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트니크가 만든 아이 오늘의 청소년 문학 40
장경선 지음 / 다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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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트니크가 만든 아이/장경선

(사라예보의 장미)



 

가까이서 깊이 들여다봐야 할 때가 있지. 그래야 진짜를 볼 수가 있거든

 

책을 받아 들자 금발의 소녀가 장미꽃 한 아름을 안고 있는 책 표지가 눈에 뛴다. 머리 주변으로 꽃잎들이 흩날리고 있는데, 화사한 색감과는 다르게 소녀의 표정이 무엇을 말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오늘도 남자애들은 무리로 나뉘어 자기 정체성을 드러낸다. 교실 앞쪽 창가 무리와 뒤쪽 사물함 앞에 모이는 무리 그리고 복도를 점령한 무리다. 세 무리는 관심의 영역도 노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다. 쉬는 시간이면 세 무리가 먼지덩이처럼 우르르 몰려다녀 나와 사라는 그들을 먼지 덩이라 부른다.(7)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와 그닥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주인공 나타샤는 친구 사라를 위해 연애 편지를 쓰고 있다. 사랑은 움직인다고 했던가? 오늘 편지의 주인공은 며칠 전과 달리 새로 전학 온 알리오사로 바뀌어 있다. 알리오사는 자신이 잘 아는 케난 아저씨를 위해 모스타르에 살고 있던 금발의 애나를 찾고 있다. 나타샤의 엄마도 모스타르에서 살던 애나이긴 한데 금발은 아니다. 늘 밤색 머리카락을 하고 있다.

 

어떤 경로로 들어오는 돈인지는 모르지만, 공짜 돈은 무조건 즉시 써야 한다는 애나의 철학으로, 매월 둘째주 수요일이면 두사람(애나와 나타샤)체바피를 먹는다. 엄마의 고향인 모스타르에 있는 로타에서 체바피를 먹고 싶지만, 어쩐 일인지 모스타르와 아빠 이야기만 하면 극도로 예민해지는 엄마라서 도무지 그런 행운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전쟁 때 엄마가 그 곳에서 가족을 모두 잃었다니 이해해야 하겠지만.

 

나타샤가 15살 생일이 되던 날, 기분 좋아 보이는 엄마에게도 역시 아빠 얘기나 모스타르 얘기는 통하지 않아 신경질을 부리는 엄마와 식당을 나오면서 수상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나타샤는 수상한 남자를 쫓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마음씨 좋아보이는 금발 머리 아저씨와 길 잃은 고양이를 만나 고양이 로타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엄마와 갈등을 겪게 된다.

 

전화기가 고장날 때까지 울릴 기세라 받았더니 엄마가 아니라 사비나 이모였다. “난 못해! 절대 안 해!” 악을 써 대는 엄마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이모는 엄마가 몹시 흥분한 상태라 진정되면 데려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전화기를 귀에다 바짝 갖다 댔다. “그놈 때문에 모스타르도 못 가는 거 알지? 그놈이 내 인생을 망쳤다고. 그놈이 왜 거기 있는 거야?” 엄마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이모가 엄마를 달래고는 곧 갈테니 걱정 말라며 전화를 뚝 끊었다. 그놈이 금발 아저씨라는 건지 수상한 남자라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로타라는 건지. 너무 나간 상상력에 실실 웃음이 나왔다.(23~24)

 

엄마의 행동이 뭔가 이상하지만, 나타샤는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결국 집에 데려온 고양이를 버리라고 하는 엄마의 말이, 어쩐지 자신을 버리라는 말처럼 들려 고양이를 안고 가출을 하게 되고. 다행히 알리오사의 도움으로 모스타르에 있는 알리오사 할머니께로 가, 그 곳 사람들을 만나면서 엄마가 그동안 감추고 있던 진실과 자신의 출생 비밀과 맞닦뜨리게 된다.

 

200쪽도 안 되는 짧은 분량으로 실상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극적인 반전은 없다. 나타샤가 엄마의 진실을 알게 되고, 엄마에게 돌아가면서 두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한 번 들고 읽게되면, 다 읽을 때가지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그 안에는 전쟁이 있고, 528일부터 22일 동안 계속 연주되는 <알비노의 아다지오 사단조>의 첼로 연주가 있고, <사라예보의 장미>나타샤들이 있다.

 

21세기인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전쟁과 내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내 기억 속에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사라예보라는 낱말은, 어두운 전쟁이 아니라 사라예보 동계 올림픽과 함께 연상된다. 이 책의 소개를 읽었지만, 정확하게 체트니크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내 무지의 소치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역사책 읽기를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과거와 자주 마주하게 되고, 주로 역사를 배경으로 한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 이 책체트니크가 만든 아이는 우리나라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리 조상들이 환향녀를 겪은 민족이니만큼, 읽고 나면 절대 외면할 수가 없게 된다. 더구나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로서는, 남의 일로 치부할 수가 없다.

 

그래도 이 책에 등장하는 도시는 어쩌면 희망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무조건 잊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책을 읽다보면, 곳곳에 그들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픈 역사일수록 오래오래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미래세대인 자라나는 청소년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읽고 이들의 아픔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진짜를 볼 수 있게 가까이에서 깊이깊이 들여다 보면서.

 

모스타르도 사라예보처럼 총탄 맞은 집들과 불타고 무너져 내린 건물들이 곳곳에 방치되어 흉물스러웠다. 사라예보만큼 모스타르에서도 전쟁이 치열했다는 방증이다. 그래비티 속 화려한 옷을 입은 아이의 웃음과 활짝 핀 붉은 꽃이 제법 어울렸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아이의 눈동자는 총알 맞은 구멍이었다. 섬뜩해서 별로였다. “멀리서 보는 거랑 다르지?” 할머니가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물었다.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서 깊이 들여다봐야할 때가 있지. 그래야 진짜를 볼 수가 있거든”(61)

 

"전쟁이 끝나면 보이는 곳에 핀 장미보다 숨어 있는 장미가 더 많은 법이지. 그래서 전쟁은 마지막 총성이 멎은 후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단다."(65)


얜 누구예요?” “나 일수도 있고, 너 일수도 있고, 우리일 수도 있지.” -중략- “강자와 약자가 대립하면 약자의 목소리는 무시 당하거나 사라져 버리거든. 경쟁 사회의 약자와 강자의 위치를 생각해 봐. ‘적자 생존딱 네 음절로 설명할 수 있단다. 전쟁 중에는 여성과 아이들이 약자란다. 특히, 여성들은 성폭력의 표적이 되거든. 나이 어린 여자아이라고 봐주질 않아. 끔찍하구나. 누군가가 약자의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으면 그들은 공룡처럼 멸종하고 말아. 그림은 멸종당하지 않으려는 내 발버둥이란다. 전쟁의 상처에서 빠져 나오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고, 전쟁의 기억이기도 하지”(98~99)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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