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시작되는 곳 -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윤슬 지음 / 담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윤슬 에세이

(이제 당신의 이야기가 시작된 곳을 찾아 나설 차례입니다)




염색물에 천을 담그면 고운 빛깔이 천에 묻어나는 것처럼, 연둣빛에 노란 나비가 내 손에 그대로 묻어날 것 같다. 그러면서 그 고운 빛깔이 어쩐지 내게 희망을 전해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폈다.

 

한 걸음씩 걷다보면, 그 한 걸음이 모여 어느 새 더 큰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기록 디자이너이며 20년 간 한결같이 글을 쓰며 살아왔다는 저자는, 우리들에게 저 멀리까지가 아니고, 우선은 저기까지만 가보자고 손을 잡는다. 지난 날, 마구잡이로 욕심내며 많이 읽고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했던 책읽기도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소유할 방법을 배워 삶의 의미를 밝히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본질적으로 위험한 게 실은 정상입니다. 감정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변덕을 부려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성에 따라 움직일 것 같지만, 실은 절대적으로 감정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잘해 오던 일도 순간적으로 속상한 감정이 밀려오면 괜스레 변덕을 부리고, 억울하다는 생각과 함께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회의감마저 듭니다.(35)

 

같은 일도 그날의 감정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해 본 경험일 것이다. 저자는 뭔가를 함에 있어서 기분이 좋은 날만 하지 말고, 그렇지 않은 날도 꾸준히 해 나가기를 당부한다. 기분과 상관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삶을 살아가다보면, 어느 새 반짝거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됨을 이야기 한다.

 

이렇게 1부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조금씩 좋아진 삶의 과정을 소박하게 기록했다. 그런데 읽는 이에게는 어쩐지 마음에 큰 위로가 된다. 그리고 2부에서는 글쓰기에 진심인 글쟁이로서의 잔잔한 삶의 여정을 이야기 한다. 우연히 발견한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꾸준히 쓰면서 책을 출판할 기회를 얻게 되고, 이 책이야기가 시작되는 곳도 지난 일 년간 블로그와 브런치에 쓴 글을 묶어서 출판하게 되어서인지, 책을 읽다보면 글쓰기에 관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2년 정도 흘렀을까. 어느 날 출판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에세이 책 출간하지 않으실래요?”(121)

 

모든 곳에 이야기가 있고, 모든 이야기에 삶이 있다는 윤슬 작가는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하고, 내 삶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다른 누군가를 위한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니까.

 

문득, 내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 어디쯤인지? 궁금해진다. 너무 오래, 너무 많이 잊고 살아서 얼마나 기억으로 되살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 거린다. 이제 내 이야기가 시작된 곳을 찾아 나설 때이다.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청색지시선 7
이어진 지음 / 청색종이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하고 아름다운 시인의 시들이 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청색지시선 7
이어진 지음 / 청색종이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이어진 시집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3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사업 선정작


어젯밤 늦게 경주에 가서, 조문을 하고 언니네 새로 지은 집에 가서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했다. 올라올 때는 오락가락하던 비가 이젠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형부 장례식장을 다녀 온 후, 오후 출근을 하기 위해 급히 서둘러 나가는데 우편함에 책 한 권이 봉투에 젖은 채 얌전히 꽂혀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이어진 시인의 시집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였다. 혹시 책이 젖었을까 걱정되어, 얼른 봉투를 열었는데 책은 젖어 있지 않았다. 다행이다.

 

몇 년 전에 오십견을 앓고 고생한 적이 있어, 가능하면 들고 다니는 가방의 무게를 줄이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이 책만은 집에 두고 가고 싶지 않아, 그대로 가방에 넣은 채 지하철을 탔다.

 

노란 벽지를 연상하게 하는 책 표지와 유난히 시선을 머물게 하는 책 띠지에 있는 시인의 얼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조금 신비롭게 느껴진다.

 

이 책에 수록된 시들도 그렇다. 책 띠지 시인의 모습처럼 신비롭다. 알 듯 모를 듯…… 그러면서도 은근 마음을 끌어당기는…… 도깨비 같은……. 그래서인지 이상하게 자꾸 펼쳐 읽게 된다. 뭐지? 지금까지의 나는 주로 술술 읽히면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이해하기 쉬운 시를 좋아했는데…….

