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두런두런
신평 지음 / 새빛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시골살이 두런두런/신평

(신평변호사의 30년 시골살이)

 


  

추석명절에 시부모님 차례를 지내고, 명절 다음날 경주 언니네를 방문했는데 책 배송 알림이 왔다. 빨리 읽고 싶어 마음이 두근거렸으나 어쩔 수없이 참았다가, 23일의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펼친 책에는 그동안 경주에 갈 때마다 들렀던 곳들이 시와 산문으로 변신하여 나를 맞이했다.

 

·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을 담은 시에 산문을 곁들인 시골살이의 정경은 누가 읽어도 정겹기 그지없다. 저자가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자세히는 알지 못하나, 시와 산문을 읽다보면 아련하게나마 느낌이 온다. 그러고보니 어쩐지 신평 변호사가 그다지 낯설지 않다.

 

제 인생은 그렇게 굴곡이 많고 항상 심하게 울렁거렸습니다. 무엇하나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채 토막난 인생이었습니다. 한없이 저 밑바닥까지 추락하여 보아서는 안 될, 고 박완서 선생이 말한 세상의 똥구멍까지 보아버렸습니다.(작가의 말_9)

 

30여 년 전 판사직에서 내쫓김을 당하는 호된 벼락을 맞고 심한 우울증에 걸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어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 손을 잡고 경주에 터를 잡았던 저자는 그 후에도 크고 작은 어려움에 처한다. 그렇게 하여 2018년 이후에는 경주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너와 나]

 

어느 날 우연히

네 눈동자 안에 스민

달의 분화구보다 더 큰 외로움을 보았어

나에게 전해지며

동심원으로 자꾸 퍼져 나갔는데

나 역시 외로웠으니

외로움과 외로움이 만나면

따스한 물이 솟아나잖아

그 물에 잠기면

침묵의 차가운 힘 이길 수 있지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볼 수도 있고

너와 내가 그렇게 해서

희망의 연못 하나씩 만들어 가면

위안은 잔잔한 구름 되어

멀리 수평선에까지 닿을 거야(14)

 

[살아있다는 것]

 

바람결 가르며

풀잎 갈린 땅 밟는다

한껏 올라간 버드나무 가지 따라

하늘을 바라본다

비로소 나는

심장이 두근거린다. 살아있다.

앞을 자꾸 가리는 흩어진 일상

생의 기쁨이 일상의 파편 치우고 열어놓은

희망의 작은 오솔길

오늘도 나는 그 길 잃지 않으려

숱한 생명과 함께

땅 위에 고개 들어

깊은 하늘 속 잠기노라(26)

 

외로운 너와 내가함께 같은 곳을 향하며 희망을 일구어 가는 모습이, 눈 앞에 선명하게 떠 올라 처연하면서도 희망을 본다. 그러니 앞을 자꾸 가리는 흩어진 일상 속에서도, 심장이 두근거리며 살았음을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사는 게 별 건가]

 

이슬 젖은 풀잎

나를 보더니 웃어요

나도 따라 웃지요

사는 게 별 것 아니잖아요

기쁠 때 마음 편히 웃고

슬픈 일 있으면

고요한 밤하늘 향해

눈물 흘리는 것이지요

그럭저럭 사는 사이

한세상 후딱 가고

내 본래 모습

해진 문풍지처럼 남지요(108)

 

[사라짐의 의미]

 

한 포기 풀처럼 살았고

시든 풀 누렇게 되어

땅 속에 녹아내리듯

어느 날 나는 무()가 된다

한 세상 산 기쁨

오롯이 가슴에 넣고 가만히 뒤돌아볼 때

쌓은 인연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 것

단장(斷腸)의 아픔이어라

적요(寂寥)의 순간 몇 번 깜빡거리고

관계의 회로 일시에 끊어진다

남은 흔적

이내 바람 불어 사라지고

이 곳의 내가 아닌

저 곳의 내가 된다.(146)

 

어느 날, ()가 되어 해진 문풍지처럼 남아도 한세상 산 기쁨이 있어 오롯이 가슴에 넣을 수 있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적어진 탓인지(?,) 가만히 시를 낭독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위로가 된다.

