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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22년 2월
평점 :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 문태준 산문집
(문태준의 마음수업, 문장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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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는지 유난히 추운 2월의 길목에, 시인의 섬세한 감각이 묻어나는 “행복의 꽃들이 생활 곳곳에 피어나길 바랍니다.”라는 친필 사인을 품은 소박하고 정감어린 책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가 살포시 내게로 왔다.
문장을 얻는다는 것은 새로운 마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잔물결처럼 흔들리거나 안개처럼 흐릿하던 어떤 것이 마침내 형상을 얻는다는 뜻이다. 마치 눈 뭉치를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어 세우듯이. 마치 흙 속에 숨 쉬던 검은 빛의 씨앗이 발아를 통해 흙 위의 푸른빛으로 바뀌어 나타나듯이. 문장을 얻으려는 때에는 좋은 예감이 있고, 흥이 있다. 건반이나 현을 통해 음악이 세상으로 나오려는 순간처럼. 그러므로 문장을 얻는 일을 기쁘게 여겨 계속하게 된다. 비록 혼자의 밤과 고립은 힘에 겹지만.
그러나 문장이 올 때 이 세상에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장은 개개의 사물과 사람과 생명이 고유하게 간직한, 꺼지지 않는 빛을 발견하는 일인 까닭이다.(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4~5쪽)
꺼지지 않는 빛을 발견하기 위해, 외롭고 고달프지만 기어코 문장을 맞아들이는 과정이 눈앞에 선연히 그려지며 그 마음 또한 애틋하게 다가와 가슴에 콕 박힌다.
〈꽃〉
당신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세요
조심스레 내려가
가만히 앉으세요
그리고 숨을 쉬세요
부드러운 둘레와
밝은 둘레와
입체적 기쁨 속에서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55쪽)
〈뿌리〉
뿌리는 무엇과도 친하다
꽃나무와 풀꽃들의 뿌리가 땅 속에서 서로 엉켜 있다
냉이가 봄쑥에게
라일락이 목련나무에게
꽃사과나무가 나에게
햇빛과 구름과 빗방울이 기르는 것은 뿌리의 친화력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62쪽)
서로 얽혀 어울렁더울렁 살면서 작은 욕심도 부리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비워가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이 제주도 애월 바다와 함께 눈앞에 다가온다.
연잎 같은 마음으로, 시가 만들어지는 경과보다 시가 자신에게로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데 더 마음을 쓰며, 매번 새롭고 두려우면서도 첫 문장을 기다리며 외로운 고통을 견뎌내기도 하는 시인이 늘 곁에 가까이 두고 읽는 글은 어떤 것들일까?
〈나 태어났어요-다니카와 슌타로〉
나 태어났어요
드디어 여기 왔어요
눈은 아직 안 보이고
귀도 들리지 않지만
난 알아요
여기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그러니까 방해하지 마세요
내가 웃는 것을 내가 우는 것을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을
내가 행복해지는 것을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86쪽)
〈종교란 무엇인가?-달라이 라마〉
종교의 핵심은 친절입니다. 지금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베푸십시오. 그것이 종교입니다. 깨달음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깨달음이 너무 강조되어서는 안 됩니다. 먼저 필요한 것은 자비입니다. 자비를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깨달음은 약속되어 있습니다.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98쪽)
〈가을날에는-최하림〉
조심스럽게 옮기는 걸음걸이에도
메뚜기들은 떼 지어 날아오르고 벌레들이 울고
마른풀들이 놀래어 소리한다 소리들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 저만큼 나는
걸음을 멈추고 오던 길을 돌아본다 멀리
사과밭에서는 사과 떨어지는 소리 후두둑후두둑 들리고
붉은 황혼이 성큼성큼 내려오는 소리도 들린다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182~183쪽)
이 책≪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어져 있고, 마음의 숲 디자인팀의 그림 또한 저자의 글과 너무도 잘 어우러져, 한 페이지 읽고 나면 소소한 걱정들을 잠시 잊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어느 새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리운 고향 툇마루에 가 있기도 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잔잔하게 시를 이야기하며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현실을 잠시 잊게 되기도 한다. 감염병으로 인해 친구조차도 기계로 만나야 하는 현실 속에서 책과 조금 가까워지고 싶은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서로 나라를 자신에게 맡겨야한다고 큰소리치는 이들에게서도 잠시 떠나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노라면 우리들이 기다리는 첫 문장을 맞는 행운이 함께 해 줄지도 모르겠다. 아련한 여운과 함께….
거기에 덤으로 마음이 정화되는 소중한 경험까지 맛볼 수 있다.




*본 도서는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