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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있어서 진정한 <자유>의 의미란 무엇인가.


네이년 백과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 또는 그러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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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엘리트이며 나름 부잣집 아들래미다.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하며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 할 수 있는 학자금도 두둑히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돌연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은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가족, 특히 절친한 여동생에게 마저 아무런 소식 없이 모든걸 버리고 홀연히 사라진다. 2년 정도 그렇게 정처없이 여행하며 지낸 후 그 기록들을 엮어서 책으로 만들고 싶었던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자신을 <위대한 방랑자 알렉산더>라고 소개하며 농부가 되기도, 히피가 되기도, 또 가죽공예를 하기도 한다.

정말이지 저게 바로 자유야!라고 감탄할 정도의 홀가분한 감정을 느끼기에 충분한, 그런 멋진 영화다.

보고 있자면 나도 떠나고 싶다!라는 울부짖음이 저절로 터져나올 정도로.
 
하지만 영화는 오로지 자유 여행 하나만을 말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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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여러가지 경험을 한다는 것은 여행의 기쁨이지만

알렉산더가 여행으로 행복과 기쁨으로 충만해져 갈 수록 그와 반대로 가족들은 더더욱 슬픔과 좌절에 빠지게 된다.

나레이션으로 말하는 주인공의 동생은 그의 행적을 설명하면서 또는 가족들의 상황과 자신의 감정을 말하면서 더더욱 비참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부모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나한테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라면서.

부모는 사실 우리가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그런 존재가 아닌 역겹고 또 물질만능적인 천박한 존재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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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여러가지 경험을 한다는 것은 여행의 기쁨이지만

알렉산더가 여행으로 행복과 기쁨으로 충만해져 갈 수록 그와 반대로 가족들은 더더욱 슬픔과 좌절에 빠지게 된다.

나레이션으로 말하는 주인공의 동생은 그의 행적을 설명하면서 또는 가족들의 상황과 자신의 감정을 말하면서 더더욱 비참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부모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나한테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라면서.

부모는 사실 우리가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그런 존재가 아닌 역겹고 또 물질만능적인 천박한 존재로 나온다.

이미 가정이 있었던 아빠와 그 남자를 사랑하여 아이 둘을 낳은 엄마, 때로는 엄청난 폭력 그 자체로 돌변하여 두 남매를 두려움에 떨게한 그들에게 어쩌면 알렉산더는 벌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부모덕에 먹고 입고 잠들고 공부도 했지만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그는 견디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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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부모를 부정하는 것, 그것은 곧 자신을 부정하는 과정이고 때문에 자신이 크리스토퍼임을 증명할 수 있는 그 무엇도 다 없애버리고 지워버린채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으로 부터 벗어나 스스로 존재하는 자임을 증명하기 위한 길을 떠났다.

그가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되고 그 속에서 하나가 되어가면서 그는 점차 인간 관계에 대해 초월하여 연연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는 인간은 사회를 이루지 말아야하며 자연으로 돌아가야한다며 사회를 이루며 부딪치는 것은 서로를 상처만 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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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건 우리 젊은 이들의 모습 전부일지도 모른다.

화가 나 있고, 구속하는 부모세대, 사회에게 반항하고, 또 그들을 부정하면서 살아가는 젊은이들.

젊은 우리에겐 진정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가죽공예 할아버지처럼.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꼈던 백발의 할아버지는 그가 알래스카로 떠나는 날,

알렉산더에게 자신이 입양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같이 살자고 제안하지만 그는 돌아와서 생각해보겠다며 여지없이 떠난다.

그때 할아버지가 흘린 눈물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내를 잃고 술에 빠져살았던 할아버지는 어느날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일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혼자 살면서 주문 들어온 가죽 공예 일을 두고 여행 한번 떠나보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알렉산더를 만나서 높은 절벽에 오르기도 하고..작게 나마 도전을, 인생을 즐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새로운 것에 대한 경이로움보다는 자신에게 그것에 대해 말해주고 깨닫게 해준 알렉산더와의 관계가 더욱 소중한 것이었기에.

할아버지에게는 정말로 알렉산더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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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한푼 없는 무전 여행에서 그가 단 한가지 목표로 한 것은 알레스카로 가는 것.

우여 곡절 끝에 알레스카에 당도한 그는 <매직버스>를 발견하고 그 곳에서 생활하는데...

한가지 간과한 사실, 알레스카라고 해도 봄이되면 얼음이 녹고 강물이 넘쳐 흐른다는 것.

