38세에 사망하고 소손녕의 딸은 고려에 오지 못했고 왕비도 되지 못합니다. 거란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합니다.
고려 현종이 항전을 결정한다면 거란군을 물리칠 힘이 고려에는 충분히 있었지만 서북면과 연락이 단절된 상태라 고려가 유리한 상황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현종은 강감찬의 의견을 받아들여 항전을 결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강감찬은 큰 역할을 하지 못했고 8년 후 이길 방법을 찾아냅니다.
오래전 전쟁은 수 십년이 걸린 전쟁들도 많습니다. 고려와 거란의 전쟁 역시 3차례에 걸려 약 30년 간 벌어졌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가장 고통받는 것은 백성이었다. 우선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해야 했습니다. 전쟁엔 포로가 가장 중요한 전리품이기도 합니다.
포로로 잡혀간 고려인들은 거란에서 농사를 지으며 대대로 노예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거란에 도착하기도 전에 손발에 동상이 걸리고 아사하기도 합니다.
그런 포로가 된 백성을들 구하기도 했고 양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1천여 명의 포로를 되찾았다고 합니다.
이 책 《고려거란전쟁》은 고려와 거란의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시작해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풀어쓴 역사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