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없는 사회 - 타율적 관리를 넘어 자율적 공생으로
이반 일리히 지음, 박홍규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1. 저자인 일리히는 학교의 소멸을 주장하지 않았다. 다만 제도화된 학교는 반드시 타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리히가 생각한 바람직한 학교 : 인간이 무언가를 배우고 싶을 때 그것을 배울 수 있는 곳. 자신의 목표와 관련된 지식을 익히는데 사회에서 도움을 주는 곳.

2. 인간이 스스로 공부하려는 것은 본능이다. 그러나 우리네 학교는 그 본능을 타율화시킨다. 학교에서 십수년을 보내는 동안 인간의 공부하려는 본능은 철저히 말살된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은 사람은 아주 똑똑했던 사람임에도 학업에 손을 놓아버린다.

학교의 강요된 수업은 극소수의 학생들에게 좋은 직장을 제공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학생을 낙오자로 만들어 버린다. 마치 도박과도 같다. 도박에서 돈을 따는 사람은 도박기술이 훌륭하고 운까지 좋은 극소수다. 대다수의 사람은 돈을 잃는다.

3. 학교에선 모든 것을 측정화 하려고 한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을 하찮게 여긴다.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정말로 중요한 대다수의 요소는 측정할 수 없다.

4. 학교공부는 교육결과라고 하는 공리에 입각하여 실생활과 떨어진 형태의 지식중심의 주입식교육을 주입한다. 아동의 흥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으므로 아동의 자연적인 공부능력과 건전한 성장능력을 질식시킨다.

5. 일리히가 생각한 좋은 수업 : 학생 각자에게 제한된 과정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일리히가 생각한 최악의 수업 : 정해진 절차에 따라 모든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똑같은 것을 가르친다.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교실풍경)

6. 대부분의 기능은 교사의 능력이 아닌 학생 스스로의 훈련으로 습득된다.

7. 법대 교수가 번역을 해서 그런지 책 내용이 전체적으로 딱딱한 감이 있다.

8. 그동안 세상은 아주 많이 바뀌었다. 스마트폰 시대, 유비쿼터스 시대에 우리네 교육은 아직도 애처롭다. 1950년대 학교와 2010년대 학교의 내용, 시스템, 평가방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것을 바꾸려고 하는 저항이 너무 희미하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제도화된 학교는 반드시 개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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