물을 싫어하고 수영할 줄 모르는 그는 결국 고립되고 만다.

죽어가면서 그가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쓴다.


진정한 행복은 나눔으로서 느낄 수 있다


그 문장과 함께 나는 할아버지의 눈물도 떠오르고 아이를 그리워하는 히피 아줌마가 떠오르고 그가 사랑했던 어린 조니 밋첼같은 여자와 감옥에 끌려간 농부와 잠시였지만 같이 멕시코로 가자고 들떠있던 스웨덴 사람들도 떠올랐다.
출처 : 블로그 > 검정의세상, ★KURO★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가족. 특히 독백을 하는 여동생.

허탈감에 짓눌려 그만 땅바닥에 주저 앉고마는 아빠.

영화시작 처음부터 아들 생각에 잠도 못이루는 엄마.

사람이 진정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고 그로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때 신이 빛을 내려준다고 한다.

알렉산더는 그 순간, 빛을 보았고 크리스토퍼로 돌아간다.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죽음이라고 했던가.

자유라는 것은.

가진 것을 버리도 떠나는 것도, 돈과 권력에 얽메이지 않고 행동한다는 것도,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닌.

설령 많이 아프다 할지라도 온전히 이해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한다.

※ 본 리뷰는 영화 <인투 더 와일드>를 감상하고 쓰신 리뷰로그 검정의세상, ★KURO★ [2] 원문보기 를 포스트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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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일요일 오전에 본 기가막히게 웃기고 재밌고도 느낀 것도 많았던 유쾌한 블랙코미디 <렛츠 고 투 프리즌>을 보고 문득 생각이 났다.

이 블랙코미디 영화는 생각없이 보기에 딱 인듯 하지만, (한시간 반동안 끊임없이 웃겨준다.ㅋㅋ)

나름대로 교훈도 얻을 수 있었다.

무엇이냐면 넬슨의 놀라운 '변모'를 통한 교훈인셈이다.

내레이션도 겸한 남주인공이 본 '넬슨의 변화'는 가히 놀랍다.

자신의 인생을 감옥을 밥먹듯 드나드는 인생으로 만든게 모두 넬슨 판사때문이라 여기는 우리의 주인공은 그를 단단히 복수하기 위해 계략을 꾸미지만, 곧 이어진 전화음성을 통해 넬슨 판사가 불과 3일전 죽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자 분노에 차서, 공중전화를 총으로 "빵,빵,빵!" 쏴서 박살내버리고, 얼마 후... 새로운 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넬슨의 아들, 넬슨 4세를 골탕먹이는것! 그런 아버지를 둔 걸 후회하게끔 만들어주기위해 자신의 인생을 '조졌다'고 생각하는 넬슨에 대한 복수로 그를 감옥에 '처 넣기로' 작전을 세운다.

그리고 그 작전대로 기가막힌 우연의 법칙들로 넬슨은 꼼짝없이 '교도소에' 수감되게 된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 그는 교도소를 벗어나, 그리고 넬슨 대신 넬슨의 아들을 감옥에 처넣음으로써 복수를 했다고 생각되지만, 뭔가 부족하다. 뭔가 허전하고 이전같지 않은 느낌이다.

결코... 신나거나 유쾌하지도 않음을 깨닫고

그도 넬슨이 있는 교도소에 수감되기로, 그러면서 바로 옆에서 그를 괴롭혀 주기로 결심하고

그또한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넬슨에게 교도소행 버스에서부터 접근하기 시작한 주인공. 평소 괴팍하기 이를데없고 불같이 사납고 자기밖에 모르는 호통맨, '넬슨'은 험악한 교도소의 분위기에 단단히 주눅이 들어 완전 급소심남으로 변하게 된다.

그 모습을 보고 어리숙하기 이를 데 없는 보호자없는 갓난아기인양, 여기게 된 주인공은 그의 보호를 자청하지만 속내는 그를 오히려 더욱 곤경에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그 모든 걸 당하고, 계속된 갈굼속에 넬슨도 지쳐가고 결국 '죽음'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 계획은 엉뚱하게 그를 교도소내 최고의 우두머리로 올라서게 만들어주고, 그는 평탄하고도 교도소내 모든 수감자들이 떠받드는 최고봉이 된다.

