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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 제10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허남설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7월
평점 :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 허남설

우리 가족은 20여 전에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 이사와 총 4층 건물 중, 18평 다세대주택 3층 한 세대에 살고 있다. 뒤쪽 산이 공원이라 오늘 같은 휴일에 창을 모두 열고 거실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노라면, 사방에서 새소리와 우렁찬 매미소리가 끊임없이 들려 내 마음을 위로한다. 물론 계절에 따라 달라지지만, 도시에서 이만큼 자연을 가까이 하면서 살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지인들과 만나 우연히 아파트 얘기가 나오면 슬그머니 기가 죽는다. 내가 살고 있는 주택은 나중에 재건축이 어려워 가격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즉, 집이 살기 위한 보금자리일 때는 문제가 전혀 없는데, 부의 수단으로 따지게 되면 가난이 증명 된다고나 할까? 그래도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하면 이 곳을 쉽게 떠날 수가 없다.
낯술에 얼큰하게 취한 그가 말했습니다. “거기 말이에요, 제가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거기 재개발하고 원주민 재정착한 사람이 10퍼센트도 안돼요. 아,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개발했다면 달랐을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합니다. 아직도.”(5쪽)
재개발과 재건축 명목으로 건물은 자꾸 높아만 가고, 원주민들은 돈이 없어 더 싼 곳을 찾아 떠날 수 밖에 없는 현실……. 이 책의 저자는 건축학을 전공하고 건축 설계사 사무소에서 일하다가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궁금해, 신문사에 입사한 후 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잘 생기고 예쁜 것에 길들여져 있는 현실에서, 그는 오히려 낡고, 긁히고, 부서지고, 허물어질 것 같은 못생긴 서울의 달동네에 관심을 갖고 길을 재촉한다.
백사마을의 골목을 걷다보면 금세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길을 잃게 됩니다. 어디를 가도 똑같이 칙칙한 질감의 집들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경사까지 겹치다보니 마치 미로에 갇힌 듯한 느낌마저 받습니다. 그 정도로 이 마을의 골목은 닥치는 대로 냈는지 질서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어지러이 얽혀 있습니다.(22쪽)
그런데 저자는 이렇게 제멋대로이며 도무지 볼품이라고는 없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는 ‘백사마을’을 걸으며, 그 골목길 곳곳에서 소소한 즐거움은 물론이고, 무채색 도화지에 초록빛 물감이 점점이 찍혀가는 싱그러움들과도 맞닦들이게 된다.
이 백사마을이 곧 사라집니다. 마을의 땅을 가진 사람들은 1990년대 초부터 마을을 개발하길 바랐고, 마침내 2021년 2월 노원구청이 사업시행계획을 인가했습니다. 조만간 사라질 운명에 처한 마을에서 주민들은 하나둘씩 떠났고, 새로 들어오는 발길도 뚝 끊기면서 마을은 이제 인기척을 거의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텅텅 비었습니다.(23쪽)
백사마을은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땅을 7:3으로 갈라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재개발 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서울시가 이 사업을 사실상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방향을 틀어버린다. 주택과 고층 아파트를 짓기로 했던 것을 주민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3~4층 주택보다는 고층아파트를 지어 임대주택 물량을 더 늘린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의 옛 정서를 되살리고 원주민들의 삶을 보전하려는 취지인 줄 알았는데, 계속 읽다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가는 게 무엇을 위한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기왕 이사하게 되었으면 방세가 좀 더 싼 서울 외곽 동네를 알아보지, 왜 행당동을 떠나지 않느냐는 게 제 물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인의 대답은 너무 간명해 오히려 저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노인은 폐지를 주워서 남편의 생계까지 책임지고 있는데, 오랫동안 폐지를 거래했던 고물상이 그 동네에 있다는 것, 그것이 노인이 행당동 근방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였습니다.(103~104쪽)
예전에 서울 쪽방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왜 저사람들은 돈이 없으면서 굳이 서울을 떠나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건 그들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는 나의 무지에서 비롯되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다른 곳에 가서는 도저히 그만큼도 살 수 없는 그들만의 이유가 분명했다.
가난하고 아프게 살아온 탓인지 자연스레, 힘들고 외로운 이들에게 관심이 많이 간다. 그러니 제목만 보고도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백사마을’에서 시작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서울의 외진 달동네 사람들의 삶과 애환, 그 속에서 재개발이나 도시재생 사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잘 담겨 있다.
오래 전부터 지방분권과 주민자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진정한 지방분권이 이루어지고, 형식적이 아닌 그 마을의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주민에 의한 직접적인 주민자치 시대가 열리기 위해서는, 우리들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꼭 절실하다. 그래야 재개발이나 도시재생 사업도 주민의 삶을 위한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가리라 생각된다. 그 시점에 못생긴 곳을 주목한 저자의 발자취가 “브런치 대상 수상작”으로 뽑혀 단행본으로 나오게 되어, 미리 읽고 강력 추천해 본다.
밝음이 있으면 당연히 어둠도 있다. 우리의 삶은 누구할 것 없이 모두 저마다 이유가 있고 소중하다.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많은 이들이 화려한 곳에만 현혹되지 말고, ‘음지’에도 조금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보기에 썩 만족스럽지 않은 못생긴 도시가 이런 다양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모든 논의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보존할 대상은 천막이나 지붕 같은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삶입니다. 그 삶을 보존하는 일이 슬레이트 지붕이나 타이어 올린 천막을 지키는 일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공공의 책무입니다. 어쩌면 우리 도시에는 일정한 못생김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때는 못생긴 도시가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집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225~226쪽)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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