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줬으면 그만이지 -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
김주완 지음 / 피플파워 / 2023년 1월
평점 :
줬으면 그만이지/ 김주완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
“똥은 쌓아 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341쪽)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2부작으로 방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를 시청하게 되었다. 다른 제목도 많은데 굳이 “어른 김장하”일까, 궁금하기도 해서 보게 되었는데, 세상에 아직도 저런 분이 살고 계신가? 싶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욕심에 다시 책을 찾아서 읽었다.
기자 출신인 저자가 ‘김장하’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1991년 그가 설립해 이사장으로 있는 명신고등학교(당시 땅과 건물만 시세로 100억 원대에 달하는)를 국가에 헌납한다는 뉴스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자신이 한 일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내가 배우지 못했던 것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 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105쪽)
배운 게 없으니 책이라도 읽을 수밖에 없다는 김장하 어른은 한약 업을 해서 번 돈으로, 자신은 평생을 최소한의 돈으로 청렴결백(자동차 없이 평생을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살면서,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국가에 헌납했다. “1. 내 친척은 한 사람도 쓰지 않겠다. 2. 돈을 받고 한 사람도 채용하지 않겠다. 3. 권력에 굽히지 않겠다.”는 명신고등학교 설립자인 김장하의 교사 채용 원칙 세 가지만 봐도 그의 뜻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이 된다. 거기에 이사장실도 필요 없다며 한 달 만에 양호실로 바꿨다.
학생들을 지원하면서도 성적보다는 형편을 먼저 고려했으며, 일회성 지원이 아닌 장기지원을 하고, 생활비까지 지원하면서도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아래 환경, 문화, 언론, 교육에도 두루 참여하였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기정사실처럼 되어있을 당시에 ‘여성도 인간이다’ 에서 출발해 돈이 없어 법률 자문을 받을 길 없는 여성들을 위한 무료상담이 가능한 가정법률상담소 ‘한울타리’를 지원했고, 엄동설한 추운겨울에 자녀들과 갈 곳 없는 여성들을 위한 쉼터 ‘내일을 여는 집’을 설립해 6개월 동안 숙식하면서 안정을 찾고 자립할 수 있게 했다.
명신고등학교 장학재단인 남성학숙장학회를 통해서 지원받은 학생들은 그나마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남성문화재단이나 특히 알음알음 어려운 학생들에게 공부할 수 있게 지원한 것들은 제대로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인원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이 지원 받았다고 나서는 학생도 있고, 돈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 사람도 있는데, 당사자(김장하)에게 물어보면, 자신은 기억에 없다고 하니 정확한 숫자를 알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혜택을 받은 학생들이 자연스레 연결되어 모임을 하려고 했는데, 장학생들 중에는 잘 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 걱정되어, 그들끼리의 모임도 말렸다고 한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생각해서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숨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어려운 이들에게 그가 뻗친 손길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척척 돈을 안기지는 않았다. 그에게도 원칙이 있어서 찾아갔다가 거부당한 이들도 있기는 했는데, 그 중 한 예로 정치인들이 찾아가면 절대 후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평생을 ‘앞에 나서지 말고 항상 제 역할을 하는 그런 사람이 되라’며, 스승 역할을 한 할아버지 뜻에 따라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남성당을 상호로 쓰고 남성(南星)을 아호로 쓰며 결코 그 뜻에 어긋나지 않게 살았다. 그래도 가끔 유혹이 있지 않았냐는 질문에 “사람은 그릇이 있거든 좀 덜어내야 또 채울 수 있지.(322쪽)”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버렸으면 미련 없이 버려야지. 줬으면 그만이지.(281쪽) 주기만 하고 기대하지도 않고 간섭하지도 않을 수 있을까? 나눔도 그럴진대, 아이들 교육에도 이런 마음으로 임한다면 많은 아이들이 훨씬 더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찾아 훨훨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늘 구석자리를 차지하던 그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형평 운동이다. 신분 차별을 없애자는 인권운동에서 새로운 차별을 철폐하자는 즉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 남녀의 차별, 지역 간의 차별, 빈부의 차별 등 실제로 장애인의 인식 개선을 위하여 노력한 결과 많은 성과도 거두었다. 고 하니, 이 시대의 깬 어른임이 분명하다. 선순환이 되면 공동체가 아름다워진다.(문형배_136쪽)고 한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본받아, 사회 곳곳에 유용한 바이러스가 넘쳐나 좋은 공동체를 만들어 널리널리 퍼져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한번 선발되면 짧게는 3~4년 길게는 6~7년 동안 지원 받았기 때문이다. 드문 케이스지만 대학 졸업 후 추가로 1년 사법 고시 공부 과정을 지원 받은 사람도 있었다.(116쪽)
지금까지 취재한 바를 바탕으로 김장하 장학금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장학금 수여식 또는 전달식을 하지 않는다. 당연히 사진도 찍지 않는다.
② 성적보다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우선 선발한다.
③ 가급적 1회성이 아니라 졸업할 때까지 전액 지원한다.
④ 등록금 뿐 아니라 생활비 등 각종 경비까지 지원한다.
⑤ 드물지만 재수생에게 입시학원비와 하숙비까지 지원한다.
⑥ 살 곳이 마땅찮은 아이는 아예 자신의 집에 들여 함께 살면서 자식처럼 키운다.
⑦ 그런 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고 누가 물어봐도 말해주지 않는다.(117쪽)
“내가 그때만 해도 한약방으로 돈도 많이 벌어 학교에 큰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나중에 나이들어 그럴 형편이 못되면 괜히 사사로운 욕심이 생길까 두려웠던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나도 못난 사학 이사장이 되어 선생님들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려 들 거고, 그렇게 되면 처음 내가 학교를 세우려고 했던 첫마음을 잃게 될까봐 두려웠던 거요. 교육이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어요. 사업을 하려면 다른 일로 해야지, 학교를 갖고 사업하는 마음으로 하면 큰 일 나는겁니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그냥 국가가 맡아 달라고 내어 놓은 겁니다.(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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