 

[인간의 숙명]

 

갈망은 결핍에 비례해서 크는 것이 아니라

결핍이 메꾸어져 가도

갈망은 오히려 더 큰 괴물로 자라나니

그곳은 난공불락의 철옹성채를 이룬다

우리는 그 안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밑에서 올라오는 하수구의 썩은 냄새

그리고 생에 대한 절망의 한숨이 만드는

검붉은 구름 내려앉으니

아래 위에서 조여드는 무간지옥도

허무하고 슬픈 자화상 스스로 만들어 내어

그 인에 자신을 가두는 인간의 숙명

풀잎에 맺힌 한 방울 이슬 바르르 떤다(192)

 

[진짜 사람]

 

패자의 슬픔을 무시하는 사람은

천박한 껍데기다

패자가 흘리는 눈물에 고개 돌리는 사람은

처마 밑 누렇게 변한 고드름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낮은 곳으로 기꺼이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 모인 슬픔과 눈물의 웅덩이에

가만히 손 담그고 발 적시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사람이다.(212)

 

저자처럼 나도 여러 남매 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거기에다가 가난하던 부모님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일찍 돌아가셔서, 사랑은 커녕 최소한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니 굴곡진 삶 정도가 아니라, 당장 끼니가 걱정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려움이 많았다는 것을, 시와 산문을 읽으며 아련히 느끼면서도 나는 한없이 그가 부럽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쉽기만 한 인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안으로 파고 들어가면 모두 어렵다. 그런 면에서, 경주에 정착해 전원 생활을 할 수 있는 저자는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낮은 곳으로 기꺼이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고 노래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일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지나치는 것들]

 

누군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당신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

가슴을 짜내며 하고 있는지 모른다

무표정하게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

가장 간절한 말을 하기 위해

당신의 마음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일 수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를 떠나지 마라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무거워

입에 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당신의 오해와 냉담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돌아온다

그리하여 당신의 가슴을 찔러 후벼파면

비탄의 눈물에 젖으리라

강언덕에 피어오르는 봄 아지랑이

그 따듯한 마음으로 마주 보면

활짝 열리는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중한 것들

건성으로 지나쳐 버리는가(245)

 

나이가 꽉 찼는데 아직 취업을 못하고 있는 큰아이가 답답해 마음이 아플 말을 했다. 심한 말이 아닌데도 돌아서고 나면 후회가 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염려가 되고, 그러다보면 조심한다고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씩 하게 된다. 저자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를 떠나지 마라고 한다.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 시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조차도 쉽게 잃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시를 쓰는 이유]

 

늦가을 낮게 갈린 적막 안

가늘게 들여다보며

겨울 함박눈 소복이 내리는 밤

하얀 숨 내뿜으며

나는 시를 쓴다

그것은 내가 나를 대하는 온전한 방식

그리고 존중이다

시가 그리는 세상에서

나는 비로소 사람이 되어

걸리적거림 없는 자유를 얻었다

꽃 피는 봄

눈물겹게 다시 찾아오면

먼 아지랑이 하염없이 바라보리

하늘과 바람과 별,

구름과 나무와 맺은 우정에 취해

기쁨의 소리에 잠겨 또 시를 쓰리

그것은 나를 나로 있게 하는 시다(304)

 

에어컨을 절대 끌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가을장마 후에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가 물러가고 선선한 가을이 왔다. 그가 바라는 대로 그의 경험이 작은 빛으로 반짝이고, 연못에 튀는 빗방울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 큰 위로로 다가갈 것이라 생각된다. 시골살이 변호사의 생생한 경험이 밑바탕이 된 이 책시골살이 두런두런의 시와 산문을 읽으며, 시골정취를 마음껏 느껴보자. 거기에 더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시와 산문에 곁들인 어반스케치에 푹 빠져, 당장 경주에 가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