그러한 놀라운 위상변화에 어이없어 말문이 막힐법한, 주인공. 또다른 계략을 꾸미지만, 그것도 모르는 넬슨은, 이 모든 불행과 인생꼬임의 장본인인 그에게 다가가

감사의 악수를 청하며, 행복하고 밝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정말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난 이 모든게 불가능했을거야. 네 덕분이야!"

진심으로 고맙다며 인사하는 그가 주인공으로선 도저히 납득이 안갈 수밖에.

그러나 여기서 본 건, 넬슨의 위상변화도 그렇지만, '태도의 변화' 였다.

예전의 그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게, 남을 챙길 줄 알고, 소심해졌다고보기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뿜어내어 청중들을 사로잡을 줄 알고, 자기에게 고마운 사람, 자신을 받드는 친구들에겐 한없이 정을 베풀어 따스함을 나눌줄알고...

그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데 천재인것이 분명하다. 자기에게 닥친 빼도박도 못할, 피하기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교도소라는 곳에서, 외부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비닐에 싸여 나가는 것(죽음)외엔 탈출불가능인것만 같은 그곳에서 그는 그 모든 자신에게 닥친 불리한 '위기'를 놀라울 정도로 지혜롭게 극복하는것이었다. 비록 그게 우연찮은 사고로 인해, 전화위복이 된 케이스이지만, 그의 태도 변화는 그가 어쩌면 당연하게 모두의 위에 군림할 수 있게 된 것임을 보여준다.

그는 교도소에서 '새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원수에게 감사하다고 절하는 모습이니.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명장면들을 볼 수 있다. 어떻게 악명높은 교도소에 수감된 그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으로 변모하는가싶을정도로, 그는 자기에게 닥친 피할 수 없는 교도소생활의 일생일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이는 전화위복이 무엇인지도 또한, 기가막히게 제대로 보여준다.

넬슨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교도소 내 '갈굼'과 괴롭힘, 고립에 '죽음'을 결심하였지만,

결국 그게 도리어 그를 모든 권력을 쥔 최고 우두머리로 둔갑하게 만든 사건으로 탈바꿈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넬슨 모략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넬슨이 형기를 마치고 나가는 마지막 날까지, 최후의 방해를 하여 출소의 꿈을 날려버리자,

그때서야 깨닫지만 또한 후에 서로 용서하고 '동업'하게 된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적도 동지로 만들어버리는 넬슨의 엄청난 처세술인가?^^;

'용서의 힘'인가?

..........

단순한 킬링타임용 블랙 코미디로보다는 이렇게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어 더욱 좋았던, 유쾌만점의 독특한 소재의 코미디 영화, 겉으로만 봐선 영락 '감옥에 대한 비틀기... 로 보이지만 내가 봤을 땐 분명,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잘 만든 秀作 블랙 코메디영화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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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12-02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엇나보네 ^^ ♡.
나도보려했엇지만....
영화 중간에 보는건 영내키지 않아서
감방 이야기 인가 보네
이 글 누나가 쓴거야?
완전 잘쓴다~
배워야겠어 ! +.+
 

<바시르와 왈츠를>, 왜 이토록 난리들인가? 왜 반드시 봐야 하는가?

레바논 전쟁에 참전했던 이스라엘 감독 아리 폴만이 전쟁의 후유증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로 풀어냈다. 비인간적인 전쟁과 인간적인 환상을 뒤섞은 <바시르와 왈츠를>은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모두 뛰어넘은 올해 최고 화제작이 11월 20일 드디어 한국에서 개봉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수상작이 발표된 직후, 여러 기자들이 리스트에서 발견되지 않은 한 영화를 놓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심사위원장 숀 펜은 한 인터뷰에서 “왜 <바시르와 왈츠를>(이하 <바시르>)이 아무 상도 받지 못했냐”는 질문을 받았다. 숀 펜은 간단하게 “우리도 그 영화를 좋아했다”라는 말로 평을 마무리했다.

