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오수영 지음 / 고어라운드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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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오수영

(우리의 일상은 사람보다 소중하다)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는 오수영 작가는 아무 계산 없이 글쓰기와 사랑에 빠져 일상의 작은 이야기를 쓰고 만든다고 한다. 그가 6년 전에 썼던 책을 이번에 다듬어서 개정판으로 냈다.

이 책에 처음 관심이 갔던 건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반백년을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주변인은 물론이고,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들의 마음속까지도 너무 모르고 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책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는 그다지 대단한 내용이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잔하게 기록한 그의 일상 속을 따라가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다 읽고나서도 다시 뒤적거리게 된다. 그만큼 우리들의 일상은 조금씩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언젠가 결혼할 인연을 만난다면 순수를 간직한 채 살고 싶다고 한다. 남들을 쫓다가 악필이 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남들따라 가다가 온전한 자신을 잃게 되는 일이 없게 되는 값진 교훈을 얻었음도 고백한다. 그러면서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에는 결코 늦은 시기란 없다고 단호하게 못 박는다.

또한 사람들은 사랑하다 이별하면 그것으로 끈이 완전히 끊어져 과거와 상관 없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될 줄 알지만, 그렇지 않고 우리의 여생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삶을 끌어 안는 인연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첫 만남에 외모를 가장 먼저 눈에 담을 수밖에 없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마음에도 고유한 생김새가 있어서 그것을 얼굴의 형태처럼 처음부터 알아볼 수 있다면 애초부터 외모를 비롯해 서로의 마음도 먼저 살펴보고, 다가가 마음을 투명하게 바라보며 막연한 불안과 경솔한 의심으로 감정을 소모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라며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이렇듯 이 책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기록해 놓지는 않았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진솔한 마음으로 물 흐르듯이 잔잔하게 썼다. 지친 마음을 위로 받기에 딱 알맞은 글들로 채워져 있는 그의 일상을 읽으며,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잠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자기만의 색깔을 찾는 것. 그것을 끈질기게 지켜나가는 것. 혹시나 이미 색깔을 잃었다면 그게 어떤 색이었는지 다시 한 번 떠올려 보는 것.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아가는 일에 결코 늦은 시기란 없다고 믿는다.(52쪽)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어선 걸까.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면 되는 걸까. 차라리 길을 잃은 김에 조금 쉬었다 가면 어떨까. 애초에 길눈이 밝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고민도 필요하지 않겠지만, 나 같은 길치에게는 이미 잃어버린 길 위에서 너무 조급하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 또한 하나의 해결책이 된다. 마음을 침착하게 가다듬고 길 잃은 이곳이 애초의 목적지였던 것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방황하다 보면 뜻밖의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도 하니까.(127쪽)

지금도 몸살을 앓는 걸 보면 무엇보다 몸 건강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도한 업무와 노동 강도를 소화하다 보면 어쩐지 한국의 직장 생활은 집단 이외 개인의 존재를 완전히 지우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여전히 삶의 풍랑에 휩쓸리고 있는데 이제 그만 생각을 멈추라 한다. 생각을 멈추고 맡은 업무에 집중하라 한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다. 이 감각을 잃으면 머지않아 내가 지워질 것을 안다. 집단에 부딪히고 깨지는 일이 많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최소한의 나를 지켜내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131쪽)

비로소 우리가 하나가 된다는 환희와, 어떻게 우리가 하나가 되냐는 환멸이 어지럽게 뒤섞이는 처연한 연극의 공간이 바로 회사다.(133쪽)

엄마에게, 연인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는 종종 나의 마음을 꺼내 보이지만, 어째 유독 아빠에게만큼은 그런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은 걸까.(145쪽)

우리의 마음속에는 한 해 동안 차마 비워내지 못한 생각이 밀린 빨래처럼 한가득 쌓여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때는 니의 김정과 마음인 줄 알았으나, 실은 대부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기준과 생각을 따라 하려던 부담과 걱정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지금 이 계절처럼 밀린 마음을 씻기에 적당한 시기도 없다는 것도. 한 해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누구나 조금씩은 지난날을 돌아보고, 그렇게 몇 벌의 마음 정도는 깨끗이 씻어 접어두기 마련이니까. 언젠가 다시 꺼내볼 수는 있겠지만, 우선은 정리할 수 밖에 없는 마음들을 우리는 간직하고 있다. 모든 계절을 감당하는 건 결국 각자의 몫이다.(159쪽)

생각과 감정이 날마다 포화를 이룹니다. 이렇게 소란한 내면을 과연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소란은 전염성이 짙어서 주변을 쉽게 감염시킵니다. 그러니 지체없이 저를 지나쳐도 좋습니다. 하지만 구태여 소란한 제 삶에 관여하겠다면, 저는 또다시 그것을 인연으로 여긴채 온 마음을 쏟을 수밖에요. 예민하고 복잡한 냉소주의자의 일상도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행복이 깃들 수 있을까요. 사람에 대한 미련과 희망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저는 줄곧 모든 걸 냉소로 일관하며 제 몫의 삶을 살겠습니다.(171쪽)

단조로운 강물도 여전히 흘러간다. 이따금 바람이 불면 조용히 파문이 일지만, 강물은 단지 묵묵히 감내할 뿐이다. 일상의 흐름 또한 대부분 잔잔하게 반복되는 날들이지만, 가끔 작은 변수를 우회하여 익숙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그리고 찰나의 여정으로부터 일상 속 숨겨진 삶의 묘미를 찾아내는 일, 그것이 지금 내가 당면한 가장 쉽고도 난해한 과제가 아닐까,(183쪽)

생각해보면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사람을 관찰하며 진단하는 건 우리의 일상이다. 다만 병원에서는 의학적 근거로 진단을 하지만 우리는 단지 짐작으로 사람을 판단한다.(194쪽)

책을 덮으며 '무엇이든 억지로 이어지고 있다면 그건 이미 미련일지 모른다' 는 그의 짧은 글이, 오늘을 살고 있는 내 삶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한다. 버려야 할 미련을 끌어 안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 같아서…… ' 관계의 소멸 '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게 좋을까,하고 잠시 고민해 본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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