 

내 차가운 심장에 기름을 부어 줘 풍선을 타고 하늘을 오를 수 있게 노래는 날아가고 꽃은 피지 않는다(13_‘수선화중에서)

 

거울을 들여다본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

한 사람의 목소리가 거울 속을 돌아다닌다

나는 그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너는 내가 점점 사과를 닮아 간다고 한다

사과가 없어진 자리에 내가 있었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 토마토가 있었다(35_‘사과와 토마토를 위한 노래중에서)

 

날아가는 허공 위로 내가 슬며시 스며든다는 생각 수평으로 흩날리다가 드디어 저기 지나가는 사람의 뒤통수를 쓰다듬는다는 생각 조용한 나의 생각이 하늘의 귓가에 젖어서 내가 하염없이 행복해진다는 생각 비스듬한 내가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다는 생각 당신이 나를 믿는데도 왜 나는 자꾸 믿음을 수집하는가 질문을 던진다는 생각 기쁨이 사라진 뒤부터 내 안에는 검은 태양이 자라고 그 말들이 심장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 그렇게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자세 안에서만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52~53_‘심장의 여행중에서)

 

구름의 한쪽을 바라보면 비의 방향이 찾아오고

살기 싫구나라고 말하는 입술 위에 슬픔이 스며든다

둥근 어항에 갇혔던 엄마가 나를 품에 안고 함께 죽어 갔던 기억 그때 나의 죽음은 엄마의 슬픔과 닮은 것이었다(113_‘비를 추모하는 방식중에서)

 

나무 위에 집을 지어요 외롭지 않게 몇 가구를 지어야겠어요 한 집에는 태양을 들이고 한 집에는 바람을 들여 피곤하고 힘들 때 그 집에 누워 눈을 감으면 나무의 노래 들리고 잎사귀들의 속삭임도 들리고 당신이 내 귀에다 심어 놓은 조그만 풀씨들이 지들끼리 무어라 속삭이는 소리 들리는(130_‘가로수*’ 중에서/ *장욱진의 그림)

 

 

사탕 주세요 사탕 주세요 아무도 말하지 않는데 나는 사탕을 만들고 있다 나를 그 안으로 집어넣으려 애쓰고 있다 사탕의 실체는 없고 사탕의 허구만 남아서 나의 사탕 속에서 밀애를 나눈다(131_‘사탕중에서)

 

 

사과가 없어진 자리에 내가 있고, 내가 사라진 자리에 토마토가 있고……. 둥근 어항에 갇혀 살기 싫다며 나를 품에 안고 죽어가던 엄마의 슬픔을 잊을 수 없어 결국 닮아 가는…….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사탕을 만들며, 집을 지을 때는 외롭지 않게 몇 가구를 지어 태양도 들이고 바람도 들이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절절하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이 책에 있는 시들은 읽는 이의 마음에 따라 많이 다르게 다가올 듯하다. 작년 이맘때쯤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 무슨 일인지 올해는 형부(다른 언니의 남편임)가 또 유명을 달리했다. 여태 고생하다가 이제 형편이 피어, 자식은 지들이 알아서 살게하고 둘이 오순도순 함께 행복하게 살다가 가자고 멋진 집을 지었다. 집 옆에는 노후가 덜 외롭게 가게도 하나 짓고 있고……. 새 집에 어울리게 가전제품도 새 것으로 꽉꽉 채우고, 이제 이사만 남은 상황에 형부가 유명을 달리했다. 호텔 같은 집이 유령처럼 남았다. 그 모습을 대하고 집에 돌아와서 마주하는 시인의 시였으니, 내게는 당연히 슬프게 다가올 수밖에……. 한참이 지나고 다시 읽으면, 슬픔 속에 또 다른 희망이 보일 수도 있겠다.

 

 

어제 책을 읽었는데

책 속에 내가 잠들어 있었다.

오늘 내가 현관문을 열고 나갔는데

그곳이 이웃 나라 바닷가였다

나를 책에서 봤다며 어떤 사람이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고 그곳을 그와 어깨를 부딪치며 걸었다

나는 원래 여자였는데

오늘은 남자의 음성이 내 입으로 흘러 나왔다

나는 오늘 바닷물이 되고 싶은데

그는 나더러 구름이라고 말한다.

