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하의 만화토피아 - 마니아가 추천하는 일본 망가 베스트 50
오은하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격세지감이라고 해야하나? 뭐 그렇게 세상을 오래 살진 않았지만, 때로는 나도 격세지감이란 감정에 접어드는 때가 있다. 불확실하긴 해도 아마 우리가 대본소를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해서 하는 말이다. 곧 도서대여점이란 이름으로 변신해버렸으니까.

내가 만화라는 걸 처음 접했던 것은 초등학교 때였는데, 소년00일보 등에 실리는 명랑만화가 그것이었다. 장르의 이름이 말해주듯 그것은 매우 '명랑'한 것이었다. 3등신(때로는 가슴 아프게 2등신 정도로 짧아지기까지 하는) 인물들이 갖가지 비틀어진 상황 속에 놓이고, 그런 상황 때문에 우스꽝스런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는 만화. 재미는 덤이 아닌 기본인 그런 만화. 당시엔 다분히 내용 중심으로 봤지만, 작가마다 그림체가 다르다는 걸 곧 깨닫게 되었다.

나름대로 취향도 생겼다. 길창덕보다는 윤준환이 내게 맞는다는 뭐 그런 거. 김동화의 별이 많이 들어간, 그렁그렁한 눈을 가진 소녀가 나오는 만화를 보게 된 건 그 후였는데, 소년중앙으로 기억한다. 3등신 만화가 이 세상 만화의 전부인 줄 믿고 있던 내게 그것은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다. 찰랑거리는 머리와 기다란 팔다리, 모호한 이야기를 지닌 소녀-이 작품의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내 평생의 오점으로 남으리라-는 詩가 네루다에게 온 것처럼 어느 날 내게로 왔고, 만화라는 장르는 그렇게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만다.

이 책은 이렇게 나처럼 서서히, 시나브로 만화를 알게 되고 깊이(?) 있게 이해하기까지 이른 독자들에게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다. 이렇게 알고 있는 건 내가 과문한 탓인지도 모르나, 내가 뭐에 홀린 듯 만화를 읽어대던 시절(중1때부터였는데)에 만화를 본격적인 담론의 소재로 사용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하던 일이었다. 하물며 이런 책이 나온다는 건 더더욱... 나는 이 책을 붙들고 이렇게 두 번 격세지감에 빠진다.

저자는 나보다 무척 연상인데도 만화란 대상에 대해 나와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물론 나는 '테리우스·알버트 아저씨 논쟁'에 참여는 못해봤고 저자와 달리 만화를 숨어서 읽었단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점차적으로 만화를 넓게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래 여학생들처럼 '순정'만을 편애하다가 탈장르를 선언하였고, 내용이나 그림에만 집중하던 눈이 어느덧 페이지 전체를 보게되면서 작가마다의 연출을 읽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바스트 샷이라든가 심리 컷의 삽입이라든가 하는 용어를 써가며 '이 장면엔 이 컷이 안 어울려'하며 제법 아는 척을 하게 된 것까지(아, 물론 '아는 척'은 내 경우에만 적용되는 말이며, 책에는 저자의 발전 단계를 위와 같은 내용으로 명시하진 않았음을 밝혀둔다).

혹자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런 식으로 신경 써가며 만화를 읽는 행위가 도리어 과거 단순한 즐거움만을 취하던 시절의 만화 읽는 기쁨을 앗아간 것은 아니냐는. 그 말엔 이렇게 반박하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것이 피카소의 작품이 됐든 에코의 소설이 됐든 간에 내가 읽어낼 수 있는 폭이 넓어지면 질수록 대상을 향유하는 기쁨도 커진다고. 당연히 만화도 마찬가지라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이겠다. 그런 감식안을 지닌 독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진정 멋진 만화가 탄생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으로 보고 양손을 들어 환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역사는 진보하는 게 아니라 순환하는 것일 뿐이라 했던가? 그러나 만화의 역사는 분명 진보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행복한 격세지감 속에서 다시금 만화 읽는 황홀감에 빠져 있다. 이 책은 이런 나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을 위한 축전 서곡쯤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내 찬사가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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