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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평점 :
품절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단체로 식사를 하거나 뭔가를 주문해야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설이게 된다. 그러면서 서로들 결정 장애가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한다. 사실 결정을 잘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 때문에 미루는 경우가 더 많은데 말이다.
저자는 혐오표현에 관한 토론회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결정 장애를 말하고 나서 다른 참석자로부터 지적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그게 왜 문제인지도 몰라, 이리저리 알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유를 알게 되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차별은 거의 언제나 그렇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차별 덕분에 이익을 보는 사람이 나서서 차별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차별은 분명 양쪽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모두에게 부정의함에도, 희한하게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만의 일처럼 이야기된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산술적으로 생각해도 내가 차별을 당할 때가 있다면, 할 때도 있는 게 아닐까?(7쪽)
나 또한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 게 아닌가 걱정하기도 한다. 아예 상처를 입히고서도 전혀 모를 때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게다가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 것보다는 상처를 받은 것을 더 오래 마음에 둔다.
차별도 마찬가지다. 자신은 절대로 남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으리라 생각된다. 이 책에서는 보이는 차별뿐만 아니라, 잘 보이지 않고 자신도 모른 채 하고 있는 차별까지 조목조목 따져가며 속속들이 파헤친다. 어떤 면에서는 알고 하는 차별보다 무의식적으로 자신도 잘 알지 못하고 하는 차별이 더 고치기 어려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발견할 수 있다.(29쪽)
특권을 알아차리는 확실한 계기는 그 특권이 흔들리는 경험을 할 때이다. 더 이상 주류가 아닌 상황이 될 때, 그래서 전과 달리 불편해질 때, 지금까지 누린 특권을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32쪽)
우리는 이렇게 대부분 일상생활을 하면서 아무런 불편이 없을 때에는 차별인지 조차도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다. 그러다가 자신이 막상 억울한 상황에 처해지면, 그때서야 차별을 절감하게 된다.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고정관념을 갖기도, 다른 집단에 적대감을 갖기도 너무 쉽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60쪽)
평생 차별만 받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나도 모르게 차별의 말들을 하며 살아온 것에 대해 절로 반성하게 된다.
구조적 차별은 이렇게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미 차별이 사회적으로 만연하고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어서 충분히 예측 가능할 때, 누군가 의도하지 않아도 각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차별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생긴다. 차별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불이익을 얻는 사람 역시 질서정연하게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불평등한 구조의 일부가 되어간다.(74쪽)
우리의 생각이 시야에 갇힌다. 억압받는 사람은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구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불행이 일시적이거나 우연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차별과 싸우기보다 “어쩔 수 없다”며 감수한다. 유리한 지위에 있다면 억압을 느낄 기회가 더 적고 시야는 더 제한된다. 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민하다” “불평이 많다” “특권을 누리려고 한다”며 상대에게 비난을 돌리곤 한다.(79쪽)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온 것들, 특히 노력하면 모든 상황이 달라질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달음박질쳐도 출발점이 다른 사람들이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설움들……. 그렇게 우리들은 한 가지씩 포기하며 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그렇게 모두들 포기하고 살아간다면 세상은 절대 좋아지지 않는다. 저절로 좋아지는 세상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앞장서서 외치고 희생하면서 조금씩, 그것도 아주 조금씩 좋아질 뿐이다. 국가나 언론이 나서면 훨씬 빠르겠지만, 그들을 움직이려면 결국 개인이 나설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탄생하기까지의 배경을 알아보고, 차별이 어떻게 해서 보이지 않고 우리들 눈에 도리어 공정하게까지 느껴지게 되는지 낱낱이 지적한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차별에 대응해야 하며, 반드시 차별금지법이 재정되어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차별에 대응하는 방법까지 일러 준다.
예전에 단체원들끼리 회식하는 자리에서 한 회원이 “술도 못 마시는데 운전까지 못하면 그건 최악이다.”라고 했다. 그 회식 자리에서 술도 못 마시고, 운전도 못하는 이는 ‘나’ 한 사람뿐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때 일이 떠올랐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차별이 보이나요? 라고…….
우리는 장애인을 비롯해 시대마다 불화하는 존재들을 차별했던 ‘불구’라는 낙인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불구의 존재들이 살아야 했던 폭력적인 운명을 거부하며 이제 ‘불구’의 뜻을 다시 만들려고 합니다. 사회와 국가는 온전하지 못한 기능, 스스로 구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하지만, 바로 거기에서 불구의 정치가 피어납니다. 우리는 이러한 처지에 있는 소수자들과 함께 정상성과 성장을 의심하고 의존과 연대의 의미를 다시 쓰고자 합니다.(95쪽)
왜 어떤 집단은 특별히 잘못이 없어도 거부되는데, 어떤 집단은 개별적으로만 문제 삼고 집단으로는 문제 삼지 않을까?(123쪽)
한 가지 교훈은 분명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도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상처를 주는 잔인한 의미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133쪽)
이상하게도 퀴어 문화축제는 좀 다르다. 축제를 방해하는 사람보다도, 축제를 여는 사람들에게 비난이 향한다.(136쪽)
사실 누구나 어디서든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내가 있는 자리와 나의 위치에 따라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을 수없이 경험한다.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건 권력이다.(142쪽)
이성애자가 하는 “동성애자가 싫다”는 말은 동성애자가 “이성애자가 싫다”고 하는 말과 같지 않다. 마찬가지로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싫다”는 말은 장애인이 “비장애인이 싫다”는 말과 같지 않으며, 국민이 하는 “난민이 싫다”는 말은 난민이 하는 “국민이 싫다”는 말과 같지 않다. 말자체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주체 사이의 권력관계가 그 말의 의미와 결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143쪽)
마이클 왈저는 영토 안에 권리가 적거나 없는 계층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민주주의에 반하는 “폭정”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기본 전제로 그 안의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관계를 가지고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151쪽)
어느 정도의 지위에 올라가야 정말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아 만족스러운 상태가 될지도 알 수 없다. 결국 일정 지위에 올라간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인정받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려는 동기를 가지며, 이는 매우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다. 학식과 경험이 많으며 사회 변화를 이끌어가도록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저항 세력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187쪽)
존 스튜어트 밀은 1859년에 발표한 『자유론』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 삶이 획일적인 하나의 형태로 거의 굳어진 뒤에야 그것을 뒤집으려 하면, 그때는 불경이니 비도덕적이니, 심지어 자연에 반하는 괴물과도 같다는 등 온갖 비난과 공격을 감수해야 한다. 사람들은 잠시만 다양성과 벽을 쌓고 살아도 순식간에 그 중요성을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188쪽)
차별과 억압이 무의식적이고 비의도적인 습관, 농담, 감정, 용어 사용, 고정관념 등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며, 아이리스 영의 말처럼, 무작정 사람들을 비난하기 어렵다.(189쪽)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말만으로 저절로 모든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다.(193쪽)
우리는 차별을 없애자는 기본원칙을 채택하기에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일상에서 차별이 사라지도록 하려면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오래 전에 법으로 성희롱을 금지했지만 무엇이 성희롱인지 알고 그런 행동을 하지 않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여전히 개선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성희롱을 하지 않겠다는 공동의 결단을 내렸고, 그 방향으로 사회를 진보시키고 있다.(20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