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리커버 에디션)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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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 하늘로 흐른다. 꾸불꾸불한 실개천이 느릿하게 배회하며 둥근 태양을 바다로 나르고, 수천마리 흰기러기들이 우짖으면 다리가 긴 새들이-애초에 비행이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는 듯-뜻밖의 기품을 자랑하며 일제히 날아오른다.(프롤로그_13)

 

평소에 TV시청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시간적 여유가 생기거나 머리가 복잡해서 도저히 책이 눈에 안 들어올 때에는, 더러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몰아서 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목을 보고 배경이 아름다울 것 같아 심란한 마음을 위로 받으려고 시청했는데,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해온 생태학자의 글이라, 배경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워낙 탄탄해 점차 빨려 들어갔다. 결국 영화가 끝나고 나서 원작을 검색해보니 소설로 먼저 나와 있었다.

 

영화를 미리 봐서인지, 도서관에서 상호대차를 통해 빌려서 받아든 책 표지부터 마음에 들었다. 깃털을 들고 있는 소녀의 실루엣이 습지와 너무 잘 어우러져 있고, 반딧불이로 인해 한층 더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저자 델리아 오언스가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 출간한 이 첫 소설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습지소녀 카야의 이야기다.

 

습지소녀: 카야가 여섯 살 때 아빠의 폭력으로 인해 처음에는 엄마가 떠나고, 그 다음에는 큰오빠와 언니들이 떠나고, 마지막으로 작은오빠 조디마저 떠나버리고, 무서운 아빠와 단 둘만 습지에 남게 된다. 평온한 시기가 있긴 했으나 그것도 잠시. 무능하고 폭력적인 아빠는 어린 딸을 보살피지 않고, 아내에게서 온 편지를 받고나서는 그와 관련된 모든 흔적을 태우고, 자신마저 사라져 버려 어린 소녀 카야는 홀로 외딴 습지에 버려진다.

 

사건: 어느 날 아침, 두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낡은 망루를 찾았다가 늪에서 젊은 남자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이 고장에서 꽤나 잘나가는 유지의 아들인 젊은 체이스가 늪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으니, 마을은 당연히 발칵 뒤집힌다.

 

소설은 습지와 늪”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습지소녀의 성장과정과 살인사건으로 인한 상황이 교차로 나오며 긴장감을 유발한다.

 

카야는 당장 살아가기 위해 그 조그만 머리로 궁리하다가, 홍합을 따서 팔아 억지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맛있는 것도 주고 공부도 가르쳐 준다는 말에 학교에 가게 되지만, 이방인이 되어 섞이지 못하고 결국 단 하루로 학교생활을 접는다.

 

습지에서 살지 못하고 시설에 보내질까 두려워, 사회복지사를 피해 홀로 판잣집에 살면서 자연에서 모든 걸 터득하며 살아가던 중, 예전에 본 적이 있는 오빠 친구인 테이트를 만나면서 팍팍하고 외롭던 삶에 한 줄기 따뜻한 햇살이 비춘다.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야생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채,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글을 테이트에게 배우는 등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마음을 주며 의지하고 사랑하게 된다. 그러다가 대학공부로 인해 잠시 도시로 떠난 테이트를 기다리는데, 약속한 날을 훨씬 지나도 사랑하는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또 한 번 버림받은 가슴을 부여안고, 이제 다시는 아무에게도 마음을 줄 것 같지 않았는데, 외로움은 그녀를 또 한 번 사랑에 눈멀게 한다.

 

사흘 연속 카야를 찾아왔다. 허탕을 친 체이스는 날짜와 시간을 미리 정해 카야의 판잣집이나 이런저런 바닷가에서 만날 수 있느냐고 먼저 물어봤고 약속 시간도 엄수했다. 수컷 새가 짝짓기를 위해 털갈이한 것처럼 화려한 색으로 칠해진 체이스의 보트가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면 아주 멀리서도 잘 보였다. 카야 한 사람만을 위해 찾아오는 배였다.(229)

 

이렇게 또 한 번 그녀에게 사랑이 찾아오고, 테이트도 후회하고 다시 습지로 돌아와 진심으로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사과하지만, 카야는 첫사랑인 테이트를 잊지 못하면서도 체이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가 결국 그의 결혼 소식을 신문에서 보고 모든 게 거짓으로 얼룩졌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그녀의 거부는 오히려 분노와 폭력만 유발하게 된다. 아빠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의 끈질김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카야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숨어 다닌다. 이런 체이스가 늪에 있는 오래된 소방망루 밑에서 살해되었으니, 의심의 눈길은 당연히 만만한 카야에게 쏠린다.

 

여기 우리가 가진 증거를 되짚어보면 말이야. 1, 체이스가 추락사하기 직전 소방망루 쪽으로 배를 타고 가는 캐서린 클라크를 봤다는 새우잡이의 증언이 있고 동료도 그 증언에 힘을 실어 준다고 했어. 2, 캐서린 클라크가 체이스한테 조개 목걸이를 만들어줬는데 그게 죽던 날 사라졌다고 패티 러브가 말했지. 3, 여자 모자의 섬유가 체이스의 재킷에 묻어 있었어, 4, 동기, 남자한테 차이고 원한을 품은 여자. 그리고 우리가 반박할 수 있는 알리바이.(311)

 

마시 걸 혹은 습지 쓰레기로 불리며 홀로 고군분투하는 캐서린 클라크(카야)의 성장을 따라가다 보면, 주변에서 거의 도움의 손길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한 소녀에게 자연스레 연민을 가지게 된다. 드러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도와주는 이도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이다. 영화를 미리 시청한 덕분에 소설을 읽으면서도 습지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대로 함께 오버랩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의 위대함· 사랑· 페미니즘· 불합리한 사회구조· 공동체 등, 이 소설에는 재미뿐만 아니라 모든 게 총 망라되어 있어, 재미있게 읽다보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21세기라고 뭐 그리 많이 달라졌겠는가? 너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따라가기도 버거운 현실이지만, 정작 바뀌어야할 것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재미와 반전 그리고 아름다움이 함께 있는 야생의 소녀 카야를 꼭 만나보기를 . 미리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도 무방하겠지만, 가능하면 나와는 반대로 책을 먼저 읽고 충분히 상상한 후에 영화를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신이 상상한 것과 비교해 봐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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