칸에서 세 번째로 상영됐던 <바시르>는 스물두 편 상영이 모두 끝날 때까지 사람들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라서?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바시르>는 ‘이스라엘의 반성’을 보여주는 놀라운 영화였다. 강대국이 국가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거침없이 약탈하는 동안 세계의 윤리는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와중에 나타난 <바시르>는 잘못을 저지른 국가의 청년이 영화로 양심선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억나지 않는 학살의 추억

아리 폴만 감독은 열여덟 살에 이스라엘 군에 입대했다. 평화롭던 한 시절이 지나고 이듬해 레바논 전쟁 부대로 배치됐다. 그가 받은 명령은 팔레스타인 반군을 처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젊은 군인들은 팔레스타인 반군이 가득 차 있을 레바논의 사브라와 사틸라 캠프로 진격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무장한 군인은 없고 노인들과 여자들, 아이들이 공포에 떨고 있었다. 죄 없는 3,000명의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당했다. 이게 바로 1982년 9월에 벌어진 ‘사브라와 사틸라 학살’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바시르’는 정식 취임을 9일 앞두고 폭탄 테러로 사망한 레바논의 대통령 바시르 제마엘을 뜻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군대를 청소하고 북부를 장악하기 위해 기독교 민병대(팔랑헤당) 소속인 바시르 제마엘을 대통령으로 앉힐 계획을 세웠다. 그가 연설 도중 테러를 당하자 팔랑헤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팔레스타인군을 주도자로 판단하고 난민 캠프에 도착해 모두를 죽인 것이다. 연합군이었던 이스라엘 군대는 그들을 성심껏 도왔다. 하지만 그때 팔레스타인군은 이미 튀니지로 이동한 상황이었고, 난민 캠프에는 진짜 난민들만 남아 있었다. 기독교 민병대와 이스라엘 정부는 이 모든 진행 과정을 모르고 있었을까? 바시르 제마엘 대통령을 죽인 건 정말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일까? 지금은 이 모든 게 땅을 점령하기 위한 ‘음모’였다는 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 문제는 이 전쟁에 참전했던 아리 폴만 감독이 이때 기억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꿈속에 가끔 나오는 이미지는 달빛 가득한 강에서 동료들과 목욕을 하고 군복을 입은 뒤 총을 메고 어딘가로 향하는 게 전부다. 이 ‘머릿속의 지우개’가 <바시르>를 만드는 출발이 됐다.

개인사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바시르>의 주인공은 아리 폴만 감독 본인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전쟁을 기억하지 못한다. 꿈의 의미를 알고 싶었던 아리는 정신과 친구의 조언에 힘입어 당시 전우들을 찾아 인터뷰를 시작한다. 한 명씩 만날 때마다 과거의 사실들이 하나둘 밝혀진다. 기억의 조각을 맞추는 과정은 곧 영화의 시나리오가 됐다. 감독은 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200만 달러로 전쟁 극영화를 만드는 건 무리였다. 제작비 절감과 동시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무의식과 기억에 대한 부분을 자유롭게 이미지?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40대 중반 아저씨들이 빈 벽을 배경으로 증언을 하는 장면만 늘어놓을 수도 없었다. 애니메이션은 방법에 불과했다. 감독은 이 기회에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림에 전혀 관심 없던 감독은 아트 디렉터 다비드 폴론스키, 애니메이션 감독 요니 굿맨을 프로젝트에 끌어들였다.

첫 작업으로 음향 스튜디오에서 실제 영화를 완성했다. 인터뷰를 녹화해서 뒤섞은 엉성한 다큐멘터리 실사본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스토리보드가 됐다. 놀라운 것은, ‘로토스코핑’(<웨이킹 라이프>처럼 실사 필름 위에 똑같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3D 기법을 이용했고, 20퍼센트 정도는 고전적인 셀 애니메이션 방식이었다.

<바시르>의 장면들은 크게 다큐멘터리와 환각 장면으로 나뉜다. 다큐멘터리 장면은 고증을 거쳤지만, 환각 장면은 독창적인 상상력을 요구했다. 아리 폴만 감독은 이 두 부분을 전혀 다른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만들었다. 환각 장면은 끔찍한 전쟁을 겪었던 청년들의 순결한 무의식의 반영이다. 그래서 <바시르>는 다큐멘터리이면서 다큐멘터리가 아니기도 하다. 이 모호한 장르 정체성을 헷갈려 하던 언론은 결국 ‘애니 다큐멘터리’(Animated Do cumentary)란 명칭을 확정했다. <바시르>는 자료도 남아 있지 않은 개인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데 있어 독창적인 방법론을 만들어냈다.



전쟁으로 청춘을 잃어버린 세대를 위하여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영웅이 아니다”라고 감독은 말한다. 그 당시 어린 군인들은 전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바시르>는 부당하게 전쟁을 겪고 그 상처를 평생 지고 살아가야 하는 이스라엘 80년대 초반 세대의 상실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극 중에서 잠시 휴가를 맞이해 고향에 돌아온 아리는 시내 댄스 클럽을 찾는다. 그곳에는 무표정한 얼굴의 젊은이들이 기계적으로 몸을 흔들고 있다. 탱크에 올라탄 젊은이들은 오히려 활력이 넘친다.