나는 뛰어가는 아이스크림이고 싶은데

그는 나더러 모자라고 말한다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자

그는 시간을 돌려 과거로 가보자고 말한다

그는 버스를 탔고

나는 기차를 탔고

우리는 빌딩 위에서 만나 각자 자신이 가져온 커피를 마셨고

내가 그를 떠올리자 그는 내가 좋다고 말한다

아이가 빌딩 위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다

그가 공을 받아서 아이에게 돌려주고

아이가 나에게 공을 던지고

공놀이를 하다가 우리는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가방이 있었다

가방 안에는 공이 있었고

투명한 공 안에는 그가 아이를 안고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와 책을 같이 보았는데 그래서 아이가 태어났다고

그리고 그 아이가 나의 아들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내가 없으면 못 살 거 같다고 말했고

나는 그를 사랑한다고 말해 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그가 차려 주는 밥을 맛나게 먹었다

아이는 로고 조립을 잘해서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그는 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당신은 도깨비인가?

당신은 도깨비인가?

가방이 가만히 소파 위에 있었다

소파가 물끄러미 가방을 바라보고 있었다(21~23_표제작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전문)

 

동화 같기도 하고 판타지 소설 같기도……. 그러면서도 술술 읽히며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로 여행을 떠나보기를 권한다. 독특한 시인의 시를 읽으며 여행하는 동안, 오기 싫은 듯 뒷걸음질치고 있는 봄이 성큼 다가오리라 생각된다.


 

 

*참고: 유튜부 채널: 이어진의 문학의 향기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태그#한국시#이상하고아름다운도깨비나라#시집#이어진#청색종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찻잔 1
함정호 지음 / 북랩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무 슬프면서 가슴 따뜻한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찻잔 1
함정호 지음 / 북랩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지막 찻잔 1 / 함정호

(마지막 찻잔에 담은 위로와 공감)




 

책을 받았을 때, 왠지 책 앞표지가 음산하게 느껴졌다. 담담한 표정들이 슬픔으로 와 닿는다. 그러면서 그 슬픔 속에 한 줄기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뒤표지는 조금 다르게 느겨졌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따뜻한 찻잔이 우선 눈에 들어왔고, 희망이라는 낱말이 마음 깊숙히 다가온다.


 



책은 1장에서 시작해 모두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차만 봐도 대략 아픈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생의 마지막 문을 열기 전에 따뜻한 차 한 잔을 권하며 차다찬 마음을 데워 주는 이가 있다. 본인이 왜 거기에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것 같다. 그저 죽음의 문을 통과하기 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들을 대상으로 정성스레 차 한 잔을 대접하고 그들의 마음을 다독여 준다.

 

삶과 죽음의 경계. 그곳에 내가 존재한다.

내가 이곳에 앉아 누구를 기다릴까?’

나는 왜 이곳에 있고 존재하는 걸까?’

창문 밖으로 보이는 맑은 시냇물과

푸른 하늘을 벗 삼아 날아다니는 새들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10평 정도 되는 방 안에서 차를 끓인다.

누군가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6)

 

자살한 이유는 다양하다. 우리 사회에 자주 등장하는 일들이라 전혀 새롭지는 않다. 다만, 그들의 마지막 가는 길에 누군가 마음을 다독여주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한다는 게 마음 따뜻하게 다가온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 그런데 그마저도 앞당겨 떠나야 했던 이들의 마음을 당사자 말고 과연 누가 알 수 있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다친 마음들이 조금이나마 위로 받고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거기에 더해, 지금 소설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 욕심이 생긴다. 책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것처럼, 조금만 일찍 자신을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누군가를 만나,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더라면? 너무너무 안타깝다.

 

이 책을 읽는 내내, 10여 년 전에 혼자 외로움에 떨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오빠가 떠올라서 힘이 들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 때에는 나도 삶이 너무 힘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힘듦을 조금만 내려 놓고, 오빠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나 따뜻한 손을 내밀었다면……. 아니, 이 소설에서처럼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영화나 드라마처럼 되돌릴 수 없는 일들로 인해, 행복한 오늘도 나는 문득문득 가슴이 시리다. 아이들의 삶과 연관된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이 보다 행복하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향하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우리 사회 곳곳에 희망으로 전달 되기를 소망해 본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