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 푸른역사 학술총서 5
한명기 지음 / 푸른역사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역사를 공부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연표암기나 무슨 왕의 업적, 어떤 사건이 일어난 순서의 암기가 아니라 어떠한 일이 왜 일어났으며 그에 따른 결과는 무엇인가라고 생각한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제대로 분석하여 좋은 일은 다시 일어나게 하고 나쁜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데 역사의 목적이 있다고 본다. 이 책은 우리 정묘,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한 책이다.

흔히들 정묘호란의 원인을 친명배금 정책때문이라고들 한다. 교과서에도 그렇게 적혀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인조는 친명을 한 것은 맞지만 배금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확실한 친명도 확실한 배금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외교의 총체적 실패라고 한다.

친명배금을 한다면 모문룡을 제대로 도와주던가(사실 모문룡의 저열한 태도도 조선이 돕기를 주저한 원인이 되었다.)했어야 하는데 조선은 청의 눈치를 본다고 그러지도 못했다.

정묘호란의 정확한 원인은 조선의 문제라기 보다는 청의 문제이고 청의 필요에 의해 일어난 전쟁이다. 청의 입장에서 모문룡 제거와 조선과 교역을 통한 물자확보 목적이 있었다. 사실 정묘호란 이후 청의 목적이 어느정도는 달성되고 조선의 피해도 그리 크지 않았다.

정묘호란 이후 청태종 홍타이지는 조선을 청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제위에 오를 때 조선의 의견을 물어봐야 한다며 조선에 사신을 보냈고 조선이 자신이 제위에 오르는 것을 축하해 줄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했다.

그러나 여기서 조선은 세상에 천자는 명의 천자밖에 없다는 말로 청의 사실을 홀대한다. 이미 정묘호란으로 명과의 의리를 저버리면서까지 얻은 청의 신뢰를 다시 던져버렸다. 홍타이지는 이 사실에 격분하고 조선에 대한 인식이 변한다. 이것이 바로 병자호란의 시작인 것이다.

결국 조선은 전쟁에서 패해고 인조는 삼례구고의 치욕을 당한다. 청은 조선의 정신적인 자존심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쓴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포로로 심양에 끌려간다. 이후 조선의 왕권은 극도로 약해지고 인조는 왕권을 지키는데 엄청난 부담을 느낀다.

청군이 물러간 후 인조가 친청파들을 숙청했을 것처럼 보이지만 인조는 화친파인 최명길과  병자호란때 청군을 전혀 막지 않고 자동문 역할을 했던 김자점과 김류같은 주전파 입장에서 보면 씹어죽여도 시원찮을 인물들을 중용한다. 그리고 주전파의 상소에 짜증으로 일관하며 주전파를 차례로 조정에서 물러나게 한다.

인조라고 청을 찢어죽이고 싶지 않았겠냐마는 인조에게도 명은 청을 당해낼 수 없고 이제 천하는 청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정도의 국제감각은 있었다. 그리고 허약해진 조선왕조를 지키기 위해 더이상의 배금정책은 위험하다 것도 알고 있었다.

청은 이후 소현세자와 인조 사이를 이간하는데 인조를 기망지군(旣亡之君)이라며 이미 죽은 왕 취급을 했고 청조정에선 병자호란 이후 왕을 소현세자로 바꿨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왕권을 겨우 지탱하고 있는 인조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흔히들 인조가 친명이라는 수구적인 입장을 견지한 나머지 아들까지 죽였다고 생각하는데 진짜 원인은 소현세자가 자신의 왕권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책은 전문서적이지만 웬만한 소설보다도 재미있는 책이다. 최근 드라마 추노가 인조시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와 관련지어 이 책을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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