그러나 건강한 활력은 아니다. 그들은 레바논 탄압의 한이 서려 있는 록음악을 열창하며 아무 생각 없이 탱크에서 포탄을 날리고 무차별 사격을 해댄다. 소울이 없는 청년들은 모두 좀비 같다. 주인공 아리는 전쟁에 대한 기억만 잃은 게 아니다. 청춘을, 소울을 온전히 잃어버렸다. 그런 이유로 감독은 “<바시르>는 전쟁 영화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정치적인 영화’라는 낙인도 반대다. “우리가 했냐, 그들이 안 했냐 하며 다른 편과 협상하려는 게 아니다. 기본 입장은 전쟁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그때 우리가 알지 못했거나 보지 못했던 어떤 것에 대한 영화다.”

또한 아리 폴만 감독은 남다른 ‘학살’의 기억을 갖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경험한 부모님 때문이다. 그런데 <바시르>에서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던 한 친구는 아리에게 “우리는 나치 같았어”라고 말한다. 과거에 고통을 받고, 그 고통의 가해자로 역사를 반복했던 젊은 날의 죄책감이 영화 <바시르>를 낳은 셈이다. 그래서 <바시르>의 기본 정서는 비판이나 풍자가 아니라 반성과 회한이다.

애니메이션 그 이상, 다큐멘터리 그 이상

<바시르>는 칸국제영화제 이후 여러 매체에서 극찬을 받았다, <스크린 데일리>의 댄 파이나루는 “일반적인 전쟁의 윤리학을 말하는 이 영화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라며 시대의 마스터피스로 인정했다. <옵서버>의 제이슨 솔로몬스는 “<바시르>는 범죄와 충격으로 가득 찬 전쟁 영화를 파괴하고, 친숙한 주제를 새롭게 살피고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한다”라며 영화적 독창성을 칭찬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삽입된 실사 클립이다. 캠프의 난민들이 시체가 되어 마구 널브러져 있고, 가족을 잃은 여인들은 통곡을 하며 길거리를 배회한다. 아리의 잃어버린 기억이 완성되는 순간, 실제 그곳에서 벌어졌던 참극이 정제되지 않은 채 등장하면서 관객들은 아리의 충격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감독의 의도는 분명했다. “관객들이 ‘멋진 애니메이션’이라며 극장을 나서는 걸 원치 않는다. 실제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여자, 아이, 노인들이 죽었다. 이 마지막 50초는 나에게 본질적인 장면이다.”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찼던 영화에 직설적 표현이 끼어들면서,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렸다. 극영화를 보는 기분이던 관객은 순간 <바시르>가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효과는 이스라엘에서 확실하게 나타났다. <바시르>가 이스라엘에서 개봉했을 때 우익 세력으로부터 많은 혹평이 쏟아졌지만, 아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했던 한 가장은 ‘아들 세대에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는 코멘트를 언론에 밝혔다. 폴만 감독이 원한 것도 여기까지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비극의 순환을 막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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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so amazing movie for me.

It is the story about a man who will get just one day

even the day is the hatest day in his life.

You know.. He was so arrogant and selfish.

 just I couldn"t have no choice but expressed him with one word.

He was a fool. Even he didn"t know love. sure ..no kindness, no humble, no smile.

If you would ask me about what sense does he have,

I just could say like this.

He had only a sense of cynical humor toward other people who he thought fools.

Anyway.. anyday.. suddenly.. it was coming to him.! it happened amazing thing.

first time it happened, he couldn"t believe that and he was gettting upset all day long.

but as time went by,  he accepted his situation that not handled and he decided to do something more valuabe. saving other lifes, helping people who were in danger,, somthing like this..

he lived the whole day the most valuably through in his life.

he became a deserved person for everything .

and at that time, his karma was released.

his tomorrow came to him. not today ,It was tomorrow he just have looked forward to come so much. in addition to, with a beautiful, georgeous woman who exactly loved him

 

I really love this movie. first time i saw this movie , it was on TV, when I was a child.

this movie touched my mind at that time.. and now too..

it"s so funny and touchable movie..

and it makes me remind something .. some stuffs of life..

and i decide to start learning to play piano again..

becaus the scene that he played the piano in the party was so awsome.

i want to be like that.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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