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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 - 성동혁 산문집
성동혁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2월
평점 :
뉘앙스 / 성동혁 산문집
(아무 말 하지 않고도 모두를 말하는, 뉘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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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나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담기에 너무 협소하다.”
11월의 끝날, 8개월 ‘기간제 근로자’ 라는 소박한 여행을 끝내고 쓸쓸히 집으로 돌아왔는데, 앙증맞은 작은 책 한 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성동혁 시인의 산문집 ≪뉘앙스≫
[뉘앙스]
뉘앙스. 사랑할 때 커지는 말, 뉘앙스. 네모였다가 물처럼 스미는 말, 뉘앙스. 더 많이 사랑해서 상처 받게 하는 말, 뉘앙스. 아무 말 하지 않고도 모두를 말하는, 뉘앙스. 온도, 습도, 채도까지 담고 있는 말, 뉘앙스. (뉘앙스-67쪽)
자신이 울면 엄마가 더 슬플 거라는 것과, 아무리 사랑하는 엄마라도 수술실까지는 함께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아이는 ‘울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은 눈이 펑펑 내렸고]
오늘은 눈이 펑펑 내렸고 정말 예쁘게 내렸고
우주 같았고
중력이 사라지는 것 같았고
천천히 별이 내리는 것 같았고
별이 내게까지 떨어져 슬프지는 않았고
하지만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고
친구랑 같이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눈을 구경했고
갖고 싶은 것들이 조금씩 줄고 있고
누군가와 같은 공간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고
마음까지 가난한 사람이 되지는 말자는 다짐을 했고
달력은 무의미해졌고
원하는 시간을 살 것이고
불안하지 않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고
사랑하는 사람에겐 자주 헤픈 사람이 되고 싶고 (뉘앙스-25~26쪽)
시인이면서도 문학이 그에게는 전부가 아니라고…. 친구와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 피 검사를 기다리며 먹는 크루아상이…. 또한 의자에 걸쳐 놓은 셔츠, 예배가 끝나고 친구와 햇볕을 쬐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그는 말한다.
햇빛이 방까지 들어오는 좋은 계절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조차도 죄스러워하며, 어느 순간 친구들과 자신의 삶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어도, 그저 숨이 좀 덜 차고 아프지 않게 오래오래 살고 싶어 하는 그의 소망에 마음이 시리다.
아프기만 하면 되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집은 나의 병원비를 할부로 하기도 한다.(뉘앙스-150쪽)
너무 열심히 살아도 안 되는, 어쩌면 조금 덜 열심히 살아서 덜 아파야 되는 삶 속에서도 그는 절대 소망을 놓치지 않는다.
[곁]
침대 위에서 피를 뽑고 침대 위에서 밥을 먹고 침대 위에서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옆으로 누워 오랫동안 숨소리를 듣는다.(뉘앙스-36쪽)
늘 병(病)을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늘 슬픈 건 아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곁에 있어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
너무도 절절한 것 같은 시인의 글은 결코 거창하지 않다. 그저 지난한 삶을 사뿐히 이야기하는데, 어쩐 일인지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슬그머니 스며들어 온다. 그의 뉘앙스가 그렇다.
우리 모두는 감염병조차도 세계화가 되어버린, 이 버겁기만 한 지금의 21세기를 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맑고 순수한 시인의 글을 따라가며 씻어내고 위로 받기를 권해본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