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 시골 수의사가 마주한 숨들에 대한 기록
허은주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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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 허은주

(시골 수의사가 마주한 숨들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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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라는 직업은 더 이상 사람과 말하기 싫다는 어떤 시절의 피로감에서 시작되었다. 30대 초반, 타인과의 소통은 자주 오해로 끝났고 그럴 때마다 나와 상대는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았다. 그때 만난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수의사는 병원에서 동물과 일해 말할 필요가 없는 직업이라고.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살 수 있다니! 그러면 오해하지도, 상처를 주고받지도 않을 것이다. (프롤로그-4)

 

50년만의 가뭄이라고 했던가? 가뭄이 심해 모두들 걱정하던 차에, 어여쁜 제목과 아주 잘 어울리는 노랑과 초록빛을 상큼하게 머금고, 어느 날 문득 꽃비를 타고 내게 선물처럼 책 한 권이 배달되어 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쉽지 않은 여정을 거치며 사람들을 만나던 저자가, 수의사가 되면 동물과는 말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이란 오해를 가지고 진로를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동물과 말을 하지 않는 대신, 결국 사람들과 더 많은 말을 해야 하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이 책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동물을 지극히 사랑한 그가 동물병원을 하면서 보고 느낀 점들을 진솔하게 기록한 책이다.

 

장례식장에 꽃비를 데리고 가는 게 좋을까. 오래 망설였다. 하지만 엄마와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커져 꽃비를 데리고 문상을 갔다. 영정 사진 앞에 꽃비를 내려놓고 잠시 묵념했다. 꽃비는 방 이곳저곳을 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19)

 

화가인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살던 꽃비는, 갑작스럽게 엄마가 쓰러지는 바람에 동물병원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잠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았겠는데, 쓰러진 꽃비 엄마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고, 각막 건조증을 심하게 앓던 꽃비는 갈 곳을 잃어버렸다. 엄마가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간 걸 꽃비가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도 사람처럼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 않을 수 있도록……. 다행히 꽃비는 하늘나라에 간 엄마가 도와주었는지, 지인이 입양해 가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아프면 소리 지르고 화낼 법도 한데 이 어린 닭은 아픈 다리를 만지면 꾸우우하는 작은 소리를 냈다. ---중략--- 짧은 시간에 체중이 늘어나도록 가축화된 닭에게 다리 절단수술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구구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아주 특별한 새-24~25)

 

개가 지켜주어 닭이 목숨을 부지한 줄도 모르고, 어느 날 개한테 주인이 목줄을 해서 족제비에게 물려 버렸다. 초복과 중복을 지나치면서, 누군가는 한 목숨을 살리기 위해 이리 애를 쓰고, 또 누군가(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 아무 의식 없이 식탁에 올린다는 생각에 족제비가 되어버린 것 같아 슬며시 죄책감마저 든다.

 

알코올로 가위를 닦고 라이터로 가위 날을 달군 후에 귓바퀴를 잘랐다고 한다. 마취는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다른 개 농장 사장에게 조언을 들었는데 2개월 된 강아지는 통증을 못 느껴서 마취를 안 해도 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팻숍의 투명창-94)

 

단이(斷耳)라는 이름으로 칭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의해 멀쩡한 개의 귀를 자른다는 것을 이 책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를 읽고 처음 알았다. 그것도 2개월 된 개는, 통증을 못 느낀다는 잘못된 상식으로 마취도 하지 않고, 집에서 생귀를 자른 후 아무 실이나 사용하여 꿰매었다니 그 고통이 상상되어 소름이 끼쳤다.

 

이렇듯 이 책에는 동물들과의 아름다운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도 있고, 충분히 더 살 수 있음에도 안락사 되기도 하고, 사람들의 욕구에 의해 때로는 물건이 되어 버스 화물칸에서 긴 시간을 갇혀 고객에게 배달되기도 한다. 그나마 고객의 맘에 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반품된다.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당연한 시대가 되었지만, 그들이 사람들로 인해 정말 행복할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동물마다 각기 다른 그들의 습성이 있을 텐데,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살아가야하고, 때로는 학대나 버림을 받기도 한다. 잃어버려서 주인과 헤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버려지는 동물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동물들에게 많은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 없어지면, 너무 쉽게 떠나보내기도 한다. 이제는 그들과 우리가 서로 함께 공존하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고민해 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많은 생명체들과 더불어 살아갈 때만이 우리의 삶도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 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를 가족들과 함께 꼭 읽어 보고, 우리 모두 꽃비 내리는 날 그리운 이들과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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