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라, 내 아름다운 파출부 - 해외현대소설선 3
크리스티앙 오스테르 지음, 임왕준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해리는 독특한 독서습관이 있었는데, 새로 읽기 시작한 책의 결말부분을 꼭 먼저 들춰보는 버릇이 그것이다. 이유인 즉, 책을 다 읽기 전에 자신에게 어떤 사고가 닥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단 시작해 놓은 책의 결말도 모르는 채 죽기라도 한다면 그건 너무 억울하니까.
내 경우는 해리와 같은 이유에서는 아니지만, 책(거의 소설이다)을 읽기 시작해서 한 10분 정도 경과한 후에 끝부분을 슬쩍 들춰본다. '들춰본다'라기 보다는 그냥 본다(단, 추리소설만은 제외다). 마지막 장을 다 읽어버리는 게 아니라, 대개는 마지막 두 세 문장만을 읽는다. 내가 읽었던 책들 대부분, 그 결말을 먼저 알아서 독서의 재미가 반감되었던 것은 없었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 내지는 짐작만으로는 불충분한 비약을 메우는 과정이 바로 나의 독서과정인 것이다.
이 소설, <로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파출부를 고용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이 소설은 내가 마지막 장을 들추려 마음먹기 전까지-아니, 들춰본 후까지- 주인공(화자)의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인물간의 대화는 약속된 문장 기호에서 뛰쳐나와 서술문 속에 대화가 아니라는 듯 자리하고 있다. 묘한 형식이다. 내용을 보자, 화자는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파출부를 고용했고, 이야기는 고용된 파출부(당연히 그녀의 이름은 로라다)와 화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기록이다.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소설인 만큼, 여기 저기에서 발견되는 화자의 깊은 사유도 발생하는 사건들과 동등한 자격을 지닌다. '깊은 사유'가 등장했다. 이렇게 묻고 싶을 거다. 지루하냐고.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 앉은자리에서 많게는 3시간 정도 투자하면 너끈히 읽어낼 수 있는 소설이다. 재미있기까지 하다. 뒤에 실린 역자 해설까지 눈에 집어넣은 후에는 아카데믹한 기분마저 느끼게 된다.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그리고 이 서평의 완결성을 위해 <로라..>의 마지막 문장을 이쯤에서 말해둔다. '저기 좀 보세요, 따님이 오고 있네요.' 도대체 화자와 로라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